[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위자료 청구소송을 하면 민사상 원고인 국민의 뜻이 담긴 ‘소장’이 피고인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됩니다. 소장을 안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라도 국민의 뜻을 알려야 합니다.”
대통령을 상대로 국민이 민사상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한다? 기발한 착상이면서도 승소할지가 의문이었다. 그러나 이 소송을 진행 중인 곽상언(45·사법연수원 33기) 변호사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는 국민의 촛불집회도, 검찰의 대면조사도 모두 외면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민의 뜻을 직접 전할 수 있는 합법적 방법이 바로 민사소송이라고 말했다. 승소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저도 법률가”라며 “가능하지 않은 사건은 진행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직무상 범죄행위를 이유로 하는 위자료 청구소송은 승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곽 변호사를 만나 이번 소송의 의미와 전략을 들어봤다.(편집자 주)
곽상언 법무법인 '인강' 대표변호사가 2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초프라자 8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한 국민 집단소송' 진행과정을 설명하며 밝게 웃고 있다. 사진/최기철 기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의 본질적인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국가의 운영은 헌법에 의한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민주국가이고 헌법은 국민의 위임에 의한 통치를 당연히 예정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이 자신에게 부여한 직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헌법에 따라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을 벗어나 자의적으로 통치한 사실이 확인됐다. 헌법에 의한 정치질서, 즉 헌정질서가 이미 중단된 것이다. 게다가, 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대통령의 측근들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직위를 이용한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이들은 개인적인 일탈 혹은 개인에게 책임이 귀속되는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대통령의 직위를 이용한 범죄행위가 오직 자신들의 사적인 이익을 위한 것으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이를 지적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고 있다. 끝까지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면서 헌법을 벗어난 통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문제의 핵심 원인은 바로 이 것이다.
이번 소송을 진행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현재의 사태는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그때만 해도 박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실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국민들은 박 대통령의 헌정중단을 알게 되면서 6차례의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어제(11월 26일 토요일)는 무려 190만명 이상의 국민이 전국 광장에서 대통령에게 촛불로, 목소리로 국민의 의사를 알렸다. 헌정 중단 사태는 헌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헌법은 대통령의 결단에 의한 하야(사임), 국회에 의한 탄핵을 예정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에 의한 통치를 스스로 중단한 대통령은 여전히 헌법에 의한 해결을 원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자신이 국민에게 한 약속을 뒤집고 검찰 수사를 거부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촛불과 목소리를 외면하는 박 대통령에게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박 대통령의 위헌적인 통치로 국민들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 마침 지인이 “변호사로서 박근혜 대통령 위자료 청구 소송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전에도 제게 같은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꽤 있으셨는데,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거부하는 모습까지 보면서, 비로소 제 귀에 들어왔다. 법리적인 검토를 마치고,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다가 다른 변호사님들께 부탁도 해 봤지만 모두 난색을 보여 최종적으로 직접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현재까지 참가한 국민은 몇 명인가.
제가 대표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 인강에서 지난 22일 화요일 저녁에
위자료 청구 소송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그 때부터 페이스북과 카카오톡을 이용해 소송 진행 의사를 알렸다. 불과 24시간만에 국민 5000분이 참가 신청을 해주셨다. 놀라운 일이다. 지난 27일 일요일을 기준으로 8800분을 넘어섰다. 이번 주 중으로 1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1만 명을 넘으면 곧 바로 법원에 소장을 접수할 예정이다. 박 대통령이 퇴진할 때까지 참가신청을 받을 것이다.
특이한 점으로는 해외에 거주하고 계신 재외국민들의 신청이 많다는 것이다. 그 분들 중에는 전화로 “해외에 있는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명예에 해가 될까봐 무척 조심하며 살고 있다. 해외 언론은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해 연일 보도하고 있고 조롱 섞인 보도 때문에 무척 수치스럽다. 외국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것이 더 힘들어 지고 있다. 반드시 소송으로 해결해 달라”고 말씀하신 분도 있다.
‘5000원 이상’이라고 한 소송참가비용 용도는 무엇인가.
법원에 납부하는 인지대, 송달료 등의 소송비용과 변호사 보수가 포함돼있다. 청구하는 위자료가 증가되면 인지대도 올라간다. 그러나 변호사 보수는 사실상 따로 받는 것 없이 소송수행에 필요한 최소한 정도로 정하고 최대한 많은 국민께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소송참가비용 금액을 그렇게 정한 것이다. 추가 비용은 전혀 없다. 커피 한 잔, 담배 한 갑을 살 수 있는 돈으로 소송에 참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에도 유사소송의 전례가 없어 보인다.
소송을 준비하면서 과거 사례를 찾아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례가 전혀 없다. 아마도 “‘현직’ 대통령의 직위를 이용한 범죄행위 및 헌정중단 사례”가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외국 사례까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의 손해배상 책임이 법적으로 인정될까.
저도 법률가이다. 가능하지 않는 사건을 진행하지는 않는다. 특히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하는 소송은 현실적으로 제가 어떠한 고초를 겪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압축해서 설명하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헌정 중단 사태는 대통령 개인의 범죄행위 혹은 불법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직무 범위는 국정 전반에 미치는 것인데, 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직무를 이용한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이런 이유로, 과거 법원은 대통령에 대한 ‘포괄적 뇌물죄’의 성립을 인정했다. 같은 논리로 판결한다면 대통령의 직무상 범죄행위를 이유로 하는 위자료 청구소송도 승소하게 될 것이다.
첫 사례인데 첫 소송부터 원고인단 규모가 너무 큰 것 아닌가.
위험부담이 있다는 지적으로 이해되는데, 오히려 법원은 소송에 참가하는 원고가 많을수록 그 사건을 무겁게 다루게 된다. 보다 많은 국민들이 참가해야 하는 이유이다.
위자료 청구금액은 얼마로 생각 하고 있나.
소송참가신청자 중에는 1억원, 10억원을 청구해 달라고 요청하시는 분도 계시다. 그 분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사건을 진행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실익을 생각해 봐야 한다. 위자료는 법원이 그 사건의 내용 등을 고려해 직권으로 정한다. 또, 위자료 청구금액이 크면 법원에 납부해야 하는 소송비용도 올라간다. 그래서, 일단 원고 1인당 30만~50만원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청구하는 금액은 소송비용을 고려해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청구금액은 모두 같나.
대통령이 대통령 직무를 이용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경우, 그 범죄의 상대방은 당해 범죄로 인해 입은 적극 손해, 소극 손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구체적인 피해사례는 지금 계속 수집 중이다. 재산상 손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하면, 일정한 위자료를 청구할 예정이다.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뽑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없나.
정신적 피해의 정도, 즉 대통령의 국정농단 그리고 대통령직을 이용한 범죄행위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은 정도는 모든 사람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다른 사람 보다 더 많은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법원은 원고들의 위자료를 일률적으로 정할 것이다. 위자료 액수는 법원이 직권으로 정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추진 중인 곽상언 변호사가 증거물로 수집해 놓은 자료들 중 일부. 사진/법무법인 인강
민사법적 입장에서 박 대통령 같은 인물을 뽑은 국민의 과실은 없을까.
선거로 뽑은 대통령이 선거 이후 대통령직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를 미리 알 수 없다. 국민들로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대의기관의 하나로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뿐이다. 선거와 관련한 절차적인 문제, 민주주의 고유의 문제가 있을지언정, 민사적인 측면에서 국민의 과실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소송참가 신청하면 대법원까지 대리하나.
변호사의 업무 범위는 “심급대리”가 원칙이다. 즉, 이 사건에 참가 신청한 국민들께서 각 심급별로 위임해 주셔야 하고 심급별로 소송비용을 납부해 주셔야 한다. 1심이 끝나고 나면, 소송에 참가하신 국민들의 뜻을 여쭤 보고 진행할 계획이다.
위자료 중 일정 부분을 기부 받아 공익재단 설립에 쓰겠다고 했는데.
저는 이 소송을 진행하면서 ‘돈을 벌겠’는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제 손해를 감수하고 진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송 결과에 따라 변호사가 일반적으로 지급 받게 되는 ‘성공보수금’ 전액을 공익 목적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제가 지급 받게 되는 ‘성공보수금’도 소송에 참가하시는 국민들께서 자율적으로 정하시는 것이고, 그 성공보수금이 사용되는 방법도 국민들께서 정하시게 될 것이다. 국민들의 선택에 따라 공익재단에 기부해도 되고, 새로 공익재단을 만들어도 될 것이다. 나중에 위자료 청구 소송이 종결되면 소송에 참가하시는 국민들께 여쭤 보고 결정할 것이다.
본인 외에 다른 변호사들도 대리인으로 참가하나.
저희 법무법인에는 저 이외에도 여러 분의 변호사님들이 근무하고 있다. 대표변호사로서 모든 변호사들께 의사를 확인하고 참가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소송대리인으로 참가하지 않는 변호사들도 노력과 마음은 함께 할 것이다.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에서는 어떤 노하우를 얻었나.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은 제가 지금까지 진행했던 사건 중에서 가장 어렵고도 의미 있는 사건이다.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주는 사건이면서도 그 안에는 불공정성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참가하시는 만큼, 소송참가 신청을 하신 대규모 원고들을 관리하고 사건을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분들이 참가하시는 소송의 진행에 대한 노하우를 취득했다. 충분히 활용해서 사건이 지연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이번 소송의 의미는 무엇인가.
저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나라가 번영하기를 원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얼른 벗어나야 한다. 재차 강조하지만 지금과 같은 헌정중단사태는 대통령이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위자료 청구소송을 진행하면, ‘소장’이 청와대로 송달된다. 국민의 뜻이 담긴 ‘소장’이 청와대로 송달되면, 소장은 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된다. 박 대통령은 소장을 읽어야 하고 비로소 국민의 뜻을 알게 될 것이다. 촛불에 담긴 민심을 외면할 수는 있어도, 소장에 담긴 국민의 뜻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점이 가장 큰 의의라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대통령이 국민의 뜻에 따르도록 법적으로 보장된 모든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국민의 뜻을 하루라도 빨리 듣고 그에 따라 결단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직접 듣게 되면 국민의 뜻을 따를 것으로 믿는다.
법무법인 '인강' 변호사와 직원들이 28일 서울 서초동 서초프라자 사무실에서 '박근혜 대통령 상대 국민집단 소송'을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법무법인 인강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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