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검사는 누가 아는 체해도 목을 꼿꼿하게 세우고 인사를 받지 말아라". 사법연수원 교수가 연수원생들에게 가르쳤다는 말이다. "검사는 30년 연상까지는 누구하고도 맞먹어도 된다". 부장검사가 시보들에게 가르쳤다는 말도 있다. 아무개 변호사가 쓴 글을 한국일보가 인용한 내용이다. 눈을 비비고 다시 읽어봤다. 만담이 아니었다.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는데, 목을 '꼿꼿이' 세우고 연장자와 맞먹는 검사의 눈에는 뭐가 보일까 궁금했다. 참고인이건 피의자건 검사 앞에 서면 모두가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구속부터 서두르는 검찰 앞에서는 '무기평등의 원칙'이나 '무죄 추정의 원칙'은 무색하다.
폭언과 폭행을 일삼아 부하 검사를 자살에 이르게 만든 부장검사를 "해임하라"는 건의안을 내면서 대검찰청 감찰본부장은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말을 썼다. '참마'(斬馬)란 "말의 목을 벤다"는 뜻이다. 검사의 해임을 '참수'에 비유할 만큼 검사의 지위가 높은가.
대한민국에서는 검사가 판사와 동일한 지위를 인정받는다. 어디를 가나 검찰청사가 법원청사와 어깨를 나란히 견주지만, 영미나 유럽에서는 검사의 지위가 판사와 맞먹지 않는다. 해외 방문에 나선 일부 검사들은 검사를 공소관(Prosecutor)이라고 소개했더니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아 불만이었다. 외국인들에게 재미 삼아 검사를 법의 심판관(Judge)이라고 통역했더니 상대방의 대우가 달라지더라는 일화도 있다.
검사를 '심판관'이고 해서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검사는 어느 모로 보나 판사보다 꿇리지 않는다. 처벌하는 판사보다 처벌해 달라고 요구하는 검사가 더 겁나게 보이기도 한다. 검찰공화국이라는 비유는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언제부터 이랬을까. 건국 때부터 '간첩을 때려잡던' 반공 검사들은 명성을 날렸다. 제3공화국이나 제5공화국 초기 잠시 군인들에게 명성이 가렸지만 여전히 검찰의 권력은 불변이었다. 권력을 위해 잘 드는 칼이 필요했던 유신시대 때 검사들은 상종가를 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력을 해체하고 싶었지만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는 어록만 남기고 미완의 꿈에 머물고 말았다. 노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당시 중수부장은 "저승에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나면 '왜 그런 선택을 해서 검사로서 삶을 그만두게 했느냐'고 따지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검사님의 속사정>(2011년)을 집필한 한겨레 기자는 당시 중수부장이 "여당이든 야당이든 걸리면 걸리는 대로 때려잡는 게 검사의 일 아니냐. 범죄 혐의가 명백해 보이는데 전직 대통령이라고 사건을 덮고 넘어가는 게 바른 검사가 할 일인가"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권력이론 중에는 '사법부자제'라는 것이 있다. 대통령의 통치행위와 같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는 사법적 심판이 가능하지만 사법부가 심판을 자제한다는 말이다. 같은 논리에 따르면, 법의 심판관인 검찰도 자제해야 할 사안이 있다. "걸리는 대로 때려잡는 게" 검사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당시 그 중수부장 아래에서 노 전 대통령을 조사하였던 과장검사가 권력의 핵심에서 수석비서관을 맡고 있어서 제행무상을 느끼게 만든다. 그는 풍전등화일까, 아니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일까. 두고 볼 일이겠으나 '권불십년'이라는 말은 검사에게는 통하지 않는 경구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처럼 일부 검사들의 일탈은 검사들의 명성과 비례했다. 일탈은 일탈을 부른다. 읍참마속의 대상인 부장검사보다 높은 전·현직 검사장들의 잇단 실추에 대해 검찰은 두드러진 논평 하나 없이 검찰개혁 의지를 표명했다. 검찰 스스로 '깨끗한 손'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하지만 회계비리를 저지른 기업들의 수사를 지켜보면서 불안한 마음이 든다. 전직 사장단을 수사하던 검찰의 칼이 수사에 협조하던 현직 사장단을 겨냥하는 모습을 보고 검찰에 대해 같은 걱정이 든다. 누가 누구를 개혁할 수 있을까. 개혁의 대상이 개혁에 앞장서는 양상이 빚어지지는 않을까.
집안 싸움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어느 재벌가의 회계를 파헤쳤더니 엉뚱하게 재벌총수가 범한 초유의 증여세 포탈 혐의가 포착됐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검찰은 자신에 대한 개혁에서도 과거 중수부처럼 성역 없는 칼날을 들이댈까. 아니면 검찰 자제론을 원용할까. 세인들의 관심사다.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