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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사미' 기업 구조조정 "자구노력이면 됐다"…합병·분할 등 산업재편은 '무'
냉·온탕 오가더니 결국 STX조선 1곳만 법정관리
금융당국·채권단 주도 구조조정 한계…"시장 혼란 초래" 지적
2016-06-08 17:05:57 2016-06-08 17:47:13
[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국내 대형 조선사의 구조조정은 인수합병보다는 자체적인 생산능력 감축 등 자구안이 이행되는 수준에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법정관리로 들어 간 곳은 중소조선사인 STX조선 1곳뿐이다. 
 
당초 부실 기업은 과감히 퇴출시키겠다며 고강도 구조조정을 예고한 강경 기조에서는 한발 퇴보했다는 평가다. 수 년째 묵혀온 곪은 상처를 건드렸다는 의미는 있지만 금융당국 및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이 적지 않은 한계점을 남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냉탕 온탕을 오가는 정책으로 시장 혼란만 가중 시킨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미국 현지시각으로 지난 4월15일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기자 간담회에서 현대상선 사례를 거론하면서 "공급 과잉업종·취약업종 구조조정을 더는 미룰 수 없으며, 빨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지난 3월 "조선사 구조조정은 현재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고 했지만, 그로부터 불과 두 달이 되지 않아 정반대되는 유 부총리의 구조조정 드라이브 발언이 나온 것이다. 이로써 4월 총선 이후 구조조정은 모든 경제 이슈를 빨이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같은 달 26일 열린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 회의에서 정부는 구조조정 밑그림을 내놨다. 정부와 채권단이 조선과 해운은 경기민감업종으로 두고 구조조정을 본격화 하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지 않겠다고 강조하면서 올해는 조선·해운업의 운명을 가르는 시기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총선 이후 본격화된 기업 구조조정이 조선·해운 업종을 대상으로 두달여 간 진행됐지만 정리된 기업은 STX조선해양 1곳 뿐이다.
 
조선 빅3(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업체는 물론, 수조원의 혈세가 투입된 성동조선 등 중소조선사의 구조조정도 시급한 과제였으나 강도 높은 자구안을 이행하는 것으로 자금 여유가 있다는 스트레스테스트 결과가 나왔다.
 
이와 관련 대우조선해양은 작년 10월 1조8500억원의 자구안을 내놓은 이후 3조5000억원의 추가 계획을 내놨다. 총 5조3000억원 규모다. 삼성중공업은 비핵심자산과 잉여 생산설비 매각, 인력 감축으로 1조5000억원을, 현대중공업은 하이투자증권 등 3개 금융회사 매각, 자회사 분할 후 지분 매각, 인원 감축 등을 통해 3조5000억원을 확보키로 했다.
 
당초 구조조정 강경 드라이브와 반대로 1순위 산업재편 업종으로 꼽힌 조선업에 대한 구조조정 대원칙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인수합병에 대한 이슈를 꺼내지도 못하고 자구노력 기반으로 '살려나가는 방향'으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이번 구조조정 계획에서 산업재편을 꾀하는 인수합병 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대형사 간 합병에는 외국과의 통상마찰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등 현실적인 장애요인이 있다는 설명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실적인 장애요인으로는 상장사인 대형 조선사들이 주주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나서서 인위적인 빅딜을 제시하면 통상 문제를 야기할 수 있지만 조선협회 등 산업계 자율적으로 큰 그림을 그려볼 수는 있었을텐데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해운업의 구조조정도 당초 목표를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용선료 협상, 해운동맹 가입 등 개별 이슈에 함몰돼 기업생사에 대한 논의는 사라졌다는 비판이다.
 
해운업 구조조정의 핵심 키로 떠오른 현대상선의 용선료 인하 협상은 당초 예상보다 지연되고 있음에도 금융당국이 마감시한을 여러 차례 연기하면서 고강도 기업 구조조정 분위기가 한풀 꺾이는 분기점이 되기도 했다.
 
결국 금융당국이나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은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용선료 협상부터 해운동맹 가입의 문제는 금융당국이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밖이다"며 "마감시한을 정하면서 시장에 어설프게 개입한 부분도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인력감축이나 자산매각 등 자구안에만 집중한 결과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을 챙기는 것도 요원해졌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조선사 자구안에 대해) 수주절벽을 버틸 수 있는 대책이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구조조적으로 단시일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방안은 나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물론 기본적으로 대형·중소형 조선사 모두 자체 자구노력을 기반으로 구조조정이 추진되지만, 향후 상황에 따라 업계의 재편이 이뤄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기업구조조정 추진계획과 국책은행 자본확충에 대한 방안 백브리핑에서 "중소조선사에는 더이상 추가자금 지원은 없다"고 밝혔다. 자체 유동성 확보 방안을 가지고 살아남으라는 의미다.
 
중소조선사 가운데 삼성중공업과 경영협력을 맺은 성동조선은 자구계획을 제대로 이행한다면 2019년까지 자금 부족이 없을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성동조선을 제외한 중소조선사는 자구안을 이행해도 내년 중 자금이 부족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업구조조정 추진계획 및 국책은행 자본확충 등 보안방안 합동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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