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무책임한 권력은 얼마나 위험한가
2016-05-12 06:00:00 2016-05-12 06:00:00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기쁘고도 슬펐던 4월이 가고, 느닷없는 임시공휴일과 함께 5월이 왔다. 하지만 선거의 여왕은 여전히 잘못이 없고, 지구촌에는 막말 정치인이 부상하는 기운이 이어진다. 같은 당 지도부에서도 혀를 내두르는 트럼프야 그렇다 쳐도, 필리핀과 브라질에서조차 약자에 대한 혐오를 거리낌 없이 표출하는 자들이 대통령에 당선되거나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떠오른다니 아연할 뿐이다.
 

우리도 여전히 세월호 특위의 연장은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서 국회가 잘 해야 할 일이고, 미세먼지는 매연이 나오지 않는 차를 구입해서 해결하며, 발명가가 꿈이라는 아이는 창조혁신센터를 찾아가면 된다는 대통령을 마주한다. 그토록 간단히 풀릴 문제였으니 걱정 자체가 쓸데없는 일이었다. 시대착오적 정치인도 이처럼 쉽게 처리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유명한 외국 드라마의 대사처럼 권력은 사람들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있다는데, 문명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지에서 출몰하는 ‘트럼프족’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비해야 할지 궁금하다. 안병진 교수의 지적처럼 “미국과 한국 모두 지금은 거대한 지축이 흔들리는 문명의 전환기”에 있다면 더욱 그렇다.

분명 보수 내지 수구의 미래는 방황하고 있다.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지 못한 것이다. 정당하지 못한 힘의 숭배와 권위의 과시, 비뚤어진 언론에 기대어 혹세무민의 정치를 지속하려는 시도는 처절한 반성을 통해 극복되기보다 극단적인 막말에 기대어 ‘보수의 르네상스’만을 꿈꾼다.

 

이토록 심각한 극단의 시대에 우리가 찾아야 할 길은 무엇일까. 이명박과 박근혜를 거치며 한국판 시장보수와 이념보수의 극단과 퇴행을 남김없이 겪었으니, 이제 다시 전진하는 역사만을 꿈꾸며 미래를 낙관하면 충분할 일인가.

 

그러니 ‘잘하는’ 정치란 무엇이고, ‘좋은’ 정치인이란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공자는『논어』에서 정치란 어떤 것이고, 어떻게 해야 좋은 정치가 되는가에 대하여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제자 자장(子張)에게 답하기를 “바른 데에다 몸을 두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며, 남을 바르게 하는 일을 실행할 때는 충심을 다해서 하라(居之無倦 行之以忠)”고 했다. 또 다른 제자의 질문에는 “정치란 바르게 해주는 일이다(政者正也)”라고도 했으니 어찌 보면 참으로 간단명료한 일이다.

 

다산 선생은 공자의 말씀을 해석하며, “바른 몸가짐으로 맡은 직책에 게으름 없이 부지런히 일하고 그 결과로 남들까지 바르게 될 수 있다면 정치인의 임무를 다한 것”이라는 주석을 남겼다 한다(박석무). 얼핏 보면 쉬운 것 같지만, 결국 옛 성현들조차 추상적인 올바름을 내세웠으니 구체적인 행동을 찾는 일이 쉽지 않겠다. 하지만, 총선을 통해 정치권을 심판한 민초들은 분명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둔 소망이 있을 터이다.

 

그러니 우선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말과 행동, 겉과 속이 일치하는 정치인을 갖는 게 아닐까 싶다. 즉,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지향하되 표리부동(表裏不同)하지 않고, 언행일치(言行一致)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이뤄내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좋은 정치인일 것이다.

 

동양에서는 함포고복(含哺鼓腹)을 이상적 정치의 대명사로 전해 왔다. 의식주에 근심이 없이 태평하고 행복한 생활에 만족하여 통치자가 누군지도 모를 정도의 세상, 바로 그것이 정치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본 것이다.

 

한국의 보수정권 8년 동안 나타난 두드러진 변화는 ‘권력의 뻔뻔함’이다. 그 결과 정치가 시민의 근심이 되었으니 함포고복은 요원하다. 국민은 과중한 책임에 시달리지만 국가는 위험관리는커녕 갖은 핑계와 함께 희생양을 찾는다. 그러니 중대한 사태의 배경에는 ‘개인적 일탈’만이 있을 뿐이다. 대통령은 자나 깨나 나라 걱정이라는데, 사라진 7시간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런 무책임에 대하여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Charles Wright Mills)는 “우리는 저 높은 곳에서 무책임성이 조직화됐다고 느낀다. 특히 우리 시대의 역사적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고 설파했다. 그렇다면 결국 오늘 우리가 바라는 정치인의 바른 몸가짐이란 신념윤리보다는 책임윤리의 실천에 있다. 위정자가 바르게 열심히 일하면서도 책임을 피하지 않으면 시민들은 어느새 태평하고 행복해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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