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인사이트)목소리 커지는 주주들…CEO 연봉인상에 제동
'사회적 형평성' 문제 야기하는 임원 연봉…연례 투표 등으로 주주 감시 활성화
2016-04-27 12:00:00 2016-04-27 12:00:00
지난 14일 영국 석유대기업 BP의 연례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은 밥 더들리 회장의 연봉 인상안에 분노를 표했다. BP는 지난해 20년만에 최악 수준인 45억파운드의 적자를 기록하고 직원 4000명을 정리해고 했음에도 더들리 회장의 보수를 1150만파운드에서 1400만파운드로 20% 인상하는 안건을 주총에 상정했다. 주주들은 59% 이상이 반대표를 던지면서 경영진에 거세게 항의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투표였지만 BP 경영진에게는 확실한 경고장이었다. 보통 주총에서 임원 보수 개정안에 대한 반대율은 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BP는 더들리 회장이 2010년 멕시코 기름유출 사건을 원만히 해결하고 이후 회사를 건실하게 이끌어온 것을 인정한 인상안이라 설명했지만 주주들은 "불합리하고 몰상식한" 인상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헨릭 스반버그 이사회 의장은 총회에서 "주주들의 우려를 이해한다"며 한발 물러섰고 연봉 인상안을 재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업의 고위 임원에 대한 과다한 연봉 책정이 연례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도마에 올랐다. 주주들은 경기침체와 부진한 경영실적에도 매년 인상되는 최고경영자(CEO)의 연봉에 불만을 터뜨리며 주주총회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반대를 표명하고 나섰다. 영국에서는 BP를 비롯해 FTSE 100대 기업에 속하는 의료기 제조업체 스미스앤드네퓨의 주주들이 주총에서 임원 연봉 인상안에 대해 과반수의 반대표를 던졌다. 가디언 등 주요 외신은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표를 던지는 것은 과도한 보수를 요구하는 경영진의 해임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경고라고 해석했다. 
 
주주총회서 경영진 임금인상에 '경고장'
 
대형 광산업체 앵글로아메리칸과 건설자재업체 CRH, 광고회사 WPP 등 영국 주요 기업들의 주주들도 임원 보수에 대해 철저한 조사에 나섰다. 해당 기업들은 곧 열릴 주주총회에서 지난 2012년처럼 연봉 지급 승인에 제동이 걸릴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앵글로아메리칸의 경우 지난해 주가가 70% 떨어졌지만 마크 커티파니 회장의 보수는 45% 올랐다. 마니폴드 CRH 회장의 연봉은 지난해 129만파운드에서 올해 140만파운드로 올랐다. 보너스와 주식으로는 연봉의 6배에 이르는 최대 800만파운드를 받을 전망이다. 초고액 연봉으로 유명한 마틴 소렐 WPP 회장은 올해도 지난해와 같은 6300만파운드의 보수를 유지키로 했다. 
 
반면 주주들은 기업의 수익성과 실적을 반영하지 않는 임원 연봉 책정 방식에 불만을 표하며 터무니없이 높은 연봉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력히 맞서고 있다. 일부 주주자문단은 주총 전 주주들에게 임원 연봉 인상안에 반대표를 던질 것을 적극 권장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크 힐드야드 연금및평생적금협회 기업지배구조 담당자는 "불확실한 전망과 정리해고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최고경영진에 대한 과도한 인센티브는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다한 임원 연봉은 이해관계자 사이의 불필요한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며 "조직의 목표가 달성됐더라도 임원의 연봉이 명백하게 부적절한 수준이라면 (연봉 인상에) 좀 더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금융권은 성난 주주들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유럽 최대 은행인 HSBC는 최근 열린 주총에서 임원 연봉 상정안에 대한 주주들의 반대를 미리 파악하고 선수를 쳤다. HSBC는 임원의 퇴직 연금을 연봉의 50%에서 30%로 낮추고 고위직 임원 연봉도 계획보다 1년 앞서 7%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조세 회피 스캔들인 '파나마 페이퍼(Panama Papers)'와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더글러스 플린트 이사회 회장의 사임과 관련해 퇴직금에 대한 주주들의 지적을 예상한 조치였다. 앞서 투자자들은 스튜어트 컬리버 HSBC 회장에 대해서도 지난해 연봉이 직원 평균 임금의 169배에 달하는 730만파운드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 밖에도 스탠다드차타드와 아시안포커스드뱅크, 헤지펀드 맨그룹 등도 주주들의 임원 연봉 개선안에 대한 반응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HSBC 연례 주주총회가 열렸던 지난 22일 일부 주주들이 총회장 밖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HSBC 임원들을 빗댄 '뚱뚱한 고양이' 의상을 입고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사진/로이터
 
과다한 연봉에 '사회적 형평성' 문제제기
 
영국 시민단체 하이페이센터(High Pay Centre)의 자료에 따르면 FTSE 100대 기업 CEO들은 연봉과 보너스 등을 합쳐 평균적으로 매년 560만파운드(약 93억원)를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공시된 62개 회사의 2015년 재무자료를 근거로 산출한 금액이다. 스태판 스턴 하이페이센터 대표는 "기업들의 연간 보고서를 보면 고위직 임원의 보수 인상은 지난 20년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페이센터는 지난해 FTSE 100대 기업의 CEO 보수와 일반 직원 1인당 임금 격차가 149배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최고경영진에 대한 고액 연봉은 최근 논란이 된 '파나마 페이퍼'와 맞물려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이달 초 파나마의 법률회사 몬색 포세카가 작성한 전 세계 갑부들의 해외재산 운영방식 및 조세회피 자료가 온라인으로 유출되면서 빈부격차 및 양극화 등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커진 상태다. 이 상황에서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고액의 연봉을 받아가는 것도 양극화를 부추기는 행위로 여겨지며 비우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HSBC처럼 기업 경영진이 직접 파나마 페이퍼에 연루된 사례가 있다는 점도 분위기를 악화시켰다. 과거에는 기업 임원의 연봉이 실적과 관련된 문제였다면 지금은 도덕이나 사회 정의에 대한 문제로 범주가 확장된 것이다. 
 
'승인투표제'로 주주의 영향력 키워
 
임원 연봉 책정에 대한 주주들의 영향력은 제도적 개선을 바탕으로 꾸준히 커져왔다. 영국에서는 투자자들에게 매년 회사 임원의 보수 개정안에 대해 투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보수 개정안에는 임원들에게 지급하는 연봉과 보너스 및 다양한 특전을 소개하는 자료가 포함돼 있다. 주주들은 투표로 보수 개정안에 대한 찬반 의사를 밝히게 되는데 아직까지는 투표 결과에 대한 법적 구속력은 없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 2014년부터 새롭게 채택된 승인 투표제는 임원 보수 규정에 대해 3년마다 주주들의 승인을 받도록 해 주주들에게 더 큰 힘을 싣고 있다. 이 제도는 법적 구속력이 있어 반대표가 50% 이상 나올 경우 회사는 보수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한동안 주주들은 경영진의 사기를 꺾고 실력 있는 CEO가 유출될 것을 우려해 반대표를 던지길 꺼려왔다. 하지만 경기가 악화되면서 임원들의 과다한 보수에 대한 정상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2년부터 주주들이 과반수의 반대표를 던지며 임원의 보수 개정안을 거부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보수인상안에 대한 주주의 반대 때문에 앤드류 모스 아비바그룹 CEO는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투명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주주들은 임원들의 연봉 책정에 기업의 전반적 성과가 공정하게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기업공시 규정에 임원들의 상세한 보수 정보가 포함되게 된 것은 주주들이 이뤄낸 성과다. 특히 공시 의무가 소급 적용돼 투자자에게 제공되고 있는 점이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CEO 연봉인상 요건 점점 까다로워져
 
대기업들도 스스로 임원 연봉 인상을 제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FTSE 100대 기업 중 47곳의 연례보고서를 조사한 결과 CEO나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연봉은 올해 평균 2% 상승한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연봉의 중간값은 94만파운드였다. CEO의 42%는 연봉이 동결됐다. 피오나 카멘줄리 PwC 조사담당자는 "임원에 대한 보수가 동결된 경우는 아직 적은 편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늘어나고 있다"며 "이는 임원들의 높은 보수에 대한 공정성 논의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임원의 연봉을 책정하는 기업의 '보수 위원회'는 주주들의 건의가 늘어나자 임원들의 연봉을 책정할 때에도 보다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CEO의 성과 및 공헌을 면밀히 검토해 연봉 인상에 반영할 뿐 아니라 CEO의 이탈을 막기 위해 지급 주식의 의무 보유 기간을 늘리는 등 요건을 강화하고 있다. 
 
신지선 토마토CSR연구소 연구위원 jise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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