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희소성 있는 곡 연주해야 클래식 미래 밝아진다"
첼리스트 양성원, 올 한 해 세종체임버홀서 '양성원의 체임버 스토리' 공연
2016-04-19 15:49:31 2016-04-19 16:04:13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첼리스트 양성원이 올해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홀에서 총 6차례에 걸쳐 실내악 시리즈를 펼친다. 이번 공연은 모차르트와 멘델스존 등 널리 알려진 음악가의 곡 외에 코다이, 도흐나니, 쇼송, 쇤베르크 등 다양한 음악가들의 곡으로 꾸려져 관객의 귀를 기분 좋게 자극할 예정이다. 
 
4월28일 첫 무대는 코다이 작품 세 곡으로 꾸려진다. 첼리스트 양성원이 영국 그라모폰지으로부터 극찬을 받은 바 있는 연주 곡도 포함돼 더욱 기대를 모은다. 이어 6월9일에는 도흐나니와 쇼송, 브람스 작품이 연주돼 시적인 감수성을 자극할 예정이다. 또 8월25일과 26일에는 비엔나와 파리에서 활동한 모차르트, 베토벤, 쇤베르크, 라벨 등의 세련미 넘치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11월6일 마지막 무대에는 리스트, 쇼팽, 라흐마니노프의 낭만적인 선율이 기다리고 있다.
 
양성원 이외에도 눈길을 끄는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함께 할 예정이다. 피아니스트 임동혁, 김정원, 문익주,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김다미, 그리고 양성원이 속해 있는 트리오오원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협연자로 나선다. 소규모의 밀도 높은 앙상블을 통해 대형 오케스트라 연주와는 또 다른 클래식의 매력을 전하겠다는 양성원 첼리스트를 공연에 앞서 미리 만나봤다.  
 
첼리스트 양성원. 사진/세종문화회관
 
-첼리스트 양성원에게는 '지적이다, 독창적이다'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곤 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웃음). 글쎄, 우선 칭찬으로 받아들여져서 감사한 마음이 있다. 사실 우리가 연주하는 레퍼토리들은 인류의 역사, 흔적이 남겨져 있는 음악들이기 때문에 연주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거다. 보통 어떤 언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언어를 이해해야 하지 않나. 음악도 마찬가지로 어느 나라 말을 공부하듯이 음악 언어를 우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과정 때문에 이런 코멘트들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음악이라는 것은 마음의 언어다. 어느 누구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일단 그 마음을 알아들어야 된다. 그런데 악보만 가지고는 사실 너무나도 한계가 있다. 오선 위에 그려진 음표들만 갖고는 (작곡가의) 마음의 언어를 표현할 수가 없다. 음표 뒤에는 우리가 공부할 수 있는 무한한 세상이 있다. 계속 반복해서 공부를 하고, 진짜로 그 마음이 내 마음에 와 닿는지 시험하기 전에는 연주할 수 없다보니까 이런 평가가 나오는 것 같다.(웃음)
 
-어떤 곡을 마음으로 이해할 때까지 보통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
 
어렸을 때는 훨씬 더 간단하게 생각했다. 그냥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잘한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연주를 해야 한다. 내가 연주하는 음악에 (작곡가의) 혼이 남아 있고 나는 없어져야 하는 단계가 됐다. 음악가의 언어, 혼, 철학이 담겨져 있는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양성원이라는 사람은 완전히 없어져야 할 만큼 준비가 돼야 하는데 그러기까지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새 곡을 배울 때는 주로 1년 전에 시작하고, 했던 곡을 다시 할 때는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하고 항상 연구하게 된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것을 항상 상기하면서 해야 한다. 모르는 걸 조금씩 터득하는 과정에서 확실히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는 게 느껴진다.
 
-자신을 음악 뒤에 숨기면서도 음악인으로서 개성을 잃지 않는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작곡가가 자기 마음에서 들려오는 음이 무엇이길래 이 악보에 이렇게 썼을까'를 찾는다. 오선에 써 있는 음들은 작곡가가 가장 자신의 마음과 가깝게 옮긴, 일종의 번역이라고 본다. '과연 어떤 마음이 있었길래 이런 방식으로 썼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두 손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것, 그 자체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게 되는데 그게 진짜 재미있다. 그걸 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몰라서 계속 연주하게 되는 것 같다. 내 나름대로의 방식이라는 걸 굳이 찾으려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작곡가의 혼을 조금 더 깊이 채우는 게 내가 음악을하는 재미, 보람을 느끼는 과정인 것 같다.
 
-이번 '양성원의 체임버 스토리'에 대해 소개해달라. 멘델스존, 리스트, 라벨 등의 명곡과 코다이, 도흐나니, 쇼송, 쇤베르크에 이르기까지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게 짜여졌다. 일반인에게 익숙한 곡도 있지만 아닌 곡도 상당수인데 이렇게 구성한 이유는.
 
우선은 곡들이 하나같이 너무나도 훌륭한 곡들이다. 그리고 어려운 곡들도 사람들이 이해하게끔 하는 게 내 목표다. 쉬운 것을 상업적으로 그냥 계속해서 들려주는 것은 내가 추구하는 세상과는 좀 멀다. 다양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곡, 사실 의미가 있는 곡들을 고른 거다. 세종체임버홀에서 쇤베르크 곡을 한다고 하면 다들 굉장히 어려운 현대음악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쇤베르크 곡에는 이상적인 사랑을 꿈꾸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 그즈음 비엔나하고 얼마 떨어져 있지 않던 파리에서 라벨이 얼마만큼 쇤베르크와 다른 언어를 썼는지를 들려주고자 한다. 훨씬 더 풍부하고 다양한, 사회에 필요한 문화예술적인 연주가 되지 않을까 해서 프로그램을 이렇게 짰다. 
 
-지난해에는 세종 체임버시리즈를 통해 베토벤 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같은 장소에서 실내악 시리즈를 이어서 하는 셈인데 올해는 좀더 자신감이 들지 않나.
 
베토벤을 하면 자신감보다는 겸손함을 배운다. (웃음) 겸손해진다. (웃음) 
 
-바흐나 베토벤을 나중에야 좋아하게 됐다고 들었다.
 
어렸을 때는 비틀즈가 최고였다. '헤이, 쥬드'가 최고였다. 
 
-오토바이도 타고 다녔다고 하던데. 그 때의 대중적인 감수성은 이제 완전히 떨쳐버린 건가.
 
지나간 거다. 비디오게임에도 완전히 빠져 있었는데 사실 굉장히 어려운 공부를 어린 나이에 했었다. 그 때 당시에는 또 요즘처럼 한국사람들이 해외에 많이 나가지도 않았었다. 본고장에서 서양 애들 상대로 연주를 해 나간다는 게 굉장히 스트레스였다. 당시 기회가 되어 조그만 오토바이를 탈 수 있게 됐다. 이런 말 하면 안되는데 해방감을 느꼈다. 요즘 서울에서 오토바이 탄다면 그건 뭐, 진짜 위험한 일이겠지만. 아무튼 나름대로 성장과정에서의 절차 아니었나 싶다. 그런 걸 겪었기 때문에 나중에 큰 탈 없이 오랫동안 음악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번 시리즈는 4월 말 시작해 11월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첫 번째 연주회의 프로그램은 헝가리 작곡가 코다이의 곡으로 꾸려진다. 코다이의 곡과 인연이 깊다. 2002년 EMI에서 발매한 음반 '코다이 작품집'이 영국 그라모폰지에서 '에디터스 초이스'와 '크리틱스 초이스'로 선정되기도 했었는데.
 
첫 솔로 레코딩이 코다이였다. 한국사람으로서 느끼는 헝가리의 음악을 전달할 때 이 두 국민성이, 혼이 가까워진다는 걸 느꼈었는데 서양에서 연주했을 때도 그렇고 CD도 그렇고 굉장히 반응이 좋았다. 이번에는 아주 오래간만에 연주하는 셈인데 전에 많이 했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작품번호4' 하고, 그간 안 했었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주 작품번호7'와 '무반조 첼로 소나타 작품번호8'을 같이 한다. 이렇게 완전히 코다이로만 프로그램을 짠 것은 처음이다. 그 전에는 바흐의 곡과 코다이의 곡을 함께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짰었는데 코다이 곡으로만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CD를 같이 냈던 문익주 교수님께서는 굉장히 오랫동안 손 부상 때문에 연주를 못했었다. 그런데 이제 다 나으셨고 이번에 무대에 같이 선다. 나로서는 굉장히 뜻깊은 공연이다.
 
-실내악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는데. 실내악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사람들이 어려운 음악이라고 부르는 게 사실 많이 안 알려져 있고, 희소성이 있는 음악들인데 나한테는 그런 음악이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새로운 것을 내가 접했을 때 깨달음이 있고 내 세상이 조금 더 넓어지는 순간들이 생긴다. 물론 더 어렵지만 희소성이 있는 곡들을 조그마한 공간에서 더 적은 청중들과 나눈다는 게 너무나 매력적이다. 몇 천 명의 관중 앞에서 하는 것과는 또 다르다. 어디서나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것에서는 못 느끼는 것들이 있다. 그 새로움을 찾는 청중들과 나누는 순간들이 기쁘다. 사실 이런 기쁨을 찾고자 하는 게 많은 음악가들이 갖춰야할 마음가짐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래야만 클래식 음악이 오래 갈 수 있다. 연주가 잘 안되는 곡을 청중들에게 들려주는 게 클래식 음악의 미래와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그 대신 이 새로운 곡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파악해서 그 곡의 영혼을 고스란히 살려서 연주를 해야 된다는 점에선 또 부담도 많다.
 
-이번 프로그램 중 가장 기대할 만한 공연을 꼽는다면.
 
프로그램마다 아주 유명한, 잘 알려진 곡들과 덜 알려진 곡들 사이 밸런스를 맞추려는 노력을 했다. 사실 저로서는 대중을 추구하는 것보다 좀더 깊이를 추구하다보니, 이런 프로그램이 나왔다. 사실 각 연주회마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곡들이 있다. 심어놨다. 근데 그게 무엇인지는 말씀 안 드릴 거다(웃음).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7살 때 첼로를 시작했으니 벌써 40년이 넘었는데.
 
42년 됐다.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 아직까지는 내가 소리를 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언젠가는 소리가 나오기를 바란다. 명연주의 경우 그 사람들로부터 그 소리가 나온다고 느껴지고, 그게 나에게 영감을 준다. 나도 어느 날 소리를 내는 것보다 나를 통해, 악기를 통해 소리가 나오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매공연마다 훌륭한 연주를 하는 것 외에 아주 큰 도전이 또 있다. 내 삶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다. 아주 많은 레퍼토리들이 있지만 또 비슷한 공연들이 사실 많다. 그리고 가족 관계도 있고, 연주자들, 청중들, 제자들도 때때로 상대한다. 이 모든 것에서 밸런스를 잘 맞추고 싶다. 가령 자연을 예로 들자면 자연에는 햇볕도 있어야 하고, 좋은 공기도 있어야 하고, 하늘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나무들이 자라고, 그럴 때 또 건강한 사회가 이뤄지지 않나. 햇볕이 좋다고 계속해서 햇볕만 볼 수는 없는 거다. 그렇게 생각을 하려고 한다. 건전한 게 무엇인지, 장기적으로 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단기적인 끌림을 조금 많이 포기해야 하는 단계들이 있다. 
 
-평화롭고 조화로운 세계가 연상된다.
 
아니다. 절대로 평화롭지 않다. 내 자신과의 싸움이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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