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인사이트)식품업계의 신뢰회복 전략 '정보공개'
스마트라벨·고유코드 등으로 생산·제조과정 공개…비용 상승이 관건
2016-03-23 12:00:00 2016-03-23 12:00:00
[신지선 토마토CSR연구소 연구위원]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식품회사의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식품 제조 과정에서 여러 유해 물질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식품에 대한 소비자 불신은 높아진 상황이다. 소비자들은 안전한 먹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인공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식품이나 유기농 식품을 찾고 있다. 미국에서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0% 이상이 비싸더라도 건강한 식품을 구매하겠다고 답했다. 미국 식품정보 추적업체인 레포지트랙의 랜디 필드 회장의 말처럼 "역사적으로 식품 산업은 신뢰를 바탕으로 했지만 이제는 그 신뢰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식품 업체들은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비용을 들이고서라도 먹거리의 안정성을 증명하는 절차를 구축하고 있다. 원재료의 생산부터 판매까지 식품 재료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최근 식품업체들이 소비자 신뢰를 되찾기 위해 식품 정보공개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미국 뉴욕주 알바니에 있는 한 슈퍼마켓에서 소비자가 식품의 포장지를 꼼꼼히 읽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AP
 
최근 미국에서는 '내추럴(natural·자연)' 식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식품 업계는 화학물질을 첨가하지 않은 식품이나 자연적 원료에 근거한 식품들에 이른바 '내추럴'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마케팅하고 있다. 닐슨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내추럴'이라고 표기된 제품 판매는 24% 증가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식품업계가 내추럴이라는 단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컨슈머리포트가 지난해 미국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분의2가 내추럴 식품을 유기농이나 건강식품으로 착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내추럴 표기에 특별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는데 이 말이 소비자를 오도할 수 있으므로 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식품 업체가 내놓은 내추럴 식품을 믿지 않는 소비자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이노베이션 그룹이 10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69%의 소비자들은 제품 라벨에 있는 내추럴 표기를 믿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식품 업계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을 드러내는 조사 결과다. 그동안 유해물질 논란 등으로 식품 제조업체들이 먹거리의 안전성을 보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소비자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근 몇몇 기업들은 앞장서서 식품 정보 공개에 나서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투명한 식품 정보 공개 전략으로 성공하고 있는 미국 식품 제조업체들을 조명했다. 포장지에 표시된 정보가 부족해 믿을 수 없다고 느끼는 소비자들에게 보다 많은 정보를 공개하면서 신뢰를 얻는 전략을 쓰는 곳들이다. 자신이 먹는 식품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 하고 식품 제조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이나 인권문제, 지속가능성 등에 주목하는 소비자 집단을 겨냥한 것이다. 이들 식품 업체들은 식품의 원재료가 어디에서 생산됐고 식품이 어떤 방식으로 제조됐는지 자세히 공개하고 있다.
 
생산자 알려 '건강한 식품' 이미지 구축 
 
피쉬피플(FishPeople)은 애피타이저, 수프, 냉동식품 등을 제조하는 미국의 수산물 가공 식품업체다. 3년 전 설립된 이 회사는 제품 원재료인 수산물의 생산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업체 웹사이트에서 제품 포장에 새겨진 특수 코드를 검색하면 생선의 원산지와 식품 제조과정에 대한 정보가 나온다. 바다에서 생선을 잡아 올린 어부의 신상 정보도 볼 수 있다. 일부 제품의 포장에는 어부와 조업 선박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던칸 베리 피쉬피플 회장은 "소비자는 식품 재료의 생산자 정보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곡물 유통업체 리얼(Real)은 2년 전부터 곡물 포장에 생산지 정보를 담고 있다. 쌀 포장에는 파키스탄의 농장의 이름을 써 넣었고, 재배 농부의 사진도 실었다. 리얼은 세계 각지의 농장과 협력해 수입한 곡물을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고 있다. 덕분에 원산지 정보를 소비자에게 상세히 알릴 수 있다. 코스타리카에서 생산된 비정제 원당과 히말라야에서 나는 분홍빛 소금(핑크솔트) 등은 리얼이 직접 수입해서 판매하는 제품이다. 
 
피쉬피플과 리얼은 소비자의 요구에 민첩하게 대응해 성공한 경우다. 생산지 정보가 공개된 '덜 가공된' 자연 식품으로 시장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중소 업체가 떠오르는 사이 대형 식품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은 5년간 4.3% 하락했다. 
 
대형 업체들도 정보공개 행렬 동참
 
최근에는 위기감을 느낀 대형 업체들도 속속 정보 공개에 나서고 있다. 허쉬는 모바일 기술을 이용한 '스마트 라벨' 시스템을 도입했다. 소비자가 스마트폰 등으로 제품 포장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하면 제품의 영양 및 구성 성분, 원재료 정보, 알레르기 주의사항 등 자세한 정보가 나온다. 문의를 누르면 그 자리에서 회사와 연결돼 바로 궁금한 점을 해결할 수도 있다. 
 
데브 아르콜리오 허쉬 정보공개 프로젝트 부문 대표는 궁극적으로 스마트 라벨을 통해 초콜릿의 주재료인 코코아 원두의 생산국 정보까지 공개될 것으로 전망했다. 허쉬는 현재 여러 국가에서 수입한 코코아 원두를 한 데 섞어 초콜릿을 만들고 있어 소비자는 구입한 키세스 초콜릿이 어디에서 재배한 코코아로 제조됐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아르콜리오 대표는 "소비자의 알권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특정한 제품과 생산지를 연결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며 "소비자가 과연 그런 세부 정보까지 원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캠벨수프도 대형업체 중에서는 제품 정보 공개에 독보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캠벨은 지난해 소비자 요구를 수용하고 경쟁사와의 차별화를 강화하기 위해 왓츠인마이푸드닷컴(whatsinmyfood.com)이라는 웹사이트를 열었다. 사이트를 통해 제품 성분 정보를 제공하고 제품이 지역사회 생산물로 만들어졌음을 알리고 있다. '스파게티오' 캔 파스타는 캘리포니아주의 가족 농장에서 수확한 토마토와 위스콘신주에서 제조한 효소숙성치즈로 만들었고, 아이들에게 인기 과자인 '골드피시'는 유타, 오하이오, 필라델피아 세 곳의 공장에서 굽는다는 것을 공개하는 식이다. 드니스 모리슨 캠벨 회장은 "소비자가 모든 것을 측정하고 있으며 그들은 식품의 정보를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캠벨은 지난 1월 미국 기업 중 최초로 유전자조작(GMO) 성분을 라벨에 표시하기로 결정했다. 연방정부의 GMO 성분 표기 법안을 지지한다며 미국 내에서 판매되는 '페퍼리지 팜' 과자와 '프레고' 파스타소스를 포함한 모든 식품에 유전자조작 여부를 표시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7월에는 어린이용 수프에 MSG 사용을 중지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오는 2018년 7월까지 모든 인공 색소와 향료의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비용상승·가격인상 피하긴 힘들어
 
하지만 여전히 비용 및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정보 공개를 꺼려하는 업체들도 많다. 대표적으로 몬산토와 펩시, 켈로그 등 대형 식품업체들은 워싱턴주와 캘리포니아주 등에서 GMO 표시 법제화를 강력히 저지해왔다. GMO 식품을 표기하면 불필요한 비용을 초래하고 결국 가격 인상 및 매출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대형업체는 복잡한 생산 공급망을 가지고 있어 재료의 생산지를 추적하고 그에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까다로운 작업이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작업은 자연스레 제조원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비용 문제가 정보 공개의 걸림돌인 것이다. 
 
소형 업체도 비용 문제를 피하기는 힘들다. 현재 피쉬피플의 참치캔은 개당 5달러 수준으로 1.7달러에 불과한 경쟁사 스타키스트에 비해 3배나 비싸다. 피쉬피플은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수산물 생산자에게 자사 납품용 생산을 타사 납품용과 분리해줄 것을 요구했고, 생선을 담는 상자에 할당한 고유코드가 선박, 매장, 웹사이트까지 연결되도록 하는 추적 시스템을 구축했다. 지속가능한 수산물을 위해 어획하는 생선의 종류에 제한을 두고, 그물이 아닌 낚싯대로 어획하는 등 해양자원의 보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건비 등이 상승했고 제품 가격이 따라 올라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뜨겁다. 피쉬피플의 지난해 연간 매출은 설립 3년만에 200만달러를 기록했고, 올해 매출은 전년대비 20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측됐다. 베리 회장은 "생산자 직판 매장의 규모를 키운 것과 같다"며 "소비자가 바닷가 시장에서 어부에게 직접 생선을 구매하며 느끼는 보람을 재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피쉬피플은 최근 월마트와 손잡고 미국 전역에 3100여개의 판매처를 확보했다. 월마트는 앞서 '식품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겠다'는 목표 하에 2500억달러 투자를 결정한 바 있다. 식품 안전성 및 지속가능한 환경 등 새로운 영역에 관심을 가지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음을 깨닫고 피쉬피플의 협력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신지선 토마토CSR연구소 연구위원 jise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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