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인사이트)무료 대학 강의 ‘무크’, MBA의 콧대를 꺾다
저렴한 수강료 등에 무크 인기상승…MBA, 무크와 손잡으며 온라인 진출
2016-03-16 10:50:53 2016-03-16 10:50:53
[토마토CSR연구소 신지선 연구위원] 대학 강의가 강의실 밖으로 나왔다. 온라인 공개강좌인 '무크(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s)'가 등장하면서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누구나 고품격 대학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됐다. 무크는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대학의 온라인 원격 강좌를 말한다. '재생'만 하면 실제 학습 여부와 상관없이 수강이 완료되는 단순한 동영상 강좌와는 다르다. 무크를 수강하려면 한 학기와 같이 일정 기간 동안 매주 온라인에 접속해야 한다. 동영상 강의를 듣고, 교수가 지정해 준 교과서나 자료를 읽고, 사이버 토론에 참여하며, 과제를 수행하는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질문과 토론 등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무크는 수강생이 시공간을 선택하는 학습자 중심 강의다. 전 세계 다양한 참가자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는 공개 학습의 장으로 IT기술 발전이 가져온 새로운 형태의 열린 교육으로 주목받고 있다.
 
무크의 도전으로 명성 높은 경영대학원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사진은 미국 메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 있는 하버드대 캠퍼스의 모습. 사진/뉴시스·AP
 
온라인 공개강좌 무크의 가장 큰 매력은 세계 유수 대학의 강의를 무료로 청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구든지 세계적으로 저명한 교수가 강의하는 사이버 교실에 앉아 강의를 듣고 질문도 할 수 있다. 게다가 '하버드대 법학 개론'과 같은 명품 강의 수강을 위해 돈을 낼 필요도 없다. 무크는 '에세이 쓰기'등 교양 강의부터 '암호 작성술' 같은 신기술 과정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다. 대학의 세련된 강의를 통해 자기 개발이나 심화 학습을 손쉽게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무크는 지난 2008년 오픈소스의 대중화와 함께 처음 등장했다. 하지만 2012년 무크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플랫폼이 나오면서 비로소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대학들은 독자적으로 혹은 외부기관과 함께 무크 플랫폼을 설립했다. 하버드대와 메사추세츠공대(MIT)가 지난 2012년 합작해 만든 '에드엑스(edX)'는 비영리기관이다. 현재 90개 이상의 기관들과 함께 800개가 넘는 강의를 제공하고 있다. '코세라(Coursera)'는 2012년 스탠포드대 교수진들이 벤처 자금으로 개발한 플랫폼이다. 1500개 이상의 강의를 운영하고 있으며 전 세계 28개국에서 1300만명에 이르는 수강생을 보유하고 있다.
 
무크 수강료, MBA의 60분의1
 
무크의 등장은 전통적인 '강의실 중심' 대학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특히 경영대학원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동안 승진 및 이직을 위한 돌파구로 선택되던 MBA 진학 열풍이 수그러들고 있기 때문이다. 1년짜리 학위과정을 개설하면서 지원자를 모집하던 경영대학원은 무료 강의로 도전에 나선 무크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MBA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보통 풀타임 MBA과정을 마치려면 2년이 필요한데 그동안 직장을 다닐 수 없다. 게다가 MBA과정의 학비는 6만달러가 넘는다. 주거비용과 기회비용을 합하면 총 비용은 15만달러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경제적인 부담이 매우 큰 과정인 것이다. 반면 무크는 시간 활용이 자유로우면서 경제적인 부담도 거의 없다.
 
포춘지는 최근 '돈 내지 않는 MBA(No Pay MBA)'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무크 추종자를 소개했다. 미 국제개발기구에서 일하는 로리 피카드는 지난 2013년부터 2~3년 동안 16개의 무크 과정을 수강했다. 학점 기준으로는 MBA 과정에서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섰지만 총 비용은 1000달러가 채 들지 않았다. 수강한 16개 강좌 중 '창업정신'과 관련한 강좌가 5개였는데 이 정도면 MBA 과정에서 전공으로 인정받을 만한 수준이다. 피카드는 '보이지 않는' MBA 졸업장을 얻은 셈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무크를 통해 MBA과정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만의 MBA 커리큘럼을 만드는 방법 등을 전수하며 'No Pay MBA'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다.
 
MBA 시장 키우는 무크
 
파이낸셜타임즈(FT)는 최근 무크 등 온라인 학습이 확대되면서 대학에 시대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경영대학원의 좋은 돈벌이 수단인 MBA 과정이 무크와 같은 신기술 기반 강의 때문에 몰락할 수도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답은 '아니오'다. FT는 무크와 MBA 시장을 조사했는데 각각의 수강생은 다른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무크 플랫폼 퓨처런(FutureLearn)의 수강생 50만명 중 20%는 고졸자다. 또 그 중 62%는 여성이다. 무크와 MBA 시장이 다르기 때문에 무크의 인기가 경영대학원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앨리슨 데이비스 미시건대 경영대학원 학장은 미시건대 강의가 코세라에서 제공된 후에도 MBA 지원자는 증가했다고 밝혔다. 코세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경영학 수업인 '금융 입문'은 2012년부터 총 85만명이 수강했고, '협상 기술'은 2014년부터 총 43만명이 수강했다.  하지만 2014-2015학년도 MBA 지원자 수는 전년대비 30% 증가해 MBA의 수요는 무크의 인기와 별개임을 보였다.
 
FT는 오히려 무크가 MBA 시장 확대를 돕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학이 무크를 제공하면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가 강화되는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이 점이 해외 학생 모집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무크에서 강의를 맛본 후 MBA과정에 지원하는 학생들도 생기고 있다. FT는 무크 수강 이후 미 버지니아주립대 경영대학원에 진학한 러시아 수강생 즈단 사키로브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그는 샘플로 무크를 수강했던 게 MBA 과정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MBA도 '강의실' 넘어 '가상'으로
 
무크가 MBA의 직접적인 경쟁상대가 아니라는 분석에도 경영대학원의 고민은 멈추지 않고 있다. 전통적인 강의 형식으로 IT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몇몇 유명 MBA 대학은 무크와 상생하는 길을 택했다. 
 
2015년 일리노이주립대 경영대학원은 코세라와 함께 'iMBA' 학위를 개발했다. iMBA는 무크와 MBA 강의를 통합한 학위 과정이다. 코세라에서 일리노이주립대 경영 과목을 6개 수강하면 일리노이주립대 MBA 과정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등록 후 실제 캠퍼스에서 진행되는 MBA 과목 6개를 더 수강하면 iMBA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 총 비용은 약 2만달러로 모두 3만3000달러가 드는 풀타임 MBA 과정에 비해 40% 정도 저렴하다. 무크의 편리함과 MBA 대면 강의의 실질적인 장점을 결합한 신생 MBA 과정이다. 까다로운 MBA 입학 요건과 지원 과정을 생략할 수 있는 편리한 방법이기도 하다.
 
MIT, 다트머스대, 콜럼비아대는 글로벌 IT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MBA의 미래를 모색하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들 3개의 경영대학원은 싱가포르의 벤처기업 '에머리터스'와 손잡고 글로벌 MBA 시장 공략에 나섰다. '글로벌 아이비리그'를 만든다는 목표로 대학들과 합작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아스윈 다메라 에머리터스 대표는 "세계 어디에서든 유명 대학의 MBA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며 "유명 대학의 MBA 캠퍼스를 회사 안으로 옮겨 각국의 바쁜 직장인에게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머리터스는 현재 리더십과 혁신, 재무, 마케팅 등 9개의 과목을 온라인에서 제공하고 있으며 올해 말까지 과목 수를 20개로 늘릴 계획이다. 각 과목의 수강 기간은 6~8주 정도로 일주일에 4시간이 소요된다. 평균 비용은 750달러로 MBA의 과목당 학비 2500달러의 30%에 불과하다. 강의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되지만 오프라인 수업에도 참가해야 한다. 무크와는 차별적으로 수강생 수에 상관없이 5~7명이 팀별로 과제를 수행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에머리터스는 MBA 강의에 맞는 IT기술을 개발했다. 다른 학생과 실시간으로 온라인 시뮬레이션에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강의에 적용한 것이다. '선두 조직과 변화'라는 강의를 수강하면 팀별로 8가지 순차적 결정을 내리는 시뮬레이션에 참가하게 되는데 이는 팀별 경쟁 과제다. 또한 모바일 앱으로 팀원뿐만 아니라 강의를 듣는 전체 학생들과 상호작용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도 있다.
 
말레파키스 콜럼비아대 경영대학원 학장은 "콜럼비아대가 대학의 브랜드 리스크를 걸고 외국 스타트업과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의아해 할지 모르지만 MBA 시장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위험"이라고 말했다. 
 
신지선 토마토CSR연구소 연구위원 jise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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