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좌절된 '아랍의 봄'…민주화 대신 참혹한 시련만
내전·IS 등 치안 상황 최악 상태…저유가 경제위기 우려까지
2016-01-17 12:00:00 2016-01-17 12:00:00
지난 2010년 겨울 튀니지의 20대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는 단돈 7달러 때문에 죽음을 선택했다. 높은 실업률과 경제난 때문에 대학을 나와서도 취직을 하지 못했던 그는 과일 노점상을 운영하며 어머니와 다섯 동생, 몸이 아픈 삼촌을 돌봤다. 7달러는 운 좋은 날 벌 수 있는 최대 수입이었고 부패한 정부 관료는 그 돈을 뇌물로 요구했다. 부아지지는 뇌물을 건네는 대신 정부청사 앞에서 분신자살을 했다. 이후 폭정과 가난에 시달리던 아랍인들은 자발적으로 민주화 운동을 벌였다. 세계사회는 '아랍의 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그들의 봄날을 함께 응원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아랍의 시간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눈앞에 온 것 같던 봄은 저만치 멀어졌고 이제는 생존마저 위협받는 더 참혹한 겨울이 이어지고 있다.
 
2011년 튀니지를 시작으로 아랍 전역에 번졌던 민주화 운동은 튀니지와 이집트, 리비아, 예멘에서 독재정권을 몰아내는 성과를 이뤘다. 이들 4개국의 독재자들은 모두 합쳐 117년이나 그들 나라를 주물렀던 폭군들이었다. 그러나 폭군이 물러난 자리에는 또 다른 혼란이 찾아왔다. 수년간 이어지는 내전과 또 다른 독재 권력의 등장,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 이슬람 종파간 갈등은 아랍을 피로 물들였다.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나라는 튀니지 한 곳에 불과했다.
 
내전 아니면 국가분열…더 악화된 정치상황
 
리비아는 2011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도움으로 42년간 정권을 잡았던 독재자 카다피를 몰아냈다. 이듬해에는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하면서 민주화에 다가서는 듯 보였다. 하지만 민병대 사이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했고 현재는 이슬람주의 세력과 세속주의 세력으로 분열되며 나라가 둘로 쪼개졌다. 혼란을 틈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리비아를 장악했고 현재는 두 세력 중 어느 한 곳도 나라를 제대로 통치하지 못하고 있다.
 
시리아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을 보내고 있다. 평화롭게 시작했던 민주화 시위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내전이 됐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권력을 내려놓는 대신 자국을 파멸시키고 있고 IS는 시리아 영토의 3분의1을 장악하며 시리아인들을 궁지로 내몰고 있다. 2011년 이후 지금까지 3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440만명이 넘는 난민이 생겼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뉴요커)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경제적 피해도 컸다. IS가 문화유적을 파괴하면서 발생한 손실만 2000억달러로 추산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시리아가 전쟁 이전 최소한의 경제수준으로 돌아가는 데 20년이 걸린다고 추정했다. 이마저도 연평균 3%의 경제성장을 해야 가능한 시나리오다.
 
이집트에서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해 900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시계는 다시 과거로 돌아갔다. 민주화 시위 이후 정권을 잡았던 무슬림형제단은 2013년 7월 군부정권에 의해 축출됐으며 2014년 대통령직에 오른 압델 파타 엘시시는 학살과 고문을 일삼으며 무바라크보다 더 심한 철권통치를 하고 있다. 예멘에서도 정치적·종파적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사우디가 지원하는 시아파 연합군과 이란의 지원을 받는 수니파 연합이 무력충돌을 벌이고 있으며 지난달 15일 유엔(UN)의 중재로 이뤄졌던 휴전은 이달 초 약 보름만에 종료됐다.
 
지난 14일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 시민들이 민주화운동 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아랍권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이 일어난지 5년이 지났지만 민주화에 성공한 국가는 튀니지 밖에 없다. 사진/뉴시스=AP
 
튀니지만이 평화를 찾아가고 있다. 튀니지는 아랍의 봄의 근원으로 시위가 시작됐던 지난 2011년과 2013년 무사히 자유선거를 치러냈다. 지난해에는 미국의 시민자유모니터단체인 프리덤하우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라는 평가를 받았고 신헌법을 주도한 '국민4자대화기구'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벤 알리 전 대통령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3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3000명이 넘는 튀니지인이 IS 군대에 합류하는 등 진통과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IS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테러도 세 차례 있었다. 주요 수입원이었던 관광산업은 민주화 운동과 이어진 테러 등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아직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 실패 원인은 국가적 취약성과 종파갈등
 
아랍의 봄이 결국 아랍의 재앙이 된 데에는 대내외적인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내재적인 취약성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다. 민주화를 수용할 만한 능력 자체가 부족했던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그 동안 아랍의 봄이 실패한 것은 서방의 간섭과 근거 없는 낙관론 때문이었다고 지적해온 일부 아랍권 여론은 설득력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중동 국가 대부분은 2차 세계대전 전후로 완전히 새로 생긴 나라"라며 아직 국가를 통합하기에도 벅찬 곳이 많아 정치 발전을 위한 역량이나 의식이 제대로 성숙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주변국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도 결국 국가적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서 교수는 중동국가의 사회 안정을 위해서는 "나라가 제대로 만들어지도록 하는 국민국가 형성이 가장 시급한 일이고 또한 국민들이 먹고살 수 있도록 사회·경제적 발전도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슬람의 종파간 갈등이 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도 문제였다. 시아파가 주도한 바레인의 민주화 운동은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군사개입으로 묵살 당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사우디 연합군이 예멘 내전에 개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지적했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도 내전을 키우는 과정에서 종파 갈등을 이용했다. 시리아내 수니파를 탄압·학살하면서 사실상 IS의 확산을 방조했다. 이라크의 일부 수니파도 시아파 정부의 폭정을 견디지 못하고 IS로 돌아섰다. 인디펜던트는 이슬람 극단주의가 민주화를 위협하게 된 이유에 대해 독재에 항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슬람운동을 활용했으나 이후 그 속에서 기존 권력을 대체할 새로운 힘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내전과 이슬람국가(IS)의 테러를 피해 나라를 떠난 시리아 난민은 440만명이 넘는다. 사진은 지난 14일 요르단 국경 인근에 모인 시리아 난민의 모습이다. 사진/로이터
 
이 밖에도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IS와 알카에다 등의 세력 확장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나 독재자가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악랄하게 저항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점 등도 문제의 원인으로 꼽혔다. 인디펜던트는 "'아랍의 봄'이라는 말은 과거 동유럽 국가들 탈공산화처럼 아랍국가들도 평화롭게 민주주의로 이양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줬고 정치적 요소를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보도록 하는 오류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유가급락 따른 경제위험 전이 우려도
 
민주화 운동 이후 5년간 이들 국가들의 경제는 무너졌다. IMF가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비교해본 결과 지난해 리비아의 경제수준은 2010년 대비 49.9%나 추락했다. 같은 기간 예멘의 1인당 GDP는 37.1% 하락했고 시리아도 8.7% 내렸다. 튀니지는 10.7%, 이집트는 9.1% 높아졌지만 성장률이 20%가 넘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라크, 모로코에 비해서는 미약한 수준이다.
 
민주화 시위와 그 여파로 아랍 국가들이 8300억달러(약 976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달 말 두바이에서 열린 '아랍전략포럼(ASF)'에서 나온 내용으로 아랍의 봄과 그 이후 발생한 전쟁과 난민 문제, 경기침체 등으로 막대한 재정 손실이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저유가로 촉발된 중동의 경제 리스크가 민주화운동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국가들로 옮겨갈 수 있다는 데 있다. 지난 7일 두바이유 가격은 11년만에 20달러대로 추락한 이후로 배럴당 27달러선까지 내려갔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를 포함한 세계 3대 원유 중 가장 가격이 낮다. 여기에 지난해 핵협상을 타결한 이란은 원유 수출 재개를 앞두고 있어 유가의 추가하락은 불가피하다. 최근에는 수니파 종주국인 이란과 시아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종파적 갈등이 심화되며 국제유가가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아랍의 봄이 휩쓸고 갔던 국가들은 리비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석유 순수입국이다. 그럼에도 유가에 영향을 받는 것은 이들 경제가 산유국과 연동현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손성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같은 중동이라는 이유로 산유국들은 아랍국가에 유·무상 경제지원이나 석유 원조 등을 많이 하고 있다“며 "또 이집트나 요르단 등에서는 걸프만 지역으로 파견하는 인력이 상당한데 경기위축으로 취업시장이 악화되면 외화송금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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