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영국의 씽크탱크로 알려진 레가툼 연구소(Legatum Institute)는 '2015 세계 번영 지수'를 발표했다. 지수가 높을수록 살기 좋은 나라를 의미하는데, 한국은 조사대상 142개 국가 중 28위를 차지했다. 1위는 7년 연속 정상을 지키고 있는 노르웨이였고,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 일본, 홍콩, 대만 다음으로 높은 순이다. 여러 지수 중 한국이 가장 높은 순위는 '경제'와 '안전·안보' 분야가 17위였고, 가장 낮은 순위는 '사회적 자본'으로 85위에 머물렀다.

사회적 자본이란 '신뢰, 참여, 배려를 통해 공동체 내외간의 협력을 촉진시키는 유무형의 자본'을 말하는데, 이 중 핵심은 '신뢰'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 하는 선진국은 이 사회적 자본이 높게 나타난다. 사회적 자본이 잘 구축된 국가일수록 구성원 상호간의 신뢰 높고 이를 뒷받침 하는 법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어 거래 비용이 낮고 사회 효율성은 높다.
사회적 자본의 대표적인 예는 '마잘'이다. 뉴욕 맨해튼 47번가는 약 2,600여개의 다이아몬드를 취급하는 점포가 밀집한 거리로 전 세계 다이아몬드 거래의 절반가량이 거래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수억, 수십 억 원이 넘는 다이아몬드를 거래하면서 계약서 한 장 작성하지 않는다. 단지 '축하합니다'라는 뜻의 히브리어인 '마잘'이라 말하며 악수를 하는 것으로 거래가 성사되었음을 확인한다.
보다 가까운 예로, 계약서 작성 시 우리나라는 변조 방지를 위한 간인에다 도장 진위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인감증명서까지 첨부한다. 반면,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마지막 장에 서명 하나로 간단히 끝낸다. 또한 우리나라는 국가 지원 사업 참여 시 부정사용을 방지하기 위해 신청 단계부터 사업비 사용 및 정산단계까지 각 단계별 엄격한 절차를 따라야 하고 많은 양의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이 과정이 오죽 힘들면 정부기관에서 '연구지원 전문가 과정'이라는 교육을 개설하여 관련 인력을 별도로 양성할까? 우리나라의 사회적 자본 수준이 높았다면 서류 증빙 등 비본질적 업무에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여하는 거래 비용이 높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반가운 일이 있었는데, 얼마 전 금융위원장 및 금융감독원장과의 간담회에서 금융개혁 관련 자료를 보며, 한국의 사회적 자본이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금융개혁 안에 포함 된 여러 정책 중 기술금융과 관계형금융 강화, 그리고 창업•초기기업의 연대보증 폐지는 사회적 자본의 핵심인 기업과 사람에 대한 높은 신뢰 없이는 추진할 수 없는 정책이다. 다른 분야도 아니고 돈과 관계되어 있어 가장 높은 신뢰를 필요로 하는 금융 분야에서 이러한 개혁은 매우 긍정적이다.
기술금융과 관계형금융 강화는 유형 자본인 담보 위주의 대출 관행을 개선하고,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혁신기술, 대표자 경영능력과 도덕성 등 혁신성과 발전가능성이라는 무형•신뢰 자본의 비중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창업•초기기업의 연대보증 폐지는 채무반환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이 '불신'에서 '신뢰'로 변화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여전히 담보 위주 대출 관행이 주를 이루고 있고, 창업•초기기업을 대상으로 한 소액 연대보증의 폐지이지만 금융위의 이러한 정책 기조와 관점의 변화는 혁신적이라 생각한다.
최근 우리사회는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를 거치며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사고가 널리 퍼지고 있고, 장기불황으로 인해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난무하고 있다. 사회적 자본의 발전을 통해 구성원간의 연대를 강화하고, 이를 동력으로 한 경제발전이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작은 날개 짓이 태풍을 일으키는 나비효과처럼 이번 금융개혁이 성공적으로 정착되어 한국의 사회적 자본 확대에 큰 기여를 하길 바란다.
이규대 이노비즈협회(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 회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