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전순옥(62) 의원은 지난 3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날 새벽 국회를 통과한 내년도 정부 예산안 때문이었다. 의원실에서 만난 전 의원은 "오늘 기분이 나쁘다"며 자리에 앉았다. 전 의원은 "정부가 말로는 민생과 서민을 외치면서 예산을 보면 하나도 그렇지가 않다. 겉과 속이 다르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새정치연합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해외 자원개발의 문제를 파헤치는 데 누구보다 힘을 쏟았다. 도시형 소공인 정책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당에서 소상공인특별위원장과 민주정책연구원 소상공인정책연구소장도 맡고 있다.
전 의원은 2001년 영국 워릭대에서 'They are not machine(그들은 기계가 아니다)'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한국에선 2004년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라는 책으로 번역·출판됐다). 1970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전태일 열사의 외침은 동생인 전 의원에게 이어졌다. 전 의원은 "한강의 기적에도 일하는 이들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며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전순옥 의원이 지난 10월6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사진/전순옥 의원실
-지난해 발의한 '도시형소공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올해부터 시행됐다. 지난 5월에는 장인들을 인터뷰한 '소공인'이라는 책도 냈다.
1998년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며 소공인에 관심을 가졌다. 영국에서 10여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기술자들을 만났다. 1960~1970년대부터 공장에서 일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룬 사람들이다. 하루에 16시간씩 일하면서 기적을 만든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150명을 만나서 인터뷰했는데, 이 사람들의 삶은 하나도 안 바뀌어 있었다. 당시 논문 심사위원들이 3가지를 주문했다. 책으로 출판하라는 것, 시간이 흐른 뒤 논문에 나오는 당사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다시 쓰라는 것,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하라는 것이었다.(웃음) 논문은 이미 출판됐고, 올해 '소공인' 책도 나왔으니 두 가지는 이룬 셈이다.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도 소공인 정책 활동을 많이 했는데.
소공인이라는 개념부터 만들었다. 보통 소상공인이라고 하는데, 상인에 비해 공인 정책이 부족했다. 중소기업중앙회, 법학연구원 등과 연구를 하며 소공인 특별법을 만들었다. 전국에 소공인 지원센터가 25곳이 만들어졌다. 5개 거점에서 공동 브랜드, 마케팅 사업도 펼친다. 법이 만들어지고 나서도 전국을 돌아다녔다. 소공인들이 '우리도 뭔가 하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진 것이 가장 큰 성과다. 눈물을 글썽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이들은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졌으면서도 희망이 없었다. 자식들에게 자신의 일을 시키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었다. 영국에서 '보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라는 정치인은 "정치는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소공인들에게 희망을 줬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뿌듯하다.
-전국을 돌면서 만난 소공인의 현실은 어땠나.
소공인들은 원하청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납품단가 후려치기'라는 말처럼 공정하지 않은 납품단가 때문이다. 경기가 조금만 안 좋아도 단가를 낮춰 달라는 요구를 받아서 고용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정치가 왜 있나. 이런 것들을 풀어줘야 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소공인들은 수십 년 동안 정책 사각지대에 있었다. 작은 공장들은 전국에 30만 개가 훨씬 넘고, 일하는 사람들도 90만 명이 넘는다. 정부가 이런 곳에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예산을 써야 한다. 재벌들도 정부 지원으로 세계적 대기업이 됐다. 소공인들이 기술을 바탕으로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는데, 국가가 조금도 뒷받침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너무 속상하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는데, 제조업 전망은.
제조업이 가장 많은 타격을 받으리라고 본다. 그나마 농업 분야 대책은 나왔지만, 제조업은 부각도 되지 않았다. 제조업, 특히 섬유·의류 쪽 영향이 클 것이다. 우리 시장으로 밀려들어오는 저가 제품에 맞서려면 고부가가치 시장을 어떻게 개척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가격을 절감해서 경쟁력을 갖추는 것보다 고품질의 고가 정책으로 가야 한다. 내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10억명이 넘는 중국시장, 부자들을 공략해야 한다. 소공인들이 가진 기술과 인프라를 활용해 정부가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의원회관에서 청소노동자들과 친근하게 지내시는 모습을 우연히 봤다. 정부가 '공공기관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을 지키지 않고 청소노동자 임금 예산을 대폭 삭감해 논란이 됐는데.
예산안 통과되는 걸 보며 화도 나고 실망스러웠다. 당장 예산을 반영하기가 어렵다면 조금이라도 임금을 올리면서 청소하는 분들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지금은 부족하지만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정부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려는 데 관심이 없다. 분노가 솟구쳤다. 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사회가 존중해줘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에 자긍심과 희망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국회에 있어보니 청소해주시는 분들, 밥 해주시는 분들이 가장 고맙다. 그분들이 없으면 국회는 하루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정부·여당의 '노동개혁'을 어떻게 보고 있나.
노동자들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경제가 어려우니까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고 순종하라는 식이다. '노동개혁'은 내용도, 방향도 잘못됐다. 물론 대기업 중심 노동조합이 잘한다고만 볼 수 없다. 지금처럼 노사 '관계'가 없고 갈등만 있을 때일수록 끌어안아야 한다. 경제가 재도약하려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득해야 한다. 지금처럼 찍어누르는 방식이 이어지니까 투쟁도 계속된다. 사람에 대한 투자도 늘려야 한다. 예를 들어 세계금융위기 때 독일 메르켈 총리는 다른 나라와 달리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일감이 없다고 해서 해고하지 않고, 오히려 직업 훈련을 해서 앞날을 준비하도록 유도했다. 경기가 풀리면서 일감이 쏟아지니까 경제가 살아났다. 인력부터 감축한 다른 나라는 어떻게 됐나.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중앙아시아를 방문했을 때 동행했다.
나이가 비슷한 동시대 여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때 박 대통령에게 3가지를 얘기했다. 우선 노사 문제를 풀려면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자리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소공인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도 했다. 그리고 소통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박 대통령도 맞장구를 쳤다. 다만 주변에 직언하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자원개발에 꾸준한 관심을 보였던 이유는.
해외 자원개발 때문에 수십조원이 날아가고 광물자원공사나 석유공사 등은 어려운 지경에 놓였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책임이 크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최 부총리는 지식경제부 장관이었다. 이 전 대통령이 자원개발에 꽂히니까 성과를 내려고 말도 안 되는 투자를 했다. 참여정부에서도 해외 자원개발을 검토했지만 투자는 하지 않았다. 최 부총리는 그동안 묵혀 놓고 폐기 처분하려고 했던 자료까지 먼지 구덩이에서 찾아내 공기업에 자원개발을 부추겼다.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박 대통령이 공기업에 빚이 많다고 하니까 기재부 장관이 된 최 부총리는 거꾸로 매각을 지시했다. 지난 정부에선 "해외 자원개발은 단숨에 성과를 볼 수 없고 5년, 10년을 내다봐야 한다"고 말하더니 현 정부 들어선 "공기업 부채가 쌓이니 팔아치우라"고 한다. 도대체 앞뒤가 많지 않다. 경제부총리가 '예스맨'이 되니까 경제가 이 모양이다.
-바깥에서 바라본 정치와 직접 경험한 정치는 어떻게 다른가.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예산소위원회 회의장에서 뛰쳐나온 적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를 통해 쓰는 예산만 30조원가량이다. 국민 세금을 효율적으로 균형 있게 쓸지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지역구 예산을 증액할지만 얘기했다. 체육관 짓고, 길 놓는 데만 혈안이었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지역을 관리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해는 한다. 그래서 비례대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역에 묶이지 않는 예산·법·정책이 필요하다. 의정활동을 하며 비례대표의 중요성을 더욱 느꼈다.
-내년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역구 출마 계획은.
국회의원을 하려면 명분이 있어야 한다. 소공인 정책을 뿌리내리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동안 비례대표로 지역에 얽매이지 않고 활동했다. 지역구 의원들을 보니 할 일이 많아 보였다.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아직 지역을 생각해볼 틈도 없었다. 고민은 많다. 당이 안정되고 총선 향방이 정해지면 그것을 따라 결정할 생각이다.
이순민·박주용 기자 soonza00@etomato.com
지난 10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소상공인특별위원회 발대식 겸 전국투어 보고회에서 전순옥 위원장(둘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 등 위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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