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미디어그룹 베르텔스만의 출판사업부인 랜덤하우스와 영국 피어슨 그룹의 펭귄이 합병해 펭귄랜덤하우스가 된 것은 2012년이다. 두 회사의 매출을 합하면 세계 출판 매출의 25%에 육박했다. 전 세계 출판사 중 1위, 2위로 꼽히는 두 회사가 이렇게 결합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슈퍼공룡'이 된 펭귄랜덤하우스는 이후 온라인에서 독자 커뮤니티를 직접 구축해 독자들의 빅데이터를 모으는 한편 소규모 출판사의 책 홍보도 도와주고 있다. 게다가 독립서점의 개점도 돕고 있다.
다른 출판사들도 슈퍼공룡과 경쟁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흡수 또는 합병을 통해 규모를 키울 수 밖에 없다. 프랑스에 모기업이 있는 아셰트도 영국 출판사를 대거 사들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배고프다. 어디 다른 나라의 출판사는 더 없냐?"며 국민들이 책 좀 읽는 나라의 출판사에 군침을 흘리고 있단다.
일본에서는 다이닛폰(大日本)인쇄가 출판유통의 공룡이 되어가고 있다. 준쿠도, 마루젠, 분쿄도(文敎堂) 등의 서점 체인을 소유하고 있는 다이닛폰인쇄는 키노쿠니야 서점과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다섯 개의 서점체인 중 이제 츠타야(TSUTAYA) 하나만 남았다. 츠타야는 책 매장 이외에도 음반과 영상 매장, 카페 등을 운영하고 있다. 츠타야가 노리는 독자층은 책을 열심히 읽어 온 50~60대의 시니어층이다. 그래서 비즈니스, 처세술 등에 대한 책을 취급하지 않는 츠타야는 인문·문학, 아트, 건축·디자인, 자동차·바이크, 요리, 여행 등 여섯 테마의 깊이 있는 책들로 매장을 구성한다.
하지만 국내 출판 상황은 어떤가? 한때 연매출 1000억 원을 꿈꾸던 웅진씽크빅 단행본사업본부는 작년과 올해에 두 차례에 걸쳐 절반의 직원을 내보냈다. 신인저자를 키우는 데 선구자적 모습을 보여줬던 민음사는 계간 '세계의문학'을 휴간함으로써 문학 출판을 상당 부분 포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추세에 맞추어 새로운 교양에 값하는 인물이나 테마에 대한 베스트셀러를 양산하던 김영사는 내부 경영권분쟁에 휘말려 있다. 그야말로 우리 출판의 '베테랑'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형 출판사에서 밀려나온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창업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 출판의 모습이 정말 초라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의 도서구입 예산은 큰 폭으
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메르스 사태'는 소비시장을 꽁꽁 얼어붙게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11월 21일이면 모든 책의 할인을 10% 이내의 직접 할인과 5% 이내의 간접할인으로 묶은 신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 1주년을 맞는다. 여러 매체나 출판계에서는 1년의 공과를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다. 대체로 '온라인서점과 오프라인서점 맑음', '출판사와 독자 흐림' 정도로 요약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고 있을 여유가 없다. 이미 세계 출판은 하나의 상권으로 묶이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흡수나 합병을 통해 경쟁력 있는 기업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책 플랫폼을 통해 책의 발견성을 키우고 독자와 연결하지 않으면 출판의 침체를 이겨낼 방법은 없다. 플랫폼의 구축을 하루 빨리 서둘러야 할 것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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