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팀과 만난 전직 국민연금 고위 관계자는 2060년쯤 닥칠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기금 고갈 시점을 최대한 늦추려면 주식투자에서 5년마다 100% 수익률을 올리고, 전체 자산에서 매년 6% 넘는 수익을 거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기금운용으로는 사실상 답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한숨이 나오는 것은 국민연금은 물론 정부도 기금운용의 방향성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투자 비중은 점점 늘어, 어느새 국내 증시의 최대 큰 손이 됐다. 국민연금의 투자가 자본시장을 좌지우지할 정도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으로 조성된 국민연금 기금은 총 496조2000억원이다. 이중 금융투자 자산은 494조7000억원으로, 국내채권 264조3000억원(53.5%), 국내주식 95조8000억원(19.3%), 해외주식 64조3000억원(13.0%), 대체투자 48조2000억원(9.7%), 해외채권 20조5000억원(4.1%), 기타 1조6000억원(0.3%) 등이다.
국민연금공단은 1984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채권 수익률은 5.8%를 기록했고, 국내주식은 6.1%, 해외주식은 7.4%, 대체투자는 7.8%, 해외채권은 5.5%를 올렸다고 밝혔다.
언뜻 보면 나쁘지 않은 수익률 같지만, 기획재정부가 올해 8월에 발표한 국민연금 기금운용 성과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연금의 총 기금운용 수익률은 5.3%로, 2010년 수익률 10.6%보다 5.3%포인트나 떨어졌다. 수익률은 2011년 2.3%, 2012년 7.0%, 2013년 4.2% 등 점차 하향세다.
사실 이는 2000년대부터 예견됐다. 저금리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채권 의존형 투자는 수익률 관리에 효과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많아졌다. 이에 정부도 투자수익률 제고를 위한 투자 다변화를 강조했고,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외 주식투자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지난 2003년 12월 기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금융투자 자산 96조5770억원)을 보면 국내채권 88조2053억원(91.3%), 국내주식 6조9451(7.2%), 해외채권 5860억원(0.6%), 해외주식 1500억원(0.2%), 대체투자 2405억원(0.2%), 기타 4501억원(0.5%) 등이었다.
12년 전에는 국내·외 채권투자 비중이 전체의 91.9%였으나 지금은 57.6%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반면 국내·외 주식투자 비중은 4배 이상 늘었다.(7.4%→32.3%) 지난해 말 국민연금공단이 지분율 5% 이상을 보유한 국내 종목은 259개로, 2006년 80개보다 3배 늘었다.
◇2003년과 2015년의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 내역 비교. 자료/뉴스토마토
그러나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비중을 채권(저위험·저수익)에 둘 것인지, 주식투자(고위험·고수익)에 둘 것인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 모양새다. 국민연금공단이 공개한 기금운용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채권과 주식투자 비중은 기금운용위원회 내부에서도 입장이 갈리고 있다.
전직 국민연금공단 고위 관계자도 "채권투자는 저금리 추세에서 수익률 보전은커녕 수익률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 반면, 다른 관계자는 "전체적인 시장 컨센서스를 고려할 때 리스크가 낮은 채권 투자비중은 60% 정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비중 확대 역시 여러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무엇보다 투자가 대형주 중심으로 이뤄지는 데다, 배당 확대 등 주주친화적 정책 요구에는 목소리가 미약하다는 지적이다. 전직 국민연금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코스피 대형주에 올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상위 10개 종목에 33조8000억원을 쏟아부었다. 이는 국민연금의 국내·외 주식투자액 95조8000억원의 30%를 넘는 수준이다. 이밖에 국민연금공단이 지분율 5% 이상을 보유한 259개 종목 가운데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10대그룹 계열사가 상당수다. BS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KB금융지주, 우리은행, 기업은행 등 금융권도 있다.
◇국민연금공단의 투자 상위 10대 종목. 자료/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의 역할론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국민연금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상당수 기업에서 최대주주의 지위에 올라있어 국민연금의 투자와 의결권 행사가 해당 기업의 경영은 물론 기타 주주들의 투자동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시장 강자의 주주총회에서 사측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거수기로 따로 없다.
전직 국민연금 고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투자 비중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시장에서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높아진 만큼 의결권 행사 등을 염두에 둔 전략적 투자 대책도 새로 정비해야 한다"며 또 "단순 투자수익보다 공공성에 기반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는 최근 국민연금이 보인 행보에도 시사점을 준다. 지난 7일 영국계 테스코는 국내 최대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홈플러스를 7조2000억원에 매각하고 국내에서 철수했다. 제2의 론스타로 불리며 먹튀 논란이 제기된 가운데 MBK파트너스에 국민연금이 1조원가량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연금이 테스코의 먹튀를 도왔다는 비판 여론이 형성됐다.
이정희 '홈플러스를 투기자본에 매각하지마라' 시민대책위원회 상황실장은 "근로자 다수가 국민연금에 가입했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일자리를 지키고 고용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의 공적 의미를 되새겼다.
지난 7월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삼성 손을 들어 준 것도, 직전 SK 합병 건에 취한 태도와 달라 논란을 빚었다. 전직 국민연금 고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가장 좋지 못한 선례를 남겼다"며 "앞으로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할 때마다 삼성물산 합병 건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병호·김동훈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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