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뿐인 의결권…"반대합니다" 고작 4%
"의결권 행사 소극적" 한목소리…"부당한 의사결정에 대한 침묵은 배임"
2015-09-16 07:00:00 2015-09-16 07:00:00
◇제일모직과의 합병안이 상정될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를 하루 앞둔 지난 7월16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 5층 임시 주주총회장 입구에서 관계자들이 움직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민연금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막대한 기금을 바탕으로 국내 주요 상장기업의 주식을 상당량 보유, 주요주주 또는 최대주주 지위에 올라있다.
 
시가총액 상위 기업으로 범위를 좁히면 확연해진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9월3일 기준 삼성전자 주식 1179만915주(8.00%)를 비롯해 현대차(1591만4606주, 7.22%), 한국전력(4260만8271주, 6.64%), SK하이닉스(7024만3518주, 9.65%), 제일모직(679만7871주, 5.04%) 등 시총 5위권 기업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 현대모비스(682만6683주,  7.01%), 아모레퍼시픽(473만3170주, 8.10%), 기아차(2444만5665주, 6.03%), SK텔레콤(601만8012주, 7.45%) 등의 우량 주식도 다량 들고 있다.
 
국민연금 지분율은 해당 기업의 경영권을 좌우할 만큼 절대적임에도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에 올라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취재팀이 최근 2년(2014.01~2015.09) 간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기업(2014년 17곳, 2015년 15곳)의 주주총회 안건과 의결권 행사를 전수 조사한 결과, 국민연금은 이들 기업이 상정한 227개 안건 중 단 9건에만 반대표를 던졌다. 비율로 따지면 반대율은 3.96%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사외이사 선임 등 주주가치 제고와는 관계가 없는 안건이 대부분이었다. '거수기 대주주'라는 비판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국민연금 최대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서도 의결권 강화는 찬밥 신세다. 지난 6월9일 열린 제2차 기금위 회의록을 보면, 의결권 행사 강화와 관련해 논쟁이 일었으나 기금위 소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생산적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날 민주노총 소속 김경자 위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거론하며 "너무 과하게 불이익한 측면과 관련, 반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다"며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은 "기금위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주주의 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요구, 행사할 수 있는 배당 관련 안건에서도 기금위는 위원들이 제기한 개선안을 반영하지 않은 채 기존에 상정된 안건만 서둘러 통과시켰다. 김준경 위원(한국개발연구원)이 현대차의 한국전력 부지 매입 사례를 들며 "부동산을 매입하면서 주가가 하락하니까 중간배당을 실시해 주가를 지지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며 "이러한 경우 국민연금이 단기적 수익률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면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기업의 주식은 투자를 축소해 나가는 것이 방법이겠으나, 더 바람직한 방향은 경영진에게 투명경영, 예를 들면 배당과 투자정책을 요구하는 것이 국민경제와 기업의 장기가치 제고, 국민연금의 장기적 수익성 확보 차원에서 윈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더해 일부 위원들의 추가의견이 제시됐지만 결론에는 이르지 못했다. 최병호 부위원장은 "제3안을 마련하기에는 시간도 그렇고, 마무리해야 될 때인 것 같다"며 "회의록에 충분히 기록이 되고, 앞으로 운용하는 과정에서 평가도 있을 것 같다"고 사실상 요구를 묵살했다. 
 
이날 회의에는 대리인이 참석한 기획재정부를 제외하면, 위원장인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물론 정부부처 관계자들 모두 불참했다. 기금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회의 시간이 2시간 정도에 불과해 생산적 논의를 하기엔 짧은 시간이고, 많은 안건이 차일피일 미뤄진다"며 "위원들 또한 전문가는 아니므로 회의 전후로 공부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시급한 안건의 경우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 간에 끝장토론식으로 결론을 지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대해 '수동적'이라는 부정적 평가와 함께 개선의 여지가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현대차그룹이 한국전력 부지를 10조원에 매입하는 것과 같은 의사결정은 국민연금이 주주로서 막아야 했다"며 "회사가 부당한 의사결정을 할 때 의견 표시를 하지 않는 것은 배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김성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기업에 돈만 주고 개입을 안 하면 남의 돈으로 멋대로 하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일상적인 경영에 대한 간섭이 아니라, 주주로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을 피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최근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사태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보듯 오너 리스크는 주주 입장에서 피해이므로, 이런 주주가치 훼손은 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외압 등이 개입할 지배구조 개편 등의 빅이슈는 차치하고서라도 배당 확대 등 주주친화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이 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이는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담보하는 최소한의 방편"이라며 "외국계 자본의 요구와 비교할 때 국민연금은 막대한 지분율에 비해 목소리는 미약하기 짝이 없다"고 지적했다.
 
최병호·김동훈 기자 donggoo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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