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가짜 도서정가제 시대 끝내야
백원근 출판평론가(책과사회연구소 대표)
2015-09-10 11:01:24 2015-09-10 11:01:24
지난해 11월21일부터 시행된 도서정가제가 개정 10개월 째를 맞았다. 국내에서 발행된 모든 책의 최대 할인율(마일리지를 포함한 경제상의 이익)을 정가의 15% 이내로 제한시키고, 도서관이 구매하는 책에도 정가제를 적용시켰다. 정가제 강화 조치는 과연 얼마나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일까.
 
◇백원근 출판평론가(책과사회연구소 대표)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집계한 올 상반기 출판(납본 대행) 통계를 보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발행종수는 11.5%, 발행부수 역시 8.0% 감소했다. 서점계나 통계청의 유통·판매(소비자 구매) 통계치를 봐도 모두 마이너스 행진이다. 개정 정가제 시행 전이던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출판사와 서점의 매출액, 소비자 구매액 모두가 빨간불이다. 생산, 유통, 소비가 상호 연동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광폭 할인을 멈추게 한 정가제 강화 정책은 실패한 정책인가. 그렇지 않다. 여러 마이너스 지표들은 책의 매체 경쟁력이 약화되고, 경제 불황과 소비 침체가 겹치면서 책 구매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때문에 구매력 저하의 요인을 정가제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봐도 그렇다. 할인율이 줄면서 책을 덜 사게 됐다는 이들도 있지만, 책은 할인을 많이 해준다고 구매하는 물건이 아니다. 주로 많이 팔리는 신간(발행일로부터 18개월 미만의 도서)의 법정 할인율 축소는 4%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해, 대한출판문화협회 상반기 통계에서 전체 평균 정가가 지난해보다 4.1% 하락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법정 할인 한도를 줄이면 거품가격도 줄어들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현행법이 정가의 15%까지 직간접 할인을 허용함으로써 발생하는 ‘제도적 거품가격’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할인을 염두에 두고 15% 거품가격을 붙인 뒤, 정작 판매 때는 할인 시늉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것이야말로 소비자와 출판·서점계 모두를 우롱하는 처사다.
 
오히려 소비자에게 불이익일 것 같은 완전한 도서정가제(할인의 불인정)만이 제도적 거품가격을 없애는 지름길이다. 완전한 도서정가제는 소비자의 싸게 살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원천적으로 거품가격을 제거시킨다.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소규모 출판사와 서점들의 존립 가능성을 제고시켜 독자의 독서권과 편익을 담보한다.
 
현행 정가제는 책을 정가대로 판매하는 도서정가제의 본래 뜻과는 거리가 멀다. 엄밀히 말해 가짜다. 현행 제도에서는 정가의 15% 이내 경제상 이익에 더해, 구매가의 최고 40%나 되는 인터넷서점의 제휴카드 청구할인, 무료 배송, 각종 편법 할인(인터넷서점의 투표에 참여하면 1천원 상품권 증정, 50% 이상 가격에 중고책으로 되팔기 보장 등)까지 난무한다. 원래 책정했던 정가의 절반 이상을 인하하는 ‘재정가 책정 도서’도 그새 8천종에 육박할 만큼 확산되며 정가제의 자충수가 되고 있다. 대다수 지식문화 선진국들이 시행하는 정가제의 취지는 실종되고, 여전히 땜질식 미봉책에 불과한 게 한국식 도서정가제의 실체다.
 
소형 출판사와 서점들이 가격 경쟁이 아니라 출판과 유통의 다양성을 키움으로써 독자를 위한 책 생태계를 만들자는 법리가 도서정가제에 담겨 있다. 진짜 정가제(완전한 정가제)로의 틀이 시급하다는 것이 지난 열 달의 교훈이다.
 
백원근 출판평론가(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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