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단순 이동수단에서 각종 서비스가 집약된 플랫폼(platform)으로 급부상했다. 센서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운전자 없이도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게 됐다. 자동차 앞부분 왼쪽 자리를 운전석이라고 부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가까운 미래에는 모든 자리가 탑승석이 된다. 운전자라는 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운전자가 핸들을 놓는다는 것은 단순히 쉴 틈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할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오는 2030년이면 지금과 완전히 다른 개념의 자동차가 도로를 누빌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자율주행차가 나오기 이전에도 운전자는 차 안에서 음악을 듣거나 그날 뉴스를 체크하는 등 운전 이외의 활동을 했다. 문제는 그 집중도가 매우 낮고 할 수 있는 일 또한 제한적이란 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이 운전할 때보다 사고율이 현저하게 떨어져 차 안에서 다양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실제로 자율주행차 선두주자인 구글이 지난 6년간 160만킬로미터의 시범 주행을 선보인 결과, 사고 건수는 13건에 불과했다.
◇자율자동차 시대엔 차 사고 90% 감소
자율주행차에 내장된 컴퓨터는 다른 차와 소통하면서 충돌을 미연에 방지한다. 상대 차에 너무 가까우니 떨어지라는 신호를 보내는 식이다. 다른 시스템과의 연동성도 생겨나 정보를 취합하거나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생긴다. 자율주행차는 고속도로 시스템이 직접 보내오는 정보를 통해 어디가 막히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불이 난 차량이 돌진해와도 문제없다. 도로 신호체계가 감지한 위험 정보를 바로 바로 인식할 수 있기에 충돌 전에 다른 길로 우회할 수 있다. 맥킨지는 자율주행차 시대가 도래하면 사람의 실수로 인한 차 사고가 지금보다 90%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교통사고 건수가 줄어듦에 따라 피해액은 1800~1900억달러(217조~229조원) 정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자율주행차는 여러 서비스와도 연동된다.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 개념이 자율주행차 등장 시점에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커넥티드 카는 자동차에 IT 기술을 접목시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해진 차량을 일컫는다. 이전에는 운전하느라 전화도 편하게 못 받았는데, 이제는 자율 주행 기술로 인터넷에 접속할 여유마저 생겼다. 미래의 자동차는 각종 정보가 오가고 다양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이 된다. 이 플랫폼에서 탑승자는 그 시간 동안 인터넷에 축적된 무궁무진한 정보를 이용해 날씨나 사건·사고 정보를 얻고 각종 서비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인들의 경우 하루 평균 48킬로미터를 자동차로 이동한다. 이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50분인데, 자율주행차를 이용하면 매일 50분의 여유 시간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자동차 업체들과 IT 기술자들이 앞다투어 인터넷 연결성을 강화하려는 이유다. 탑승자의 여유 시간을 선점하면 얼마든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에 따르면 오는 2020년쯤 커넥티드 카 관련 상품과 서비스로 인한 수익은 1520억달러(181조138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부분 별로 살펴보면 운전자 조력 시스템과 안전 관리에서 가장 많은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엔터테인먼트와 웰빙, 의료 부문 앱 개발자들도 쏠쏠한 재미를 보게 될 예정이다. 세계 25% 소비자가 서비스를 받는 대가로 차 내 광고를 허용할 것이란 예상도 있어 광고 수익 또한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도 존재한다.
◇구글·애플 커넥티드 카 양대 산맥
IT 업체 중에선 구글과 애플이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BI인텔리전스는 오는 2020년까지 2억2000만대 이르는 커넥티드 카가 보급될 것이며 8800만대가량이 애플과 구글 플랫폼 서비스를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애플은 현재 아이폰과 연결해서 쓸 수 있는 애플 카플레이(Apple CarPlay)를 선보이고 인포테인먼트(nfortainment)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포테인먼트는 오락(entertainment)의 합성어로, 정보의 전달에 오락성을 가미한 소프트웨어 또는 미디어를 가리킨다.
애플은 자체 iOS에 특화된 이 카플레이로 차량 정보 시스템과 아이폰을 연결해 각종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탑승자는 카플레이만 있으면 아이폰에 내장된 아이튠즈나 애플맵, 비디오 등을 차 안에서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음성 명령 시스템인 시리(Siri)도 지원된다. 음악 스트리밍 선두주자인 스포티파이와 아이하트라디오, 뉴스 제공업체 스티처도 애플 카플레이와 연동돼 있어 콘텐츠 양도 방대하다. 카플레이는 현재 20만파운드(3억6000만원)를 호가하는 페라리FF와 볼보 XC90에 탑재돼 있다. 애플은 올해 안에 벤츠와 재규어, 혼다, 현대 차량에도 카플레이를 적용할 계획이다. 이처럼 애플은 자율자동차 제조 부문 보다는 콘텐츠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전문가들은 애플이 자동차 제조업체를 인수하거나 아예 제조 회사를 세울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지니고 있으나, 자율자동차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일을 추친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진단하고 있다.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왼쪽)와 애플 카플레이를 구동한 모습. (사진/뉴시스)
구글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구글은 지난해 안드로이드 오토(Android Auto)를 출시하며 커넥티드 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현재까지는 안드로이드 오토를 지원하는 차량이 2015년형 소나타 정도에 불과하지만, 포드와 혼다, 기아차, 마쓰다, 피아트, 푸조 등 세계적인 업체들이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라 전망이 밝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윈도우 내장형 자동차를 만들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MS 윈도우 시스템은 포드, 기아차, 마쓰다, 피아트 등에 탑재할 예정이다. 그러나 최근 기아차가 안드로이드 오토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포드는 싱크3 란 자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개발해 MS 자동차 사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그나마 MS는 포드가 MS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아주르(Azure)의 지원을 받을 것이라고 밝혀 한시름 놓은 상태다. 휴대폰 제조업체 블랙베리도 QNX 란 자동차 플랫폼을 만들었다. QNX는 다른 운영체계(OS) 프로그램을 함께 운용할 수 있게끔 해주는 미들웨어를 제공한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BMW, 도요타자동차, 아우디, 메르세데스-벤츠, GM, 닛산 등 주요 자동차 업체들도 IT 기업에 밀리지 않기 위해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에 한창이다. 그러나 IT뉴스 사이트인 더인콰이어는 향후 수년 동안 애플과 구글 커넥티드카 플랫폼이 시장을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점쳤다. 아울러 앱 부문에서는 음악 스트리밍서비스 판도라와 소셜네트워크 페이스북, 생활정보 업체 옐프 같은 회사의 앱이 큰 인기를 끌 것으로 전망됐다.
◇웰빙·의료·차량공유 서비스 각광
각종 앱 가운데 그 중요성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는 분야는 웰빙과 의료 쪽이다.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올라가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데 관심이 높아지다 보면 관련 앱이 큰 인기를 끌 것이란 분석이다. 자동차가 이동을 위한 수단에 그치지 않고 정기 건강 검진이 이뤄지는 의료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자동차 출퇴근 길에서 건강 검진이 정기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검진에 필요한 모든 것이 차 안에 구비된 덕분이다. 내비게이션 화면에는 지도 대신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가 뜨고 의자는 몸무게를 재는 저울로, 운전대는 심박수를 체크하는 센서로 기능을 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비디오 모니터는 운전자의 컨디션을 육안으로 체크해 알려줄 수도 있다.
현재 의료 서비스 쪽으로 특화된 자동차 업체는 바로 20세기 당시 자동차 대중화의 문을 연 포드다. 포드는 이제 자율주행차 시대에 맞춰 헬스 센서 기기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심장질환 같은 갑작스러운 질환이나 죽음에 이르는 병에 대처하기 위한 기술을 자동차에 접목시키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포드는 메디컬 기기 회사인 메드트로닉과 손잡고 혈당 모니터와 천식 관리 툴, 알러지 추적 시스템을 연구 중이다. 포드는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차 안에 웰빙 환경을 구축하고자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연동하는 기술에도 손을 뻗었다. 전문가들은 차량 의료 서비스가 개발되면 장시간 동안 이동하는 탑승객들의 건강 상태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자동차 렌탈 산업도 한 단계 도약할 계기를 얻게 될 전망이다. 자동차 렌탈업체들은 자율주행차 시대가 오면 주말 렌탈 이용율이 현재보다 90%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전망을 감안한 차량공유기업 우버는 50만달러 규모의 테슬라 자율주행차(6억원)를 시범 삼아 사들이는 데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반대로 자율주행차 시장이 커질수록 손해를 보거나 불확실성이 커지는 업체도 있다. 우선 자동차 사고율이 낮아지면 차 수리 업체나 속도위반 머신건 회사가 막대한 손해를 볼 수 있다. 보험 업계에도 지각변동이 있을 예정이다. 맥킨지는 미래에는 운전자 본인의 상해나 사망보험이 기기 오작동과 관련한 보험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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