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의 후계자 선임을 둘러싼 집안싸움이 우리나라와 일본을 들쑤시고 있다. 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동족상잔의 비정함이 폭로되는 수준을 넘어 그룹 지배구조의 불투명성과 고착화, 나아가 롯데의 국적 정체성에 대한 국민적 의구심이 끝없이 확대되는 형국이다.
롯데는 그간 기업 국적에 관한 의혹을 받을 때마다 매우 전략적이고도 기회주의적으로 대응해 왔다. 우리나라에서 외국기업이 받는 온갖 특혜와 우대 조치를 독점하며 급성장해온 롯데의 경영사로 볼 때 어쩌면 당연지사다.
1960년대 이후 한국롯데가 우리나라에서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심각한 외화 부족 문제에 허덕이고 있던 당시 우리 정부와 롯데 간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서 롯데가 외국기업으로서 특별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신동빈씨는 이번 사태로 성난 여론에 부딪히자, 롯데그룹이 한국 기업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하며 충격과 경악에 빠진 국민들을 달래고 있다. 한국 롯데그룹 주식의 95%를 한국 사람들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그 근거다. 조선일보와 같은 친재벌 언론들은 그간 학계에서 지배주주와 경영권의 소재로 외국기업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온 점을 강조하면서 한국 국적을 가진 로열패밀리가 지배해온 롯데그룹은 한국기업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싸움을 계기로 한국 롯데그룹에 속한 우리나라 계열사 전체를 일본 기업이 지배해온 사실이 분명해졌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일본 기업의 주주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점으로, 롯데의 국적 논란은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로는 제대로 설명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롯데그룹의 주식을 한국 사람들이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롯데를 한국기업으로 규정하는 것은 관련 법적, 제도적 기준과 상충될 수밖에 없다.
또한 롯데그룹의 이번 소동은 동아시아 특유의 ‘가족경영’에 매우 큰 리스크가 내재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족 또는 일가에 의해 경영되는 기업은 상호 간에 탄탄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지만, 기업 내부에 심각한 부정부패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데다, 엄격한 법 기준으로 기업조직이 통제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시장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이며 가족 또는 일가의 주식보유 비율이 20% 이상인 가족 소유 대기업의 약 75%가 아시아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북미는 6%에 불과하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은 윗사람에 대한 공경을 중시하는 아시아 특유의 문화적 전통이 경영진 교체를 위한 명확하고 투명한 내부 메커니즘이 결여된 것과 맞물려, 다수의 아시아 기업들이 창업자를 80·90대가 될 때까지 권력의 좌에 앉혀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롯데 역시 마찬가지다. 더욱이 전형적인 ‘가족경영’을 유지해온 롯데는 비상장 기업이기 때문에 주주 구성이 어떻게 돼 있는지 외부에서 파악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일본 롯데홀딩스의 한국 롯데그룹과의 관계 역시 명확치 않아 후계자 인사의 향방은 더욱 가늠하기 어려웠다. 롯데는 집안싸움을 해결하기 위해 주주총회 카드를 빼들었지만, 이후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또 어떻게 해결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해 보인다.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롯데의 ‘집안싸움’은 불명확하고 또 불투명한 기업경영 시스템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경영’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일대 사건이다. 롯데의 국적 정체성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이들의 전근대적인 경영방식이다. 우리나라 재벌기업의 ‘가족경영’이 갖는 이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기업경영의 안정과 지속적인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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