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국정원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의 갈등이 정국을 주도한 이후 그 자리를 이어받고 있는 것이 바로 국정원이다. 이탈리아 해킹프로그램 전문 업체인 ‘해킹팀’으로부터 스마트폰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한 것이 이슈가 되고 있다.
국정원은 “구입한 것은 사실이다”고 인정했고 강신명 경찰청장은 “현행 법상 이런 프로그램이 사용됐다면 무조건 위법이다”고 ‘유권해석’을 했다. 이후 이병호 국정원장은 “국민을 상대로 감청을 했다면 어떤 벌도 감수하겠다”고 선을 그었고 국정원도 “실은 대북용, 연구용이다”고 국회 정보위에서 해명을 했다고 하지만 앞뒤 정황을 보면 영 석연치 않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국정원과 해킹팀간 오간 이메일 내용이 통째로 해킹당해 온라인에 공개되어있다는 점이다. 상당수 언론과 인권단체들이 엄청난 분량의 이메일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좀 더 구체적 뉴스들이 속속 전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칼럼이 나오는 16일에는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혐의로 항소심에서 실형을 받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최종 선고도 내려진다. 국정원이 해킹팀에서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한 것도 원세훈 전 원장 시절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원 전 원장은 국정원 심리전단 등을 이용해 2012년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는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판단돼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었다. ‘역시 집행유예겠지’라는 일각의 예측에 어긋나지 않는 판결이었고 그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올 2월 항소심에서 공직선거법 위반까지 유죄 판단을 받으면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다.
1심과 2심이 갈라진 대목, 즉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결판을 내야 하는 쟁점은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 트위터 등 사이버상 활동이 2012년 대선에 개입한 행위로 볼 수 있느냐다.
1심은 그 활동이 정치에 개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국정원법 위반에는 유죄, 대선에 개입할 목적을 갖고 행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이유 등으로 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반면 2심은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2012년 8월 20일 이후 국정원 심리전단이 사이버상에 올린 글이 정치 관련 글보다 선거 관련 글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는 점을 들어 선거 개입의 목적성이 있었다며 선거법 위반을 유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사실관계는 다툼의 여지가 없다. 국정원 심리전단이 대선을 앞두고 여당 후보에 유리하고 야당에 불리한 글들을 온라인 상에 유포했다는 것. 그리고 그 활동은 계선 조직 내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졌다는 것. 국정원 공식 회의 석상에서도 야권을 공공연히 비난하고 여권의 각급 선거 승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원세훈 전 원장은 심리전단의 활동을 독려했다는 것. 그리고 국정원은 외에 국방부 사이버사령부도 유사한 활동을 했다는 것.
대법원이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내리더라도 이러한 ‘팩트’는 그대로 남는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활동은 선거 개입은 아니다’는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다. 해킹팀 관련 활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관련자들은 대법원 판결을 보고 ‘안심’하거나 ‘노심초사’할테지.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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