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애완견, 유기견, 꼴불견”
2015-07-15 06:00:00 2015-07-15 06:00:00
최강욱 변호사
역사란 무엇인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저 유명한 카(E. H. Carr)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역사란 우리의 삶과 혼이 담긴 기록이자 교훈이다. 그 역사 속에서 대개의 민주주의란 절대왕정을 몰아내는 데서 시작되었다. 신격화 된 권력이 마구 내달릴 때 수많은 비극과 죽음이 잉태되었다. 그 역사의 질곡을 끊어내기 위해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다. 이제 핏줄로 권력을 세습하는 일은 없어지고 주권자의 뜻에 따라 뽑힌 권력이 시민을 위해 나랏일을 하는 거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었다. 그리하여 국가권력은, 법을 만들고, 집행하며, 판단하는 셋으로 나뉜다는 게 헌법의 기본이 되었다.
 
하지만 요즘 우리를 둘러 싼 상황을 보면 이게 과연 역사가 발전한 결과일까 싶을 때가 많다. 취업을 하고 승진을 하는데 능력만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집안’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그러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자리를 얻어, 결혼을 통해 그 자리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것을 ‘삶의 지혜’로 설파하는 이들도 흔하다. 이미 학교를 세습하는 것은 당연해지고 기업과 교회를 세습하는 일도 흔한 일이 되니, 심지어 대통령을 뽑을 때도 혈통을 따져 결정한 게 아니냐며 한탄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권좌에 앉은 이는 자신의 생각이 관철되기를 원한다. 권력은 자신을 보호하고 정당화 하려는 논리와 더불어 스스로 화려하게 포장하는 일을 절대 게을리 하지 않는 법이다. 문제는 그것이 항상 권력자가 살아있거나 권좌에서 물러나기 전에만 유효하다는 점이다. 앞선 권력자의 과오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반드시 날것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미 독재를 물리쳐 민주주의를 쟁취한 것을 현대사의 가장 큰 자랑으로 여기는 나라였다. 그러니 1949, 1955, 1961년 세 차례나 거듭하여 시도된 ‘신생활복(재건복) 입히기’와 같은 획일화의 시도는 진실로 우스운 일이라 여긴다. 제 나라 시민에게 고문과 살해도 서슴지 않았던 못된 권력의 행태는 분명 어둡고 더러운 역사로 기록된 줄 알았다. 하물며 헌법이 정한 국가의 책무, 특히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기본적 사명은 이제 도저히 저버릴 수 없는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자꾸 생긴다. 독립을 생명으로 안다던 법관들이 대통령이 던져주는 자리를 넙죽 넙죽 받아먹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 대통령은 자신이 의원 시절 제출한 법안보다 훨씬 후퇴한 법안이 통과되자 정부를 마비시키는 위헌적 법률이라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법률을 어긴 시행령은 권력분립에 반하는 위헌이며, 적반하장 격의 거부권 행사는 헌정질서에 대한 위협이란 우려는 철저히 무시했다. 급기야 심기를 거스른 집권당 원내대표를 기어이 ‘박수로’ 쫓아내는 결기까지 보였다.
 
게다가 스스로 합의하여 통과시킨 법률을 받아 안은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다시 의안으로 논의하지 않는게 정도”라며, 권력분립의 한 축을 이루는 헌법기관이 아닌 ‘거수기’나 ‘졸개’로서의 모습을 유감없이 과시한다. 그 와중에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헌법해석론을 펼치는 한 때의 ‘복심’까지 등장하니 이걸 희극이라 해야 할지 비극이라 해야 할지 헷갈릴 뿐, 세상에 권력은 하나여야 한다는 주먹질이 그대로 먹힌 꼴이 되었다.
 
왕의 말 한 마디면 법이 되던 시절엔 비판의식을 거세한 채 그저 온순, 착실하며 순종적인 국민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국민교육헌장’을 암송시키고 국기하강에 맞추어 일제히 걸음을 멈춘 채 경건한 경례를 하는 ‘획일화된 애국’이야말로 ‘한국적 민주주의’의 본 모습이었다.
 
“산 자가 죽은 자를 되살리고 죽은 자가 산 자를 지배한다”는 카의 말대로 인간은 자기의 필요에 따라 과거를 소환하는지 모른다. 지금 한국사회는 죽은 자를 되살려 산 자를 지배하려는 망령이 횡행하는 곳이 되었다면 지나칠까. “동물보다 못한 배신”은 결단코 응징한다는 게 과연 누구나 수긍해야 할 민주적 리더십인가.
 
유럽의 궁궐에서 허다하게 접하는 그 번잡하도록 화려한 방들, 신에 가까운 모습을 가장하려던 그 차가운 위엄이 결국 인간의 온기를 잃게 하는 멸망의 근원이 아니었을까. 어스름 해질녘, 굴뚝마다 피어나는 하얀 연기의 냄새처럼 따스한 추억으로 남을 권력이란 정녕 허망한 것일까. 시위에 참여한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팻말에 새누리당과 여당 원내대표, 대통령을 "애완견, 유기견, 꼴불견”으로 정리하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현실 앞에 정녕 할 말을 잊는다. 우리는 과연 어떤 역사를 남겨 가르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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