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격동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혁신위를 구성하는 문제로 당내 논란이 있었지만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혁신 작업에 들어갔다. 새누리당도 청와대 갈등과 당 내부의 친박과 비박의 대립이 지속되고 있지만, 야당에 비해 한 발 앞서 총선준비를 위한 내부정비에 들어갔다.
민심은 정치권의 혁신에 대해 기대보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강하다.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개혁이라는 화두가 정치권의 주요 의제가 되어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냉소와 무관심이 대세다. 정치권 내부에서는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태풍이 불어오고 있는데, 왜 민심은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할까?
프랑스의 대표적인 라깡주의 정신분석가인 필리프 쥘리앵은 프랑스 혁명을 심리학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아버지는 어떻게 되었는가? 벌써 200주년을 기념한 바 있는 프랑스 혁명에 의해 새로운 형태의 ‘형제애’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 생겨난 이 형제애는 어떠한 아버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 루이 16세의 사형은 곧 ‘부친살해’가 아니었겠는가? 프랑스인들은 정치적으로 고아가 됨으로써 서로를 형제로 받아들였다.”
필리프 쥘리앵이 말한 ‘아버지란 단순히 한 여자의 남편이 아니라, 지배자 즉 국가를 이끄는 사람을 의미했다. 처음에는 정치적 종교적 아버지였고, 여기에서 가족적 의미의 아버지가 파생되었다. 과거의 황제나 왕, 원로원, 귀족들이 사회적 연합을 통해 그 아버지임을 구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시민은 ‘권위적이고 관습적인 아버지임’을 새로운 사회변화와 시대정신을 통해 ‘심리적인 부친살해’를 하고 있다. 스스로 정치적 고아를 선택함으로서 형제애로 형성되는 시민사회의 기반을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정신분석은 비단 프랑스에 국한된 사실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심리적인 접근은 우리 정치지형과 야권이 처해있는 상황을 통찰할 수 있는 심리적 현미경을 제공한다.
여당이 내세우는 ‘박정희’나 야당의 상징인 ‘김대중, 노무현’은 우리 정치의 아버지를 자임하고 있다. 단순히 생물학적인 의미로서만이 아니라 각 정당과 정파라는 거대한 자식들을 거느리면서, 하나의 가문 또는 내부의 소규모 집단을 형성해서 정당 내부의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통제하고 있다.
특히 2012년에 불었던 ‘안풍’(아철수 바람)과 같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욕구는 전형적인 심리적 도전이었다. 정신분석으로 보면 안풍은 아버지임을 부정하고 심리적인 부친살해를 통해 정치적 고아를 선택하려는 도전이었다. ‘안풍’의 부친살해가 실패한 것은 정치적 아버지와 그 힘을 이루는 자식들을 동시에 사유하지 않고 표피적인 이미지에만 매달려 싸웠기 때문이다.
여권 진영에서는 일베와 같은 세력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피로와 증오범죄에 해당하는 발언을 통해 차라리 지난 독재시절의 박정희나 전두환이 더 나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핑계로 관용적인 해석을 하려해도 그 역사적 후안무치와 심리적 퇴행에는 서글픔마저 앞선다.
총선,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다시금 도전에 직면해있다. 이것은 단순히 혁신이나 물갈이의 문제가 아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 심리적 도전이다. 만일 이 과정에서 실패하게 되면 오히려 유아들처럼 심리적인 칭얼거림에 빠져들어 더 권위적이고 강한 아버지상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사회의 진정한 변화는 ‘아버지의 권위가 아니라 형제애에 근거한 정치적인 변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역이나 계파대립이 아니라, 정당들이 형제애를 받아들이는 구조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진정한 혁신은 정치적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형제애를 받아들임으로써 오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물갈이나 공천학살이라는 한풀이 혁신이 아니라 존중과 연대를 받아들이는 형제애가 혁신의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도전이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인식될 때 냉소와 무관심에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진정한 혁신은 정당 내부의 아버지를 두고 싸우는 증오가 아니다. 서로를 형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진정한 정치혁신을 기대한다.
양대웅 전 더플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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