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아테네에서 시작된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마침표’가 아니라 ‘진행형’으로 각 나라의 국가구조에 중요한 가치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의 정부’라는 링컨 대통령의 발언은 현대 민주주의를 한 마디로 나타내는 경구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다수결의 원칙과 투표권, 대의제’를 말하지만, 이것은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겉모습일 뿐이다. 핵심은 ‘시민 개인의 이성과 집단지성, 통치자와 권력에 대한 의심’이다. 그리고 그 가치는 ‘평등과 자유, 박애’라고 하는 프랑스혁명의 테제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87년 민주화의 성과인 ‘직선제, 언론과 표현의 자유,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 등 시민의 정치참여라는 제도적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97년 정권교체와 외환위기 이후 민주주의는 전혀 다른 문제로 우리 앞에 등장했다. 87년 민주화 이후 정치적 민주주의가 ‘더 강한 정치적 권리와 더 높은 소득 성장’을 가져 올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97년 이후 한국사회는 군부 쿠데타나 국가권력기관의 개입이 아닌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평화적으로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주었다. 하지만 97년의 정치적 자유는 홀로 온 것이 아니었다. 외환위기가 함께 오면서 당연히 따라올 것이라 믿었던 경제적 자유는 다른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국가부도라는 경제위기로 인해 정치적 자유는 선택할 수 있었지만, 경제적 자유는 선택할 수 없었다.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배제’라는 이중구조가 등장한 것이다.
한국사회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공적 자금 투입’과 ‘대기업 빅딜’, ‘긴축재정과 구조조정’이라는 IMF식 경제적 처방전을 받아들였다. 97년 이전과는 전혀 다른 경제구조였다. 그 결과로 미국, 일본보다 더 효율성과 생산성을 중시하는 경제구조로 탈바꿈했다. 그로부터 17년 뒤인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TV생중계로 고통스럽게 지켜봐야 했다. 97년 이후 전혀 다른 경제구조를 선택한 결과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참담했다. 우리 사회의 근본을 뒤흔든 휴화산이 터진 것이다.
OECD 가입으로 선진국이 되었다고 자화자찬하고, 국민소득 4만불 시대, 경제기적과 정치민주화를 동시에 이뤘다며 축배를 들던 대한민국호는 갑자기 불이 꺼졌다. 국민들은 묻기 시작했다. 이 정전상태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우리는 안전한가? 우리 사회는 경제 성장만큼 국민의 삶도, 민주주의도 성장했는가?
화려한 네온사인이 꺼진 어둠 속에서 우리는 이제 다시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던 가치에 대한 질문이다. 투표와 대의제, 다수결의 원리라는 겉모습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자유, 시민의 정치적 권리가 온전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정부에 대한 시민의 민주적 통제와 소수가 독점하고 있는 정치권력, 경제권력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당연한 의심’이 필요한 때이다.
민주주의는 인간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되었다. 권력은 아무리 뛰어난 왕과 현명한 자일지라도 오만해지는 순간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 민주주의는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고안한 제도이다. 탐욕과 불평등, 소수의 이익을 위한 권력의 종속을 견제하기 위해 고안된 민주주의는 세습이 아닌 시민의 권리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오늘 우리가 민주주의를 다시 묻는 이유는 새로운 생각이 등장해야 새로운 해법이 나오기 때문이다. “정해진 규칙이나 수행하는 ‘작은 정치’의 시절이 있었고, 이제는 규칙을 탄력적으로 변화시키는 ‘커다란 정치’의 시대가 찾아왔다”고 울리히 벡이 말한 것처럼 우리에겐 지금 ‘커다란 정치’가 필요하다. 정부는 구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고용유연화’와 ‘비정규직 기간연장’을 악마의 맷돌에 돌리려고 하고 있다. 경기활성화를 명목으로 수출대기업을 지원하다보니 ‘낙수효과’는커녕 서민에게 ‘낙석효과’만 불러오고 있다.
지금의 ‘작은 정치’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빵이 아니라 빵가루만 얻게 되는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링컨이 말한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의 정부’를 원한다면 민주주의를 다시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들이 모두 동등해야 한다는 ‘정치적 평등에 대한 믿음’만이 우리가 원하는 정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작은 민주주의 시절’을 넘어 ‘커다란 민주주의 시대’를 만들기 위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오늘 다시 민주주의를 묻는다.
양대웅 더플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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