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는 ‘곰을 돌로 오인하는 것과 돌을 곰으로 오인하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위험한가 하는 가설’이 있다. 돌을 곰으로 오인한다고 해서 놀라는 것 말고 큰 위험이 닥칠 일은 없다. 하지만 재보선 전패라는 곰을 돌로 오인하면 큰 시련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곰들의 공격’을 받은 문재인 대표가 부쩍 피곤해 보인다. 당내 분란 앞에서 동분서주하는 인상이다. 당대표가 응당 가져야 할 위엄이 사라지고 피로한 리더십의 잔영을 눈가에 드리운 모습이다.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김무성 대표에게 1위 자리를 내준 데다 당 지지율도 다시 새누리당의 절반으로 꺾였다. 빅데이터상의 긍정어 분포를 봐도 취임 한 달 동안 29.4%였던 것이 이후 재보선 패배 이후 20.6%로 10% 가까이 줄어들었다. 반면 부정어 분포는 10% 가까이 상승했다. 좋은 지표가 없다.
사실 문 대표의 100일은 인상적이지 않았다. ‘이기는 정당’을 슬로건으로 당대표가 됐지만 이기는 정당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은 가시화되지 않았다. 새정치연합의 낡은 시스템을 고려할 때 탕평인사로 당을 혁신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4.29 재보선 패배는 이런 안이한 상황인식이 부른 당연한 결과였다. 선거에서 야당은 언제나 약팀이다. 이기려는 의지조차 약하다면 승패는 보나마나 뻔하다. 공천과정에서부터 선거과정에 이르기까지 성완종 게이트 같은 호재에도 불구하고 새정치연합은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다.
패배 이후 위기관리도 실망을 안겨줬다. 문 대표의 기자회견을 보면 재보선 패배가 갖는 엄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설령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참패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는 것이 지도자의 기본적인 태도다. 특히 호남과 관악을에서의 큰 표 차이 패배가 얼마나 큰 정치적 후폭풍을 불러올지에 대한 자각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문 대표가 꺼내든 카드다. 이는 지난 2011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만들었던 이른바 ‘혁신과 통합’을 생각나게 한다. 통합과 혁신은 양립하기 어려운 난제다. 위기의 정중앙을 질주하고 있는 당의 수습책으로 이 카드를 꺼내든 문재인 대표의 스탠스는 여전히 어정쩡해 보인다. 나아가 문 대표는 다시 안철수 의원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되돌아 다시 2012년인가.
문 대표에게 친노 패권주의라는 말이 과하게 들릴 수 있다. 실제로 대단한 패권주의를 휘두른 흔적도 거의 없다. 이른바 비주류들도 비선 논란을 제기한 적은 있지만 문 대표 취임 이후 패권주의 정황을 팩트로 제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대표는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친노 패권주의가 있든 없든 과감한 해소 전략을 내놔야 한다. 그것을 하는 것이 최소한 해야 할 방어적 리더십이다.
문재인은 거대 야당의 대표이자 초선의원이다. 이것이 문재인을 규정한다. 책임은 크고 정치력은 약하다. 여기서 리더십의 공백이 생긴다. 재보선 패배는 정치신인 문재인의 마지막 실수여야 한다. 사실상 지금 새정치연합 내에 구심력이 사라지고 강력한 원심력이 작동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보선 패배가 내년에 치러질 20대 총선 패배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주류든 비주류든 그들이 공천 나눠먹기에 집중하는 한 공포스런 패배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2030 진보세력은 선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50대 이상은 삶과 동떨어진 정당이라는 이유로, 호남은 지역적 자존심을 이유로 새정치연합에 등을 돌리고 있다. 문제는 이 모두를 껴안지 않으면 거대 새누리당을 이기기 어렵다는데 있다.
해법이 있을까. 찾아내야 한다. 상상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조국 교수의 지적처럼 문 대표에겐 마지막 기회다. 무엇보다 기득권을 버리고 과감해져야 한다. 먼저 측근들이 문 대표를 도와줄 필요가 있다. 문 대표와 가까운 사람들의 총선 불출마 선언 같은 게 나오면 좋을 것이다.
지금 문재인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일종의 위엄 같은 거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가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미발신 문자나 졸속 광주 방문 같은 미숙한 행보는 위엄의 반대편에 있다.
문 대표에게 나심 탈레브가 <안티프래질>에서 한 말을 들려주고 싶다.
“당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위엄 있게 운명을 맞이한다면, 자신을 작아 보이게 만드는 행동을 할 수 없다. 반면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면, 자신을 커 보이게 만드는 행동을 할 수 없다.”
시련은 더 큰 성장을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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