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완연한 회복세다. 그런데 경제, 국방, 행정, 외교 등 국정의 각 분야를 뜯어보면 높은 점수 줄 대목이 없다. “사심이 없이 열심히 하지 않냐”는 옹호의 목소리는 들리지만 “일 잘한다”는 평가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 지지율이 반등한 원인은 두 가지 일 것이다. 첫째는 지리멸렬한 야당과 비교해보니 그래도 무난한 것 같다는 착시효과. 둘째는 위력을 발휘하는 ‘무위(無爲)의 정치’.
성완종리스트 파문이 한창 일 때 박 대통령은 열이틀 간 중남미 순방을 떠났다. 귀국 이후에는 ‘인두염’과 ‘위경련’으로 일주일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업무 복귀 이후 말수도 줄어들었고 공식 행사도 잦아들었다. 홍보수석이 가끔 대신 나서 야당을 비판할 뿐이다. 말이 줄었으니 말실수도 줄었고 일을 안 하니 뭘 잘못할 기회도 없다. 은둔의 최고경영자(CEO)를 연상케 하는, 현대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찾기 힘든 특이한 리더십이다. 대통령 지지율도 올라가고, 나라도 시끄럽지 않게 잘 돌아가면 ‘윈-윈’이다. 그런데 그럴 리가 있나.
요즘 박 대통령을 보면 공무원연금개혁에 목을 매다시피하던 그 사람이 맞나 의심스럽다. 국민연금 연계에 대한 청와대 홍보수석의 비토로 공무원연금개혁 법제화가 첫 번째로 무산된 건 그렇다 치자. 그래도 여야는 협상의 실마리를 놓지 않았다. 여야 원내대표는 "5월 2일 양당 대표, 원내대표 간 합의 및 실무기구 합의사항을 존중해 계속 논의하기로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양당이 서로 한 발씩 양보해 제3의 안으로 타결하거나 명분과 실리를 나눠가질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홍보수석이 또 나서서 국민연금 논의 자체를 ‘정치적 당리당략’으로 치부하며 ‘65년간 1700조 추가부담’이라는 말대포를 쏘았다. 그래도 일을 해결해 보려던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는 청와대의 반복된 비토를 결국 수용했다.
여권과 야권, 혹은 주류와 비주류가 가지는 정치적 힘과 책무는 다르다. 집권 세력은 권력을 운용해 국정의제를 실행하는 합법적 힘을 가진 쪽이고 야당은 경우에 따라 집권세력의 발목을 잡을 힘과 의무를 가진 집단이다. 정치집단 내 주류와 비주류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무위의 정치’를 구사하는 박 대통령은 야당 내지 비주류 노릇을 하고 있다. 연금개혁을 위해 상대를 설득하고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비토권만 행사했다. “안 되면 야당 탓, 국회 탓”이라는 알리바이만 만들었다. 오죽하면 여당 소장파 의원들이 대통령에게 "행정부의 수장이자 국민의 대표로서, 대통령이 내건 중요 국정과제의 해결자로서 국민과 국회와 직접 소통하고 사태 해결의 중심에 서길 바란다"고 주문했겠나.
이 번 만이 아니다. 성완종 리스트 국면에선 사태를 수습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대신 전 전 정부를 끌어들였다. 세월호 문제에 있어서 국민통합의 방향으로 이끄는 대신 시행령 논란을 일으켜 국민을 둘로 나눴다. 갈등을 증폭시키고, 뭘 반대하고, 일을 못하게 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다.
이러니 대통령과 청와대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창조경제, 적폐청산, 4대개혁, 정치개혁, 통일대박 등 수많은 의제 중 무엇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로드맵을 밟고 있나? 뭘 하고 싶어서 그렇게 애를 써서 집권 했는지 묻고 싶다. 제발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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