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기자)편집의 즐거움을 느껴라! 편집이 힘이다
<에디톨로지>김정운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2015-02-13 07:15:25 2015-02-13 07:15:25
 
무에서 유를 창조하라. 새로운 혁신에 도전하라. 세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남들이 해보지 않은 것을 하라며 창의성을 키우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에게 말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특히 오늘과 같은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지고 있는 것을 편집해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편집이 힘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누가 더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느냐로 경쟁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 정보를 가지고 자신의 것으로 참신하게 편집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 성공하게 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즐겁고 참신하게 편집을 하냐는 것이다.  
 
작가는 이것을 자신이 새로 만든 단어 '에디톨로지'라고 부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인문학에 대해 공부하는 신선한 느낌이었다. '에디톨로지 개론'이라는 새로운 인문학 과목에 대해 신선하고 재밌는 강의를 들은 기분이랄까.
 
실제로 작가는 마치 강의를 듣는 느낌을 가질수 있게 책 처음부터 끝까지 구어체의 매우 진솔한 화법을 사용한다. 중간 중간 다소 화끈(?)하다고 느껴지는 언어들이 등장해 다소 부담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문화 심리학이라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주제를 최대한 쉽게 풀어내기 위한 노력이 느껴졌다.
 
여러 가지 흥미로운 실험들과 다양한 사진들로 '생각의 전환', '시각의 전환', '창의적인 편집'을 스스로 체험해 볼 수 있는 것 또한 책을 읽는 재미였다. 프레젠테이션 강의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읽는 내내 스스로 얼마나 틀 밖에서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는지를 새삼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스토리가 그야말로 이리 날아다니고 저리 날아다닌다는 것이다. 한가지 방향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작가의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핵심 파악'이 필수적인 직업적 이유 때문인지 책을 읽다 보면 주제가 어디로 가는지 정신을 놓게 돼 약간 난감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생으로 돌아가 '에디톨로지 개론'이라는 인문학 수업이 생긴다면? 당연히 청강할 것이다!
 
▶전문성 : 프로이트부터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 2차 세계대전까지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과 인문학 실험들, 이론들이 등장한다. 다양한 심리학자들의 이론 뿐 아니라 작가가 스스로 만든 이론과 결론들도 많이 나온다. 
 
▶대중성 :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작가의 화법으로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과 아리송할 수 있는 심리학 이론들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어려워 몇 번 더 읽어봐야 했던 이론들도 있고 작가의 색채가 너무 강해 약간 부담스럽게 느낄 수도 있다. 
 
▶참신성 : 에디톨로지라는 단어 자체가 작가가 직접 만들어낸 조합어인만큼 마치 새로운 인문학 분야를 접하는 것 같아 매우 신선했다. 또한 추상적일 수도 있는 에디톨로지라는 개념을 구체적 방법론으로 풀어놓은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요약
 
1.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장으로 나뉜다. 첫 장에서 작가는 에디톨로지의 기본적 개념과 함께 창조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를 다룬다.
 
창조의 본질은 더 이상 대학에서 얻는 방대한 데이터나 지식 습득이 아니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방대한 자료를 편집하는 능력에서 온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이 편집하는 능력에서 중요한 것은 텍스트나 기존의 낡은 사고방식에 얽매여서는 안되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편집하는 과정에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시대에서 더 이상 종이 위에 적힌 텍스트 중심의 논문과 지식 편집 기술은 충분치 않다. 텍스트를 벗어나는, 탈텍스트로의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탈텍스트를 가능하게 한 놀라운 발명품으로 컴퓨터 마우스를 꼽는다. 텍스트의 공간적 범위를 벗어나게 만들고 생각과 생각이 건너뛰고 날아다니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마우스라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이러한 날아다니는 생각을 천재들의 특징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또한 저자는 독일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의 노트 방식을 비교하는데 이 부분이 매우 인상 깊었다. 독일 학생들은 편집 가능성이 매우 큰 작은 카드를 사용해 수업 내용을 정리하는 반면 한국 학생들은 무조건 달달 외울 수밖에 없는 구조의 노트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독일 학생들은 이로써 편집 능력을 키울 수 있지만 한국 학생들은 주입식 교육 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른 예로 저자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막 편집이 주는 힘에 대해 설명한다. 뛰어난 에디톨로지의 능력으로 김태호PD가 무한도전에서 만드는 자막은 그동안의 자막들과 차원이 다르고 결국 더욱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을 완성시킨다는 것이다.
 
이 밖의 예로 저자는 웬만한 배우들의 연기 능력이 상향 조정된 지금, 사람들은 영화배우보다 감독을 보고 영화를 결정한다고 설명한다.  영화의 완성도는 배우나 스토리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감독의 편집 능력, 즉 에디톨로지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2.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
 
두 번째 장에서 저자는 관점과 장소에 따라 에디톨로지가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역사적 사실들을 근거해 설명한다.
 
작가는 인류 역사에서 지난 세기 서구 문명이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를 바로 관점 편집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서구 국가들이 원근법을 동양 국가들보다 훨씬 일찍 도입했고, 세상을 보는 눈은 하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원근법이 객관적인 과학적 사고를 가능하게 해 기술의 발달 역시 빠르게 했다는 것이다. 
 
그 예는 미술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동양화에서는 시선이 여러 개이지만 서양 미술 작품들은 대부분 시선이 한 개이다.  
 
결국 시선은 하나여야 한다는 서양식 원근법은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었고 모든 현대식 교육은 이 원근법에 맞춰지게 된다. 
 
이어 작가는 공간의 편집이 우리의 삶에 미쳐 온 영향에 대해 설명한다. 간단한 예로 교실 공간의 편집만으로도 교사와 학생 간의 상호작용이 부족한 한국 교육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상이 모두 앞을 바라보는 현재 한국 교실은 교사와 학생 간의 토론을 어렵게 만들지만 마주 보는 테이블에서는 좀 더 활발한 토론이 이뤄질 수 있다.  
 
또한 가족이나 연인 사이에서도 앉는 거리와 위치만 달라져도 상호작용의 내용과 질이 달라진다. 공간을 어떻게 편집하느냐가 개개인의 심리 뿐 아니라 문화 전반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작가는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근본적인 이유는 공간에 대한 박탈감 때문이라는 흥미로운 이론을 제시한다. 끊임없는 전쟁과 갈등들로 공간에 대한 부족이 독일인들에게 큰 불안감을 가져다줬고 이것이 결국 전쟁으로까지 번졌다는 것이다.
 
공간에 대한 에디톨로지는 축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축구야말로 선수와 감독이 공간을 편집하며 즐기는 '놀이'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공간 편집도, 놀이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요즘 유행하고 있는 편집숍에 대해 언급하며 장을 마친다. 카테고리별로 사물이 분류돼 있는 것이 아닌 주인의 스타일대로 전시되어 있는 편집숍은 바로 전시의 에디톨로지라는 것이다. 
 
3.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 
 
마지막 장에서 작가는 에디톨로지가 우리 개인과 또 심리학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설명한다. 특히 개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원래부터 있어 왔던 자연스러운 개념이 아닌 편집된 개념이라는 이론은 매우 흥미롭다. 우리가 항상 나이를 물어보는 것 역시 개인이라는 개념이 나이로 편집됐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와 나의 성격 또한 객관적인 것이 아닌 우리의 기억이 편집된 결과라니! 또한 많은 실험들에 따르면 우리의 기억은 너무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 것인 만큼 어떻게 기억을 편집하냐에 따라서 '나'라는 존재의 의미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게 된다. 
 
개인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행복한 가족'이라는 개념,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개념 모두 시대와 문화에 따라 편집된 개념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또한 천재라는 개념 역시 절대적인 개념이 아닌 시대에 의해 편집되는 것이라는 이론은 매우 흥미롭다. 그 예로 모차르트는 음악가의 위상이 수공업자에서 예술가로 전환하는 시기에 활동하며 위대한 천재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더 이상 음악계에서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가 탄생하지 않는 것은 이와 같은 시기가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성실하게 끝까지 책을 정독해 뿌듯해하고 있던 기자에게 저자는 다소 충격적인 말로 글을 마친다. "책은 끝까지 읽는 것이 아니다!" 창조적인 내 생각이 나오기 위해서는 목차를 찾아보며 주체적 독서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끝까지 독서에서도 어떻게 에디톨로지가 작용하는지 강조하며 책을 마친다.  
 
"독서는 내가 가진 개념과 저자의 개념이 편집되는 에디톨로지 과정이다!" 
 
■책 속 밑줄 긋기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 다른 편집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하나도 없다! 창조는 편집이다.
 
에디톨로지는 그저 섞는 게 아니다. 그럴듯하게 짜집기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편집의 단위' '편집의 차원'이 복잡하게 얽혀들어가는,
인식의 패러다임 구성 과정에 관한 설명이다.
 
제한된 카드로 잔머리를 굴리며 자꾸 뒤섞어 내놓은 행위를 전문용어(?)로 '순구라'라고 한다. 남의 이론을 많이,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편집할 수 있는 카드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다.
'실력이 있다'는 것은 편집할 수 있는 자료가 많다는 뜻이다.
 
천재와 또라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천재는 날아간 생각을 잡아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
날아다니는 생각을 구체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라이’는 그렇지 못하다.
 
영화 창작의 주인은 감독이다. 배우나 스토리 작가가 아니다.
감독이 영화의 실체를 구성하는 편집권을 전적으로 쥐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본질은 에디톨로지이다.
 
진리를 계몽하던 시대는 지났다.
듣는 이로 하여금 '주체적 편집의 기회'를 제공해야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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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ㅣ 고가 후미타케 ㅣ 인플루엔셜 펴냄
<모든 순간의 인문학> ㅣ 한귀은 ㅣ 한빛비즈  펴냄
 
우성문 국제팀 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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