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기자)하루키가 기획한, 특별한 클래식 대담
2015-01-24 09:03:54 2015-01-24 09:03:54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오자와 세이지 지음 | 권영주 옮김 | 비채 펴냄 
 
‘거장이 인터뷰한 또 다른 거장’ 혹은 ‘소설가와 음악가 간 관점의 충돌’ 같은 콘셉트를 예상했지만 책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라는 관계는 표면적인 것일 뿐 실상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눈, 음악에 관한 심도 깊은 대화’에 가까웠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기획하고 직접 인터뷰에 나선 책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의 중심은 다름 아닌 음악 이야기다. 두 거장의 이름이 워낙 강렬한 탓에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이미 제목이 핵심을 설명하고 있었다. 인터뷰집이라기보다는 독특한 기록물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한 이 책은 클래식 음악, 그리고 클래식 음악에 대한 두 사람의 애정과 열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클래식 마니아가 아니라면 마에스트로 오자와 세이지(81)는 사실 낯선 이름일 수 있다. 세이지는 우리나라로 치면 정명훈 지휘자 정도의 사랑을 받는 일본의 ‘국민 지휘자’다. 브장송 국제청년지휘자 콩쿠르 1위, 버크셔 음악센터 지휘자 콩쿠르 쿠세비츠키상 수상 등으로 국제적 관심을 얻은 이후 베를린에서 카라얀에게 사사했고, 1961년 번스타인이 이끌던 뉴욕필의 부지휘자로 취임했다. 이 밖에도 시카고의 래비니아 페스티벌,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보스턴 심포니, 빈 국립오페라극장 음악감독 등으로 활약하는 등 국제 무대를 숱하게 누볐다.
 
그런 그가 2011년 식도암 수술 후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와 인연이 닿아 인터뷰를 하게 됐고, 이 책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두 사람의 개인적인 친분 덕분에 인터뷰는 무려 1년에 걸쳐 일본과 하와이, 스위스 등 세계 곳곳에서 진행됐다. 결과적으로 책에는 번스타인과 카라얀의 스타일은 어떻게 다른지, 지휘자는 어떤 식으로 음악에 자기 만의 독특한 지문을 남기는지, 악보는 또 어떻게 공부하는지 등 섬세하고 깊이 있는 내용들이 담겼다. 특히 재즈 마니아이기도 하지만 클래식 마니아이기도 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음악감상 '수준'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이 주는 독특한 재미다.
 
책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둘러싸고’, ‘카네기홀의 브람스’, ‘1960년대에 일어난 일’,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을 둘러싸고’, ‘오페라는 즐겁다’, ‘스위스의 작은 도시에서’, “정해진 방식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때그때 생각하면서 가르치죠.” 등 크게 7장으로 구성돼 있다. 세이지가 동시대에 활동하면서 곁에서 직접 눈으로 지켜봤던 거장 음악가들 이야기, 또 자신의 음악세계에 대한 이야기 등이 흥미롭게 엮여 있다. 
 
또 여기다 하루키는 마치 클래식 콘서트에서 곡이 끝나면 짧은 휴식이 주어지는 것처럼 '막간'이라는 부제로 짤막한 글들을 끼워넣었다. ‘레코드 마니아에 관해’, ‘글과 음악과의 관계’, ‘유진 오르먼디의 지휘봉’, ‘시카고 블루스에서 모리 신이치까지’ 등 음악을 둘러싼 흥미로운 곁가지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맨 마지막 부분에는 오자와 세이지의 후기도 곁들여진다.
 
사실 이 책은 전문가와 마니아가 클래식 음악을 이야기한 책인 만큼 대중적인 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클래식 마니아들을 위한 책 혹은 클래식 애호가를 위한 길라잡이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하루키가 쉬운 문장으로 풀어쓴 데다 음악감상에 대한 자신의 강렬한 집착을 기꺼이 내보이면서 흥미를 자아낸다. 시간을 충분히 들여 읽기를 추천한다. 또 책에서 언급되는 당대의 클래식 음반들을 모두 들으면서 읽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마치 세이지와 무라카미가 인터뷰 할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김나볏 생활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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