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키고 싶은 시간이 있는 독자라면 '타임머신'을 떠올린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우주에 있는 '웜홀'을 이용하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개봉 50일 만에 1000만명이 본 영화 <인터스텔라>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이 영화에는 웜홀 외에도 상대성이론, 중력, 웜홀, 5차원 등 다양한 과학이론이 등장한다.
때맞춰 등장한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는 이 영화에 나오는 이론을 간단한 그림과 함께 설명하는 책이다. 영화를 본 뒤 "저게 말이 돼?"라며 궁금했던 점을 상당 부분 해소해준다. 영화 소재 외에도 엘리베이터, 자동차, 헬리콥터 등 상대적으로 익숙한 사례를 통해 과학 이론을 소개하면서 내용을 풍부하게 구성했다.
또 7세기 신라인들이 천문학에 관심을 보인 이유, 밤하늘이 어두운 까닭, 블랙홀이란 용어가 처음에는 '너무 야하다'는 이유로 쓰이지 못했다는 등 영화에 나오지 않는 과학 역사 이야기도 소개된다.
다만, 영화 내용과 직결되는 내용만 기대한 독자라면 당황할 수도 있다. 과학 이론이 탄생한 배경과 수학 공식 등이 많이 분량으로 소개돼 과학에 흥미가 없거나 익숙지 않은 경우 읽기 버거울 것이다.
저자는 이 영화가 한국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이유를 "과학과 자연의 원리와 우주의 질서를 알고 싶어 하는 원초적인 욕망을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억눌림이 <인터스텔라>를 계기로 폭발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불행하게도 아직 한국 사회는 그런 욕망을 충족할 장치가 별로 없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기초과학 현실까지 꼬집는 책이 되는 순간이다.
어쨌든,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지는 게 우주다. 영화를 본 뒤 우주를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면 책을 펴도 좋다.
▶ 전문성 : 이 책에는 '쉽고 재미있는 우주론 강의'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재미는 있으나, 쉽지는 않다. 그 어떤 속도의 조합도 광속을 넘지 못한다며 이런 걸 제시한다. "(0.8c+0.7c)/(1+0.8x0.7)=1.5c/1.56=0.96c"
▶ 대중성 : <인터스텔라>는 <아바타>(2009), <겨울왕국>(2013)에 이어 외화로는 한국에서 세 번째 1000만 관객이 본 영화다. 이런 영화를 소재로 재빠르게 나온 책이다.
▶ 참신성 : 상대성이론, 중력, 블랙홀과 웜홀 등의 개념은 참신하지 않지만, 늘 참신할 수도 있다. 어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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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중력=만유인력은 질량이 있는 두 물체 사이에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서로 당기는 힘이다. 영어로 'universal law of gravitation'이다. 직역하면 '중력에 대한 보편 법칙'이다. 이를 '보편 중력의 법칙'이라고 했으면 쉬웠을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중력은 우주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우주에는 태양처럼 거대한 질량의 천체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중력이 극단적으로 강력한 블랙홀도 널려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쿠퍼 일행이 탄 우주선 인듀어런스호는 토성 근처의 웜홀 입구로 가기 위해 화성의 중력을 이용해 방향 전환한다. 어떻게 한 것일까? 우주선을 행성의 중력권 속으로 날리면 행성으로 추락하거나 위성 궤도를 돈다. 하지만 우주선의 조건을 적당히 조절하면 우주선이 왔던 방향으로 튕겨 날아간다. 이것을 '중력기동'이라고 부르며, 마치 행성이 우주선을 새총으로 날려버리는 것과도 같아 '중력새총'이라고도 한다.
인터스텔라의 흠 중 하나는 중력이 지구 중력의 130%라는 밀러의 행성에서 어떻게 착륙선이 자체 연료로 그 행성을 탈출할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기조력=중력 차이로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힘을 뜻한다. 달에 의한 기조력 때문에 지구의 바닷물은 달을 향한 방향과 달의 반대 방향 양쪽에서 부풀어 오른다. 지각도 비슷한 영향을 받아서 최대 25cm 정도 부풀어 오른다. 이런 까닭에 지구는 달 방향으로 양쪽에서 잡아당겨 늘어진 모양을 하게 된다. 인터스텔라에서 쿠퍼 일행이 처음 도착한 물의 행성은 블랙홀 근처에 있다.
이 행성에서 블랙홀에 의한 기조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그 파도는 기조력 때문이다.
특수상대성이론=서로 등속 운동을 하는 좌표계 사이의 관계에 관한 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은 이와 관련 두 가지 가정을 했다. "1. 모든 관성좌표계에서 물리법칙은 똑같다. 2. 모든 관성좌표계에서 광속은 똑같다." 관성 좌표계는 관성의 법칙이 성립하는 좌표계를 뜻한다. 영화에서 지구에 남겨진 딸 머피가 우주로 날아가는 인듀어런스호의 불빛을 봐도 그 불빛은 여전히 광속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특수상대성이론을 일반화한 가속 운동에 관한 이론이다. 또한 현대화한 중력이론이라고도 한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기 시작하면 몸무게가 가벼워지는데, 만약 엘리베이터가 그대로 있는데 지구의 질량이 가벼워졌다면 어떻게 될까? 아인슈타인은 두 상황을 구별할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을 '등가원리'라고 한다.
가속 운동을 하면 없던 힘, 즉 관성력이 생긴다. 이 힘은 등가원리 덕분에 중력으로 바꿔치기할 수 있다. 우주선이 회전하면 우주선 바깥으로 관성력이 작용해 지구의 중력과 똑같은 크기를 갖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인듀어런스호가 회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울러 가속 운동은 중력이고, 시공간의 뒤틀림이다. 따라서 중력은 곧 시공간의 뒤틀림이고, 중력이 강력한 곳에서는 시간이 느려진다. 영화에서 중력에 따른 시간 지연이 발생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이는 인듀어런스호가 지나는 영역에 블랙홀이 있어서이기도 하고, 우주선의 비행속도가 광속보다 그리 크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저자는 "무엇보다 상대성 이론에 의한 시간 지연을 굉장히 현실적으로 구현했다는 점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다"고 썼다.
블랙홀=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물질은 각 운동량을 보존하기 위해 블랙홀 주위를 돌면서 빨려 들어간다. 그 결과 블랙홀 주변에는 원반 모양의 물질층이 만들어진다.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블랙홀도 주변에 원반층을 갖고 있다. 원반층은 블랙홀의 적도를 가로지르고 있다. 블랙홀 주변으로 고리 모양의 층도 보인다. 이는 블랙홀의 '중력렌즈효과' 때문이다. 질량이 무거운 천체가 공간을 휜다면 무거운 천체 뒤에 가려진 별빛이 휘어진 공간을 따라서 진행하다가 우리의 시야에 들어올 수 있는데, 마치 렌즈로 빛의 경로를 휘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서 중력렌즈효과라고 부른다.
블랙홀에서 정보가 손실된다는 호킹 박사의 주장은 지난 2004년 철회됐다. 다만, 인터스텔라에서 블랙홀에 빠진 쿠퍼가 과거의 딸에게 정보를 보내는 장면은 다른 우주로 정보가 새어나간다는 것인지, 어쨌든 정보가 보존돼 다시 복원된다는 의미인지 저자도 잘 모르겠단다. 이와 관련한 설명은 웜홀을 다룬 대목에서 다시 등장한다. 블랙홀 안으로 추락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 블랙홀로 추락하는 여행은 그리 안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강력한 중력에 의한 기조력 때문이다. 기조력은 영화 주인공을 위아래로 잡아당길 것이고 추락할수록 그 힘은 더 커진다.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기조력을 버틴다고 해도 자유낙하의 최후를 피할 수 없다. 다만, 블랙홀이 충분히 크다면 이동하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기 때문에 주인공은 천수를 누릴 수도 있다.
웜홀=정보가 블랙홀 안에서 보전된다면 그 주변의 '불구덩이'에서 홀랑 타버릴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블랙홀 밖으로 빠져나가는 입자와 블랙홀 속의 입자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 '불구덩이'를 피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 연결통로가 웜홀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불구덩이가 없다고 믿는 것 같다. 인터스텔라에 과학적 토대를 제공한 물리학자인 킵 손 또한 음의 에너지를 사진 이상 물질이 있으면 웜홀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웜홀의 입구를 광속에 가까이 빠른 속도로 운동시킬 수 있다면 시간 여행도 가능하다는 논문도 내놨다. 결국 이런 아이디어는 영화에서 구현됐다.
■책 속 밑줄 긋기
"잊지 말라. 우주탐사의 선봉에 과학자가 있었음을. 입자물리학자도 빠지지 않았음을."
■별점 ★★★
■연관 책 추천
<인터스텔라의 과학> 킵 손 지음 | 까치 펴냄
<코스모스> 칼 세이건 지음 | 사이언스북스 펴냄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 마크 롤랜즈 지음 | 책세상 펴냄
김동훈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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