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업들의 작전에 인생을 통째로 날리고 절망하는 개미들의 눈물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싸우기로 결심했다."
입만 열면 고객만족과 주주가치 제고를 떠드는 기업들, 그들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수십조대의 분식회계로 투자자들을 속여 평생 모은 재산을 한 순간에 날리게 하고, 유수의 금융기관들의 유명 펀드매니저들이 뒷돈을 받고 그것도 고객이 투자한 돈으로 주가를 조작하며,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비상장계열사 주식을 싸게 팔고 비싸게 사들이면서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떠넘기는 행태들. 지극히 탐욕스럽고 뻔뻔한 재벌기업과 금융기관들의 '민낯'을 보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불과 십수년 전의 일이라면.
특히 이미 부실화된 기업이 기업어음을 발행할 수 있도록 방조하고 100억원대의 피해를 배상할 지경에 몰리자 아예 법인을 사실상 공중분해 해버리며 면피하는 거대 회계법인의 행태는 할 말을 잊게 한다.
이 책은 좋은 집안에서 나서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아 대형로펌에서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았던 저자가 이렇게 탐욕스러운 기업의 작전에 휘말려 피눈물을 흘리는 개미투자자들의 편에 서기로 결심하고 싸워온 20여년간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거대기업과 자본의 탐욕 뿐 아니라, 그들을 보호하는 법과 제도, 그리고 관행과도 눈물겨운 싸움을 벌인다. 그 싸움은 때로는 승리를, 때로는 뼈아픈 패배를 안긴다. 비록 진 싸움도 소중하다. 하나하나가 모두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온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이제 세상은 정의로워졌을까? 불과 얼마전 벌어진 동양그룹 사태나 LIG그룹 사건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거대 자본은 궁지에 몰리는 순간이라면 언제든 불법과 편법, 사기 행각을 되풀이 할 것이고, 그 수법은 훨씬 더 교활해질 것이다. 일반 투자자들이 항상 눈을 부릅뜨고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이유다.
▶전문성 : 오늘의 자본시장 관련 법규와 판례들이 어떻게 형성되어왔는지 전문적인 지식을 담고 있다. 자본시장법의 주요 쟁점들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 수 있다. 특히 지난 20여년간 벌어졌던 주식시장 관련 주요 소송의 전 과정을 꼼꼼히 기록해 사료로서도 가치가 높다. 책을 살 때 끼워주는 개미주주들을 위한 변호사 선임 가이드나, 자신이 투자한 종목이 상장폐지에 직면했을 때으 대응 지침도 유용해 보인다.
▶대중성 :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꼭 읽고 숙지해야 할 일종의 지침서다. 다시는 터무니없는 사기극에 휘말리지 않기 위하여…. 각 소송 사건의 전말을 신문기사와 보도자료 등을 통해 알기 쉽게 서술해 어렵지 않게 따라가며 읽을 수 있다.
▶참신성 : 상식을 초월하는 제도나 관행의 벽에 부딪혔을 때도 어떻게든 이를 돌파해 조금씩 정의를 실현해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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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1장. 개미들의 반란-대우전자 소액주주운동과 분식회계소송
금융감독원이 1999년 12월부터 2000년 9월까지 가동한 ‘대우그룹 분식회계 조사감리특별반’의 활동을 통해 드러난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규모는 22조9천억원이었다. 대우전자의 소액주주들은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한 후 인터넷을 통해 소액주주들의 힘을 결집해 법정 안팎에서 갖가지 투쟁을 전개했다. 인터넷을 통한 소액주주운동의 선구가 되었던 것이 바로 이 개미주주 사이트였다.
2000년 10월24일 대우전자의 소액주주들 360명이 서울지방법원에 대우전자의 분식회계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장을 제출했다. 피고들은 대우전자와 그 임원들, 그리고 회계감사를 맡았던 세동경영회계법인을 흡수합병한 안진회계법인이었다. 주요 쟁점은 안진회계법인의 책임 여부, 사외이사들의 책임 여부, 그리고 손해배상액 산정의 문제로 집약되었다. 안진회계법인이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 대우전자의 1998년 회계감사를 하면서 ‘적정’의견이 아니라 ‘한정’의견을 냈는데도 부실감사의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소송의 가장 큰 쟁점은 원고들의 손해와 분식회계 내지 부실 감사 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소송은 4년3개월이 지난 2005년 1월13일에야 겨우 1심판결이 선고되었다. 피고들의 책임을 인정하되 과실상계를 60~80%로 보아 그 책임의 한도를 20% 내지 40%만 인정했다. 2005년 2월 원•피고 쌍방의 항소장 제출로 시작된 2심재판은 비교적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2006년 1월18일 2심 판결에서는 피고측 항변을 배척하고 원고 일부승소를 선고했지만 피고들의 책임을 일률적으로 30%로 제한했다.
2007년 10월25일 대법원 판결에서는 과실상계비율의 과다와 손해액 산정과정에서의 인과관계에 대한 추가심리를 명한 부분 때문에 사건이 파기환송되었다. 이 대법원판결은 분식회계로 인한 손해배상액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그리고 과실상계의 합리적인 사유는 무엇인가 등에 관한 기준을 정하는 기념비적인 판결이었다. 이후 2008년 9월26일 파기환송심에서 예상대로 원고들의 손해액 중 60% 정도를 배상할 것을 명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자는 2000년 10월말부터 연 5%씩 붙는 내용이었으므로 무려 8년에 가까운 기간의 이자가 붙어서 피해자들의 경우에는 손해액의 거의 100%를 회수 할 수 있었다.
2장. 애국심에 호소한 초대형 펀드의 위선-바이코리아펀드 소송
바이코리아펀드는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에 의해 1999년 3월부터 판매된 펀드로, 설쟁액은 한때 12조원까지 이르렀다. 당시 이익치 회장은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서 열린 펀드 투자설명회에서 당시 700대였던 종합주가지수가 2005년에는 6천 선까지 오를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출시 13일 만에 설정액 1조원을 돌파하고 두 달여 만에 5조원을 돌파했던 바이코리아펀드는 자가발전식의 유동성장세를 일으켜 1997년 말 IMF 경제위기로 급락해 있던 증권시장을 활황으로 이끌었다. 바이코리아펀드 소송은 공격적인 마케팅을 문제 삼은 소송은 아니고, 바이코리아펀드의 활황을 틈타 부실자산을 정리하고자 한 현대투신운용의 불법적인 펀드 운용을 문제삼은 소송이다.
금융감독위원회는 1999년 12월24일 현대 및 SK 계열 금융기관에 대한 연계검사 결과 및 조치 결과에 관한 보도자료를 냈다. 현대투신운용 및 현대투신증권에 대한 검찰통보의 제재를 하는 내용인데, 시장에 가져올 충격을 우려하여 문제점을 축소하는 모습이었다.
200년 8월7일 바이코리아펀드에 가입했다가 손해를 입은 17명의 투자자들을 대신해서 원고들 1인당 일단 10만원씩을 청구하는 소장을 제출했다. 피고측은 부실자산 상각을 위한 배드펀드의 설정이 사실상 금융감독당국의 허가 아래 이루어진 것이고, 부실자산의 발생원인이 그 당시까지 투자신탁의 운용제도 및 실무관행에 따라 투신사가 어쩔 수 없이 떠안게 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여러 펀드들에 나누어 부담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1심판결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중 피고측 변호사로부터 판결에 의하지 않고 자발적인 배상을 하는 방향으로 해결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결국 2001년 11월27일 원고측과 피고측은 청구금액의 90% 자발적 배상안에 합의하고 소송을 종결시켰다.
3장. 피해자들을 두 번 울게 한 비운의 집단소송-세종하이테크 주가조작소송
2000년 7월4일 신문지상을 도배한 세종하이테크 사건은 국내 유수 금융기관들의 펀드매니저들까지 개입하여 코스닥에 신규상장한 회사의 주가를 조작한 사건으로 증시에 매우 큰 충격을 주었다. 한양증권, 삼성투신, 국민은행 등의 유명 펀드매니저들이 기업의 대주주와 결탁해 그것도 고객의 돈을 이용해 주가를 띄웠다는 점에서 증권시장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세종하이테크의 대표이사이자 대주주인 최모씨는 1999년 11월경 H증권 명동지점 부지점장인 이모씨에게 15억원을 건네주며 주가관리를 부탁했고, 이씨는 전 직장동료 또는 학연 등 친분이 있는 펀드매니저들에게 주가를 올려달라고 청탁한 뒤 이 15억원 중 9억원을 주었다. 1999년 12월 11일 공모가 5만원으로 코스닥에 신규상장된 세종하이테크는 3주가 채 안된 2000년 1월6일 22만9천원까지 4.1배 급등한 후 3월28일에는 33만2900원까지 폭등했다. 이들 펀드매니저들은 구속기소되었지만 이들에 대한 처벌은 결국 솜방망이로 그쳤다.
원고를 모집해 총 342명이 총 43억97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001년 12월13일 1심판결이 선고되었는데, 재판부는 피고들이 세종하이테크의 주식을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가격으로 취득한 원고들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피고들 중 한양증권과 국민은행 두 곳을 정해 전격적으로 진행한 강제집행을 통해 승소원리금 약 22억원 중 17억원의 배상금을 집행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항소심재판부는 피고측 지정 감정인의 감정 결과를 모두 받아들여 원고들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시세조종행위가 회사의 주가에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2004년 5월27일 희망을 가지고 대법원 선고 결과를 받았으나, 결과는 상고기각이었다. 패소가 확정된 것이다. 대법원에서 패소확정되었으므로 가집행을 통해서 받은 돈을 되돌려주어야 했다. 주가조작의 피해자들은 돈 돌려받기의 달인들에게 두 번 죽은 셈이다.
4장. 심판대에 오른 재벌총수의 재테크-LG그룹 주주대표소송
재벌기업의 경우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비상장계열사의 주식을 총수에게 팔 때는 가급적 싸게 팔고, 총수로부터 살 때는 가급적 비싸게 사는 식으로 거래가 이루어질 위험이 크다. LG그룹 주주대표소송은 1999년 6월29일 구본무 회장, 허창수 회장 등을 비롯한 8명의 LG화학 이사들이 LG화학이 100% 보유하고 있던 LG석유화학 지분 중 70%(2744만주)를 구본무 회장, 허창수 회장 등 경영진 자신과 그 일가친척들에게 주당 5500원이라는 싼 가격에 매각한 사안에 관하여 제기된 소송이다. 하지만 직접 발단은 2004년 4월 이루어진 또다른 비상장계열사 주식거래였다. 당시 LG화학은 구자경 명예회장 등 27명의 총수 일가로부터 LG칼텍스정유의 보통주 118만주를 주당 11만원, 총 1298억원에 구입하고, 구본무 회장 등 25인의 총수 일가로부터 LG유통의 보통주 1,644,998주를 주당 15만원, 총 2467억4970만원에 구입했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주가가 급락했고, 이례적으로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거래취소를 요청하는 등 반발했다.
개인 주식투자자 6명을 원고로 당시 거래를 승인한 이사들 8명 전원을 상대로 최소한 823억2천만원 이상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내용의 주주대표소송 소장을 2003년 1월27일자로 법원에 제출했다.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1심 재판부는 주식의 적정가격을 7810원으로 산정하고 그 차액인 633억8640만원의 손해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1심판결이 선고된 후 피고 구본무 회장 등은 즉각 470억원을 LG화학에 배상했다. 이 사건은 주주대표소송이 재벌그룹의 비밀스러운 내부 지분거래에 대한 감시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 시민단체가 기관투자자나 일반 소액주주들을 선도하는 주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각인시켜 우리나라의 기업지배구조 투명성을 한층 높인 소송이었다.
5장. 사상 초유의 재벌그룹 주가조작-현대전자 주가조작소송
현대전자에 대한 주가조작은 1998년 5월 중순경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약 6개월에 걸쳐 조직적으로 진행됐다. 금감원은 1999년 4월7일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이 대량의 저가매수 공세, 계열사 간 통정매매, 장 마감 직전 종가 관여 대량매수 주문 등을 통해서 현대전자의 주가를 띄웠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이런 주가조작을 통해 현대전자의 주가는 당초 1만4천원대였던 것이 3만2천원대까지 상승한 것으로 밝혀졌다.
참여연대는 이익치 회장 등에 대한 검찰의 구속기소가 마무리되자 1999년 10월 투자자 44명을 원고로 현대증권과 이익치 회장 및 현대전자의 정몽헌 회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재판부는 2년여의 심리를 거친 후 2001년 11월30일 이익치 전 회장 등의 주가조작사실은 인정되지만 이로 인한 원고들의 손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원고측은 즉각 항소했으며 집요한 법리공방에 힘입어 2003년 12월9일 서울고등법원 민사12부는 1심 판결을 뒤엎고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피고측은 상고를 제기했고, 불과 5개월여만인 2004년 5월28일 선고기일이 지정됐는데, 놀랍게도 선고 결과는 ‘원심 파기환송’이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손해배상액 산정방식에 관해서는 2심의 논리를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파기환송심에서의 재판장은 기업측에 우호적인 재판장이었고 결과는 아주 실망스러웠다. 주가가 영향받은 시기를 주가조작행위가 한창 실행되고 있던 1998년 6월9일부터 1998년 10월15일까지로 판단했고, 소송에 참여한 53명 중에서 불과 5명만 승소했다. 이 사건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지만, 증권거래법상 손해배상의 법리 면에서는 중요한 판례를 만들어낸 사건이었다.
6장. 한일월드컵 사업권을 따낸 유망기업과 대형회계법인의 몰락-한일월드컵 휘장사업자 코오롱TNS CP소송
코오롱TNS는 1988년 코오롱그룹으로부터 분리된 우리나라 열번째 규모의 여행사였다. 2002년 한일월드큽의 휘장사업자로 선정되었으나 결국 휘장사업에서 막대한 적자를 보고, 2002년 7월에 약 700억원대의 부도를 낸다. 약 37억원의 기업어음을 못막아 부도를 냈는데 나중에 코오롱TNS가 기업어음을 발행해서 끌어다 쓴 돈이 무려 945억원이나 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증권선물위원회는 부실감사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여 2003년 11월29일 안건회계법인의 각종 부실감사사실을 지적하면서 손해배상 공동기금 추가적립 25% 등의 제재 조치를 내렸다.
코오롱TNS가 발행한 기업어음을 매입했다가 손해를 입은 투자자들은 2002년 10월경부터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해 2004년 12월29일경까지 총 92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제기되었다. 이들 소송에 대한 첫 판결은 2005년 2월18일로 코오롱TNS와 그 임원들에 대해서는 피해액 50%의 배상책임이, 안건회계법인에 대하여는 피해액 30%의 배상책임이 인정되었다. 이후 또다른 소송들이 제기되어 소송 규모는 165억원에 달했고, 후속 판결에 따라 안건회계법인은 약 100억원의 배상책임을, 회사와 임원들은 약 150억원의 배상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안건회계법인은 2005년 3월 비상탈출작전에 들어간다. 불과 1~2주만에 갑자기 소속 공인회계사 숫자가 15명에 불과한 소형 회계법인으로 전락했다. 원래 영화회계법인과 합병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부실감사와 관련한 법적 책임을 회피할 목적으로 합병을 포기하고 개별적 퇴사 및 입사를 통한 통합을 추구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하지만, 1심은 물론 2심재판부도 이 법인 이사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강제집행 면탈행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7장. 고객 돈을 끌어모아 퇴출을 면해보려 했던 재벌계 증권사-현투증권 실권주 공모 관련 집단소송
현투증권은 이른바 3대 투신사로 불리던 한국투자신탁, 대한투자신착, 국민투자신탁 중 하나였던 국민투자신탁이 현대그룹에 의해서 인수된 후 상호를 바꾼 회사이다. 이들 투신사들은 당시 거액의 부실을 안은 상태에서 고객들이 맡긴 신탁재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서 회사의 운영자금에 충당하는 이른바 ‘연계콜’로 회사를 겨우 꾸려가고 있었는데, 현투증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런 현투증권의 부실에 다시 결정타를 날린 것이 바로 대우사태의 발생이었다. 1999년 7월19일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계획이 발표되면서 이른바 대우사태가 본격화되었는데, 당시 대우그룹은 무보증 회사태 18조6천억원을 발행한 상태였고, 특히 투신사들이 대우계열사가 발행한 회사채를 다량 보유하고 있었다.
현투증권의 이사회는 대우채 관련 정부 발표가 있은 직후인 1999년 11월9일 총 8750만주를 주당 6천원에 발행하여 총 5250억원을 조달하는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이어 11월25일에는 실권주 발생시 고객과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실권주 공모를 실시하기로 결의했다. 기존 주주들도 인수하지 않는 실권주를 고객에게 떠넘기자는 아이디어가 회의 이사회에서 채택된 것이다. 이후 현투증권은 전국의 영업지점망을 활용하여 고객들을 상대로 공모증자에 응할 것을 권유하는 활동을 전개했고, 무려 2만3205명에 달하는 고객들이 청약에 참여했다.
그러나 불과 4개월 후인 2000년 5월경부터 현투증권의 부실이 가시화되어 언론에 공표되기에 이르렀고, 공모사기 피해자 전체 원고 수 1483명, 투자금 325억원에 7차에 걸친 마라톤 소송이 시작됐다. 오랜 재판 끝에 내려진 1심판결은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승소금액이 피고 현투증권에 대해 60%였으므로 지연이자 등을 포함하면 사실상 투자금액의 70%에 달하는 수준이었다.
8장. 금배지를 단 채 태양광 아래로 추락해버린 유망 중소기업인-에이치앤티 주가조작사건
에이치앤티는 2000년에 설립된 회사로 컴퓨터 저장장치의 일종인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의 부품을 생산, 판매하는 회사였다. 에이치앤티는 여러 차례 유망 중소기업으로 선정되었고, 설립자인 정모씨도 망한 회사를 재건한 유능한 중소기업인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성공스토리와 화려한 언변을 기초로 대언론활동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는데, 2008년에는 제18대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에이치앤티는 2006년도에 매출이 정점에 다다른 후 사실상 유일한 구매처인 삼성전자의 주력품목 변경으로 회사의 주된 생산모델에 대한 생산량이 축소, 단종되어 경영위기에 직면했다.
이런 상황에서 에이치앤티는여러 경로를 통해 “태양전지 원료인 규소광산 개발권을 획득하고 대체에너지 사업에 진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조사 결과에 따르면 에이치앤티는 실리콘 광산 독점개발권을 확보한 바 없으며, 신규사업 진출은 시작 단계부터 사기성이 농후했다.
에이치앤티 주가는 이후 2007년 10월 8만9700원까지 급등해 같은 해 2월말 대비 무려 20배 이상 급등했다. 정씨는 이런 와중에 자신이 차명 보유하고 있던 주식 등을 매각해 440억여원에 달하는 거액의 시세 차익을 실현했다. 이어 2007년 11월 이후 금융당국과 검찰조사를 통해 태양에너지 사업이 총체적 사기였음이 밝혀지고, 주가가 폭락해 투자자들이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되었다. 에이치앤티 주가조작사건은 통정매매와 허위매매 등 전형적인 주가조작기법이 동원된 것이 아니라 ‘언론매체를 동원한 허위사실 유포’라는 새로운 기법을 활용한 것이었다.
2008년 9월19일 정씨에 대한 형사 1심판결의 선고가 있었는데 대부분 유죄가 인정되었고, 최종심에서 실형 2년6개월에 추징금 약 86억원이 선고됐다. 이어 민사재판에서도 피고들의 사기적 부정거래행위(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시세조종)가 인정되었고, 손해배상책임도 인정되었다.
9장. 공모주 청약 직후 부도를 낸 두 회사와 투자자들의 엇갈린 운명-옌트와 한일약품공업 부실공모 소송
옌트는 공장 자동화설비의 설계 및 제조업 등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로서, 1998년 4월 유가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보통주 15만주를 주당 2만원에 공모발행한 후 그해 5월25일 코스닥시장에 등록했으나 불과 4개월도 안 된 1998년 9월16일 최종적으로 부도처리되었다. 한일약품공업은 이미 상장되어 있던 회사로 1999년 1월 유가증권신고서를 제출한 후 그해 3월 일반투자자들을 상대로 주당 6200원에 약 140만주를 공모발행하는 공모주 청약을 실시하여 약 88억5천만원을 조달했으나, 공모주가 상장되기도 전인 1999년 4월2일 회사가 부도처리되었다.
옌트의 코스닥 등록 주간사 업무를 처리한 동부증권 김모씨는 옌트의 업무에 깊숙이 관여하여 옌트의 재무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옌트의 대표이사와 짜고 상장을 그대로 강행했다. 1998년 5월25일 코스닥시장에 정식 등록된 옌트는 유가증권신고서를 통해 1개월간 2만원의 공모가액으로 시장조성을 수행한다고 공시한 바 있지만 이를 수행하지 않아 1개월 뒤 1만2800원으로 하락했고, 그해 9월16일 5100원으로 하락했으며, 같은 날 옌트는 자금난으로 부도처리되었다. 그 8개월 뒤 서울지검 특수부가 옌트의 대표인 정모씨를 증권거래법 위반혐의로 구속기소하고 동부증권 담당자를 수배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을 모아 주간 증권사와 회계법인, 옌트 경영진을 상대로 1998년 11월2일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2000년 1월25일 원고들의 전부 승소에 해당하는 1심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2001년 1월 항소심판결에서는 공모에 참여한 원고들 3명의 회계법인에 대한 청구만 인정하고 장내에서 주식을 취득한 나머지 원고들의 청구는 모두 기각했다. 증권거래법 제14조가 유가증권신고서에 기한 모집 또는 매출에 의하여 유가증권을 매수한 최초취득자에 한해 적용된다는 판단이었다. 2002년 9월24일 선고된 대법원판결도 2심을 그대로 인용하고 원고 패소 확정판결을 내렸다. 증권거래법 14조가 사실상 무력화되는 안타까운 판례가 형성된 사건이었다.
대한생명그룹의 계열사였던 한일약품공업 소송은 원고들의 피해액이 1650만원에 달하는 적은 액수였고, 공모주 발행을 대리한 주간 증권사를 대상으로 했다. 1심재판부는 2000년 4월19일 “주간사가 유가증권신고서 의견란에서 중요한 사항을 은폐했다”는 주장을 배척하고 원고 패소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심재판부는 감사보고서 의견란 부실기재에 대해 주간사 증권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원고들의 청구를 전부 인정했고, 피고들의 상고 취하로 그대로 확정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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