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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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예술'이 압권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 소설가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얘기다. 기억상실자가 소리와 냄새, 장면을 둘러싼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을 정밀 묘사하는 모디아노의 언어 덕분이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눈으로 읽으면서 귀를 쫑긋, 코를 킁킁거리면서 주인공이 되살리는 어렴풋한 기억에 힘을 보탤 수 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인상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단 한 문장도 그냥 넘기기 어렵게 하는 것도 특징이다. 추리소설처럼 독자의 상상력이 끼어들 틈을 마련했기 때문인가 싶다. 책을 덮은 뒤 "나는 천천히 읽을 수 있는 아름답고 낯선 글을 좋아한다"며 "매혹적인 소설"이라고 소설가 은희경이 설명한 것을 넘어서는 표현을 찾기 어려웠던 이유다.
소설 주인공의 기억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지배를 당하며 파괴됐던 인간을 그린다. 문학 작품으로서의 깊이를 더하는 지점이다. 나치는 물론 이웃의 눈을 피해 이름과 국적을 바꾸며 정체성을 둔갑해야만 했던 이들의 기억이다. 전쟁이 파괴한 인간 군상이다. 일본 제국주의에 국권을 빼앗기고 국가의 폭력에 당했던 우리나라의 독자에게도 환기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은 무려 36년 전에 나온 것이고, 소설의 무대는 그보다 30여 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21세기를 사는 독자에겐 그런 기억이 없을지도 모른다. 저마다 기억하기 싫은 기억도 있을 테다. 소설 속에서 "참으로 얄궂은 시절이었어요"라고 표현되는 그런 기억을 포함해서. 이 때문에 '잊힌 기억과 자신,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찾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인지, 한다면 가능한 일인지, 현재를 충실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닌지'와 같은 고민을 책은 뿌리고 있다. 소설 주인공처럼 "무엇 때문에 이미 끊어진 관계를 다시 맺고 오래전부터 막혀버린 통로를 찾으려 애쓴단 말인가?"라고 자문하게 될지도 모른다.
많은 경우 '지나가면서 쉬 지워져 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그 사람들'에 불과하다. 삶도 흩어지는 기억처럼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 같다. 그렇다고 기억이 의미가 없을까. 작가는 주제가 무엇이라고 딱 꼬집진 않는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지점도 더러 있다. 다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다"라고 작가는 어렴풋하게 말하는 것 같다.
정답은 없다. 흩어지고 잊힌 기억이 아무 의미 없이 허공에 떠도는 것 같지만, 그것이 모여 현재가 된다는 얘기 같기도. 이 소설 주인공은 기억을 찾은 과정을 거듭한 끝에 '아무 것도 아닌 상태'를 조금 벗는다. 되찾은 기억에 뒤따르는 허무와 실망은 어쩔 수 없다.
▶전문성 : 작가는 소설 주인공이 기억을 찾는 작품을 주로 발표했다고 한다. 이는 작가의 부모가 나치 점령기에 겪었던 일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그 시절을 직접 살지는 않았으므로 기억이 없다. 그런 고민이 책에서 느껴진다.
▶대중성 :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취해서 온 그대'의 개그맨 김대성처럼 "이 보드카는 얼마에 형성되어 있죠?"와 같은 일부 번역은 견딜만한 수준이다.
▶참신성 : 기억상실증이란 소재는 참신하지 않다고 입을 막고 불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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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10년 전 기억상실증에 걸린 탐정 '기 롤랑'은 일하던 흥신소의 사장이 은퇴한 것을 계기로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일에 나선다. 때는 1965년.
기는 사진 한 장과 부고(訃告)를 단서로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기 시작한다. 기는 사람들과의 만남 외에도 향기와 소리, 장소 등을 통해 기억을 환기한다.
기는 그러나 여전히 자신이 누구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때문에 자신의 원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도 퍼즐을 맞춰가면서 여러 차례 수정하게 된다.
결국에는 흐릿한 기억 속의 자신이 도미니카 공화국의 여권을 사용했으며 다양한 국적의 지인들과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가려다 함정에 빠진 것까지 기억해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지배를 받았던 프랑스의 모습이다.
다양한 추적을 거치면서 기 롤랑은 잃어버린 자신을 거의 되살려냈으나,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자신의 옛 주소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2번지'로 향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책 속 밑줄긋기
"나는 벌써 나의 삶을 다 살았고 이제는 어느 토요일 저녁의 따뜻한 공기 속에서 떠돌고 있는 유령에 불과했다. 무엇 때문에 이미 끊어진 관계들을 다시 맺고 오래전부터 막혀버린 통로를 찾으려 애쓴단 말인가?"
"내가 하위드 드 뤼즈였다면 나는 나의 삶을 통하여 어떤 독창성을 발휘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그보다 더 명예롭고 더 매력적인 수많은 직업들 가운데서 '존 길버트의 절친한 친구'가 되기를 선택했으니까 말이다."
"나는 그 아래 뉴욕 가를 따라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삶이 계속되고 있다는 유일한 표시였다."
"지나가면서 기껏해야 쉬 지워져버리는 연기밖에 남기지 못하는 그 사람들. 위트와 나는 종종 흔적마저 사라져버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서로 나누곤 했었다. 그들은 어느 날 무로부터 문득 나타났다가 반짝 빛을 발한 다음 다시 무로 돌아가 버린다. 미의 여왕들, 멋쟁이 바람둥이들, 나비들. 그들 대부분은 심지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결코 단단해지지 못할 수증기만큼의 밀도조차 지니지 못했다."
"위트는 '해변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한 인간을 나에게 그 예로 들어 보이곤 했다. 그 남자는 사십 년 동안이나 바닷가나 수영장 가에서 여름 피서객들과 할일 없는 부자들과 한담을 나누며 보냈다. 수천수만 장의 바캉스 사진들 뒤쪽 한구석에 서서 그는 즐거워하는 사람들 그룹 저 너머에 수영복을 입은 채 찍혀 있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며 왜 그가 그곳에 찍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아무도 그가 어느 날 문득 사진들 속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나는 위트에게 감히 그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 해변의 사나이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해변의 사나이들이며 모래는 우리들 발자국을 기껏해야 몇 초 동안밖에 간직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나는 한 번도 그 페드로 맥케부아였던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었다. 그러나 그 파동들이 때로는 먼 곳에서 때로는 더 세게 나를 뚫고 지나갔었다. 그러다 차츰차츰 허공을 떠돌고 있던 그 모든 메아리들이 결정체를 이룬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였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라고 한 당신의 말은 옳았습니다."
"매일 혹은 하루 오후에만도 여러 번, 여남은 마리의 말들이 마장을 따라 질주하며 장애물에 부딪히며 거꾸러지곤 했다. 그리고 그 장애물들을 넘어선 말들은 아직 몇 달 동안 더 보이지만 그것들도 다른 말들과 함께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때마다 다른 말들과 교체해야 할 새로운 말들이 끊임없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매번 똑같은 정열이 마침내는 부서져 버리고 만다. 그런 광경이 우리 마음속에 자아내는 것은 우수와 실망뿐이며…"
"한 어린 소녀가 황혼녘에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해변에서 돌아온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계속해서 더 놀고 싶었기 때문에 울고 있다. 그 소녀는 멀어져간다. 그녀는 벌써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과 마찬가지로 저녁 속으로 빨리 지워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별점 ★★★★
■연관 책 추천
<그 녀석 슈라에겐 별별 일이 다있었지>, <신원 미상 여자>, <혈통>, <도라 브루더>, <아득한 기억의 저편>, <한밤의 사고> 등 |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동훈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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