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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케아 상륙 앞둔 광명가구거리 '축제' 속 '근심'
2014-09-03 17:03:39 2014-09-03 17:08:10
[광명=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축제기간은 가구 판매가 늘어나는 시기인데, 3개월 뒤에 이케아가 들어온다고 하니까 올해에는 매출이 오를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네요."
 
한숨부터 흘러나왔다. 가구 공룡 이케아 상륙이 눈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결혼 시즌에 맞춰 광명 가구거리에 가구축제가 열렸지만 '축제'라는 단어에서 느낄 수 있는 유쾌하면서도 시끌벅적한 공기는 현실에 없었다. 역설적인 현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조용한’ 축제가 진행 중인 이곳 광명 가구거리의 분위기에서 지역 중소 가구업체들의 고민과 근심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지난 1일 한 달여의 일정으로 광명 가구문화 거리에는 '가을신바람 가구 대축제'가 열렸다.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조성된 가구거리에는 ‘반값 세일’, ‘폭탄 세일’과 같이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자극적인 현수막이 즐비했다.

◇유일한 생존전략 가격경쟁력 '위태위태' 
 
지역 중소 가구업체들은 해마다 이맘때쯤 한 달 간의 가구축제를 연다. 축제 기간 올리는 매출이 연간 매출액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 기간은 이들에게는 일종의 '대목'이다. 
 
유통업체들 연 매출의 20∼30%가 집중되는 미국의 최대 할인 쇼핑 기간인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와 마찬가지로 9월의 가구축제는 광명지역 영세 가구업체들에게 있어 한 해 농사가 좌우되는 중요한 시기다. 광명가구거리 A가구점 사장은 "축제기간 한 달 동안 그동안 부진했던 매출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올해 입고된 상품도 할인 판매해 재고 부담을 줄이는 기간"이라고 설명했다.
 
◇'신바람 가구축제'가 진행 중인 광명가구거리 모습.(사진=뉴스토마토)
 
국내 대형 가구업체들에 비해 브랜드 파워가 지극히 취약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그리 많지 않다. 이중 '할인 전략'은 가장 손쉬우면서 효과적인 전략이다. 업계에서도 대형 가구사들과의 피 말리는 경쟁 속에서도 지금까지 중소 가구업체들이 70%에 달하는 높은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가격 경쟁력'이 큰 몫을 했다고 평가한다.
 
'60% 대박 세일' 현수막을 내건 광명가구거리 B가구점의 사장은 "고객들은 가구거리를 둘러보면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과 똑같지 않고 비슷하기만 하더라도 가격이 더 싼 매장에서 가구를 구입한다"며 "독특한 디자인이 없는 중소 가구점의 경우 가격이 조금이라도 싸야지만 고객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객 유인에는 할인만한 특효약이 없다는 얘기다.
 
마케팅에서 판매와 할인 간의 관계는 수학 공식인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같다. 여기에는 아주 당연한 인과성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손실을 보지 않는 선에서 할인율이나 할인 기간을 고려한다고 했을 때, 할인을 많이 할수록 판매가 높아진다는 주장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중소 가구업체들이 대형 업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마법의 주문과도 같은 ‘가격 할인 전략’ 때문이었다.
 
◇이케아 상륙에 영세 가구업체들 폐업 고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불과 10Km 남짓한 거리에 이케아의 상륙이 3개월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케아는 국내 진출 이전부터 엄청난 소용돌이를 몰고 있다. 20~30대 감성을 자극하는 차별화된 디자인에 획기적으로 낮은 가격, 또 세계 최대 수준의 대형매장은 소비자들을 일순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이란 우려다.   
 
가구거리에서 만난 업체 대표들은 하나같이 “이케아만 생각하면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축제를 맞이한 매출 증대에 대한 기대와 기쁨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 정도로 자본력이 극도로 취약한 이들에게는 이케아는 공포 자체였다.
 
◇'신바람 가구축제'가 진행 중인 광명가구거리 모습.(사진=뉴스토마토)
 
특히 이케아가 표방하는 저가 전략으로 인해 그간 중소 업체들을 버티게 해줬던 사실상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었던 가격 경쟁력을 설 자리를 잃게 됐다. 가장 큰 경쟁 비교우위를 잃게 되면서 이들은 폐업도 고민하고 있다. 설사 이케아에 대적하느라 가격을 낮춘다 한들 이는 출혈경쟁만을 부추길 뿐이라 차라리 장사를 접는 게 낫다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일각에서는 이케아의 운송비, 조립비, 설치비를 합치면 가격이 결코 싸지 않다고 말하지만, 국내 가구시장을 이미 파악한 이케아는 여타 진출 국가에서 진행해왔던 전례를 따라 가장 낮은 가격으로 승부를 겨룰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케아는 9500여개의 제품을 취급하는 스웨덴 가구업체이지만, 스웨덴에서 제작되는 가구는 채 10%도 되질 않는다.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저임금 국가에 대규모 공장을 세워 제품을 제작하고 있다. 이케아 제품의 5분의 1 가량은 중국에서 만들어진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격을 낮추고 값싼 가격으로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처럼 가격경쟁력 면에서 국내 대부분의 가구업체는 이케아에 대항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나마 고가의 프리미엄 전략으로 타깃층을 달리 하는 국내 대형 가구업체 사정은 낫다. 반면 영세 중소 가구업체들은 이케아의 저가 전략에 뾰족한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광명가구거리 C가구점 사장은 "이케아가 들어오면 가구시장은 전쟁터가 될 것"이라며 "대형 가구사들은 매장도 키우고 고객서비스도 차별화하고 있지만 우리 같은 작은 가구점은 총 없이 전쟁터에 나갈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자본의 공포와 현실의 벽에 부딪힌 영세한 중소 가구업체들은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상봉 광명시 가구유통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박리다매식 경영을 하는 이케아로 인해 영세한 국내 제조, 유통, 판매 업체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이는 골목상권 보호와도 상충되기 때문에 이케아에 대해 정상 판매를 권고하는 등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영세상인을 보호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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