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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휘질기의
2013-11-14 18:04:22 2013-11-14 18:07:59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유럽 방문에서 국민들의 뇌리에 가장 크게 기억된 사람은 박 대통령이 아니고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일 것 같다. 
 
김 의원이 프랑스에서 박 대통령 반대시위를 벌인 사람들에게 '정치적 동네북'이 된 통합진보당원'의 올가미를 씌우고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공언한 이후 파장이 확대되면서 박 대통령이 순방에서 뭘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영국에서 흐렸던 날씨가 맑아질 정도로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는 것 정도가 그나마 생각난다.
 
해외에서 태극기만 봐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삼성과 현대차 같은 한국 대기업의 광고판만 봐도 사람들은 일순 뿌듯해 지기도 한다.
 
김 의원이 주군인 박 대통령을 모시고 자랑스런 유럽 순방길에 나서는데 고춧가루를 확 뿌려버린 행태에 대해 분기탱천한 것도 언뜻 이해는 간다.
 
그러나 뭉클해지는 가슴과 뿌듯한 마음은 나라가 자랑스러워야 생기기 마련이다. 삼성 엘지 현대차가 불량제품으로 욕을 먹고 있다면 그때도 그 회사 광고를 보고 가슴뭉클해질 것인가 말이다.
 
국내 정치상황을 들여다 보면 박 대통령을 보고 뿌듯할 사람이 있는 반면, 그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많다. 김 의원은 우선 이것부터 인정을 해야 한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공안파트에서 한자락씩 하던 사람들이 온통 대통령 주위를 휘감고 있다. 그리고 나라가 온통 종북 논란에 휩싸여 있다.
 
누구는 종북, 저 단체는 종북, 심지어 특정지역이 통째로 종북으로 몰리기도 한다.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초기 수사를 맡았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과장에게 광주 경찰이냐 대한민국 경찰이냐고 윽박지른 사건은 나라가 얼마나 쪼개져 가는 지를 단적으로 나타내준다.
 
국민대통합을 주요공약으로 내건 박 대통령이기에 허탈감은 더욱 크다.
 
선거 과정에서 야심차게 내걸었던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지금 어디서 뭘하고 있는 지조차 알 수가 없다. 계속 이렇게 가다간 나라가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완전히 쪼개지는 건 시간 문제다.
 
이 시점에서 '내재적 접근법'을 한번 떠올려 보자. 우선 박 대통령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렇다.
 
박 대통령은 본인이 가장 기분 나빠하는 부분을 뭔지를 짐작하게 할 수 있는 말을 한적이 있다. 그는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의 국회회담에서 '내가 댓글 때문에 대통령이 됐다고 생각하는 거냐'고 언성을 높여가며 말했다.
 
이 발언으로 미뤄볼때 대통령과 여당의 분노는 댓글 때문에 대통령이 된 게 아닌데 그걸 갖고 정통성을 흔들어 댄다고 생각하는 데서 근원적으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대선불복' '대통령 불인정' 등으로 맞대응이 거세지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이 국정원과 군의 댓글공작 때문에 대통령이 된 건지는 아마 어떤 과학적 수사기법을 동원한다고 해도 확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유권자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한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박 대통령과 대선에서 맞섰던 문재인 의원을 비롯해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내거는 것은 대선 재실시 같은, 판을 뒤집자는 게 아니다. 그 사람들이 애초에 원했던 것은 실체적 진실과 재발방지책이다.
 
사실 문제가 불거진 초기에 이것만 해결이 됐으면 지금의 국정원 논란은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다.
 
길어야 한달 내에 끝낼 수 있는 정치적 논란을, 수사중이던 검찰총장을 쫓아내고 수사팀장을 바꿔가면서 의혹을 더 눈덩이처럼 키웠다. 진실을 밝혀야 할게 계속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부자가 돈 조금 도둑맞았어도 그것 때문에 가난뱅이가 되지 않았으면 그 도둑은 무죄인가. 도둑을 같이 잡으면 되지 왜 그 도둑을 감싸는가. 도둑 잡겠다고 나선 수사팀을 왜 핍박하는가. '이제보니 사실은 자작극인 거 아니냐'는 의심을 왜 자초하는가.
 
중국 춘추시대 채나라에 편작이라는 명의가 있었다.
 
채나라의 환공을 보고 피부병을 치료하라고 권했지만 듣지 않았다. 열흘 후 다시 환공을 만나서 병이 속살까지 번졌다고 했지만 이때도 환공은 듣지 않았다.
 
다시 그를 만나 내장 깊숙이 번졌으니 이제 치료하지 않으면 죽게된다 했지만 환공은 아픈데가 전혀 없다며 또 무시했다.
 
그러나 그뒤 얼마 지나지 않아 채환공은 병이 돌이킬수 없게 되어 그만 죽고 말았다. 송나라 주돈이의 '주자통서'에 나오는 '휘질기의'의 고사다.
 
박 대통령은 이제라도 진실을 밝히고 재발방지책을 내놓으면 사태는 더이상 상처내지 않고 정리될 수 있다.
 
결과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고 과정이 잘못됐다는 건데 이를 결과를 뒤집자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대통합'은 비로소 이것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이호석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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