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악화에 따른 기업 부실을 털어내고 시중자금의 원활한 흐름을 위한 구조조정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과 은행 모두 칼자루를 제대로 휘두르지 못해 구조조정의 강도와 속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업의 옥석 구분이 명확히 이뤄지지 않아 부실이 커지면 침체의 골이 깊어지는 경제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 작업을 채권금융기관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거나 조정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 1차 구조조정부터 진통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최근 111개 건설.조선사에 대해 처음으로 신용위험을 평가해 2곳을 퇴출시키고 14곳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집어넣기로 결정했지만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구조조정의 총대를 은행권에 넘기면서 예견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구조조정 대상이 늘어날수록 대출 부실과 충당금 적립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또한 구조조정의 목적을 선제적인 부실 정리보다는 기업 살리기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구조조정이 퇴출과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구조조정의 본래 취지가 기업 살리기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 회생 지원도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워크아웃이 기업을 살리려는 것이라는 금융당국의 설명과 달리 일부 은행은 워크아웃 대상을 선정하자마자 예금을 동결하고 법인카드의 사용을 중지시켜 해당 기업의 반발을 샀다.
대동종합건설의 경우 워크아웃 대상인 C등급을 받았지만 채권 은행들의 자금 지원 거부로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조선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은 선수금 환급 보증(RG) 보험 문제로 잡음을 내고 있다.
녹봉조선은 워크아웃에 들어갔지만 첫 채권단협의회에서 주채권 은행인 신한은행과 RG 보험을 보유한 동부화재가 신규 자금 지원을 놓고 대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은 동부화재에 RG 보험을 포함한 채권 비율에 따라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한 반면 동부화재는 RG 보험은 보험일 뿐 채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로 C&중공업은 이미 워크아웃이 무산됐다.
은행 관계자는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자금 지원을 놓고 채권단 내에서 서로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입장이 강해 C등급 기업의 처리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조정의 지휘소로 기대를 모았던 채권금융기관조정위원회는 아직 수면 아래에 있다. 조정위 관계자는 "아직 채권단의 조정 신청은 들어오지 않았다"며 "채권단의 이견 조율 이외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 구조조정 험로.."정부 역할 중요"
앞으로 채권단이 98개의 건설.조선사를 대상으로 2차 구조조정을 할 예정이지만 1차 구조조정에서 보듯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중 건설.조선사의 경우 경기 침체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고 있어 구조조정 대상이 많을 것으로 보이지만 개별 기업의 규모가 워낙 작아 그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들은 2008 회계연도 재무제표가 확정되는 3월부터 전체 거래기업에 대해 정기 신용위험을 평가해 6월 말까지 옥석을 가린다.
하지만 은행별 자체 기준에 따른 평가인 데다 그 결과가 서로 엇갈리면 처리 방안을 놓고 논란이 생기는 것은 물론 해당 기업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 은행들이 구조조정 대상을 적극적으로 가려낼지도 지켜봐야 한다.
은행 관계자는 "제대로 평가가 이뤄지면 구조조정 효과를 크게 낼 수 있겠지만 은행 스스로 어느 정도로 부실기업을 선정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은행들이 구조조정의 명분과 당장 눈앞에 닥칠 손실 사이에서 고민하며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1분기에 경제가 어려워지면 은행과 금융감독원이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냉정하고 과감하게 하지 않겠느냐, 해야되지 않겠느냐"고 말함에 따라 정부와 금융당국이 구조조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은행이 거래 기업의 상황을 가장 잘 알지만 손해 볼 위험을 감수하면서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기 어려운 딜레마가 있다"며 "은행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라 정부가 지침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이두원 교수는 "칼자루를 쥔 은행이 미적거리고 있어 정부가 개입하는 수밖에 없다"며 "이러다 살아날 기업을 지원할 타이밍을 놓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이지순 교수 또한 "정부가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며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면서 해고를 하지 말라든가, 기업을 망하지 않게 하라든가 등 상충하는 주문을 동시에 해서 헷갈리게 하면 안 되고 어느 정도 선까지 부실을 털어내자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외환위기 때처럼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일률적인 구조조정이나 정부 개입이 쉽지 않다"며 "다만 부실징후기업과 부실기업은 채권단이 적극적으로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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