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 "증권사, 투자자 횡령 책임 없어"
보령메디앙스, 증권사 상대 50억대 소송 패소
2009-01-28 06:30:55 2009-01-28 06:30:55
회사 자금을 관리하는 직원이 수입에 비해 거액을 투자하는 것을 금융기관이 인지했더라도 횡령에 대한 배상책임이 없다는 고법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합의10부(박철 부장판사)는 화장품과 의약품 제조ㆍ판매업체인 보령메디앙스가 대우증권과 대신증권을 상대로 각각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모두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28일 밝혔다.
 
보령메디앙스에서 자금관리를 담당하던 김모씨는 2002∼2003년 회사 은행계좌의 PC뱅킹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이용해 각각 56억 원과 19억5000만 원을 두 증권사에 개설된 자신의 주식거래 계좌로 이체, 횡령했다.
 
그는 이 돈으로 주식거래를 하면서 생긴 미수금 채무를 갚거나 선물ㆍ옵션투자를 하다 대부분 잃게 됐다.
 
거래 과정에서 대우증권은 `위험한 투자를 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취지로 자문했고 계좌 입출 내역을 조회해 일부 돈의 입금자가 보령메디앙스로 돼 있다는 점을 확인했으며 김씨의 계좌를 유의계좌로 선정했다.
 
대신증권 측 담당자는 그가 무리하게 고액 투자를 하는 것에 대해 감사실에 문의하기도 했지만 `불법 계좌가 아니고 작전에 의해 투자하는 것이 아니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다.
 
김씨는 범행이 들통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기소돼 징역 5년 형이 확정됐다.
 
피해액 일부밖에 회수하지 못한 보령메디앙스는 "김씨가 횡령한 돈으로 투자한 사실을 알 수 있었음에도 금융정보분석원장에게 보고하는 등 법에 정해진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모두 54억 원을 배상하라고 두 증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김씨 계좌에 입금된 돈이 횡령 자금이라는 점을 의심할만한 충분한 정황이 있었고 이를 회사에 알려 확인할 주의의무가 있었는데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며 증권사의 책임을 30∼40% 인정했다.
 
그러나 2심은 금융거래의 복잡ㆍ다양한 특성을 감안해 증권사의 책임 유무를 더욱 엄격히 판단했다.
 
재판부는 "금융기관이 계좌를 이용한 범죄를 인지하거나 이를 의심할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사실 여부를 확인하거나 수사기관에 알려야 하지만 김씨 직업과 수입에 비춰 거액이 여러 차례 입금됐다는 점만으로 범죄행위를 인지했거나 의심할만한 합리적 사정이 있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김씨 계좌를 유의계좌로 정하거나 감사실에 문의한 것은 불법 자금 여부를 의심해서가 아니라 투자 손실에 대한 책임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이며 대신증권은 회사 계좌에서 거액이 입금됐다고 보령메디앙스에 통보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인터넷 뱅킹 등 직원을 거치지 않는 다양한 거래 내역을 파악하기에는 많은 시간ㆍ비용이 소요되는 반면 거래 수수료는 소액인 점을 고려해 볼 때 일단 적법하게 개설된 계좌에 대해 금융기관이 범죄수익이 입출금되는지 감시할 일반적 주의의무까지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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