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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집권 자민당 “엔고시대 끝낸다”..韓수출기업 '비상'
“대대적 양적완화, 우리기업에 타격 불가피”
자동차·부품·조선·철강 등 전분야 수출채산성 악화 예상
2012-12-17 17:24:08 2012-12-17 17:26:13
[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지난 16일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이 정권교체에 성공하면서 일본 정부가 금융 완화를 통한 대대적인 경기부양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경기침체의 늪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으로서는 시장에 돈을 뿌리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인 셈이다.
 
이번 자민당 정권에서 '무제한 양적완화' 공약이 실현될 경우 일본 산업계의 숙원이었던 엔고 현상 해소가 이뤄져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확보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우리나라 수출기업들에게는 일대 타격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는 이유다.
 
국내 재계 전문가들은 17일 자민당 집권에 대해 "우리로서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양적완화를 통해 엔화가 약세를 보일 경우, 세계 시장에서 일본 기업과 경쟁구도를 나타내고 있는 자동차, 부품, 조선, 철강 등 전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의 수출채산성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일본 경제의 번영을 이끌었던 자동차 업종에서도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이 확실시됨에 따라 국내 완성차 업계를 비롯한 자동차부품사들의 수출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아울러 극우 정권 특유의 강경한 외교정책이 초래할 주변국 반발과 국제관계 악화도 우리기업의 수출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日 양적완화, 국내 완성차·부품·철강업계에 직격타
 
자민당 정부는 일본은행과 협조를 통한 통화량 확대, 엔고를 종식시키기 위한 시장개입 등 양적완화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물론 장기간에 걸쳐 엔화 강세가 이어진 점을 고려할 때 엔화 약세가 단기간 내에 우리 수출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지난 90년대에 비해 우리 제품과 일본 제품의 품질 격차가 상당히 좁혀졌고, 한·일 기업 모두 해외 생산을 확대해 환율 변동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졌다는 점에서 양적완화의 악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문제는 최근 엔화 약세와 함께 원화 강세가 동시에 진행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엔저-원고’ 현상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경우 세계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수출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일본 정부는 자국의 주력산업이나 다름없는 자동차 업종과 관련해서는 강력한 개입을 통해 경쟁력 강화를 직접 이끌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엔화 가치 하락을 기반으로 일본 자동차 및 부품의 가격경쟁력이 상승하면서 도요타, 스즈키 등과 경쟁하고 있는 현대차(005380)에게는 직접적인 악재가 될 전망이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엔화 약세와 자동차산업 영향' 보고서에서 원·엔 환율이 10% 하락하면 한국 자동차 수출액이 연간 12% 가량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자동차 수출액 453억달러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연간 수출액이 54억달러 넘게 줄어드는 셈이다.
 
엔화약세는 완성차뿐만 아니라 국내 자동차부품업체들에게도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엔화 하락과 더불어 일본정부가 설비 투자 확대와 내수 강화에 나설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도요타, 스즈키 등 일본 주요 자동차기업의 외국산 부품 조달률은 갈수록 낮아질 전망이다.
 
철강업계는 일본 정부의 설비투자 확대에 힘입어 산업기계 등 제조업 분야에서 일부 수요가 확대될 가능성은 있지만, 엔저 기조로 주도할 무제한 금융완화 정책이 지속된다면 포스코 등 국내 철강기업의 수출채산성이 크게 하락할 것으로 관측된다.
 
IT, 기계, 전기전자 등 주요 업종들도 급격한 경쟁력 하락이 예상된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 한동안 한국 제품 조달이 상승세에 있었지만 최근 원화강세와 맞물려 한국 기업들의 수출이 큰 폭으로 줄어들 우려가 크다.
 
◇안색 어두운 국내 기업들.."한일, 경제·정치적 장벽 높아진다"
 
당초 민주당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와 한중일 FTA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자민당은 무제한적 관세철폐를 전제로 한 TPP는 반대한다는 입장이어서 경제협정 체결이 사실상 어려워진 상황이다.
 
또 한중일 FTA 추진도 기약 없이 지체될 공산이 크다. KOTRA 관계자는 "최근 일본종합연구소,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 등 민간 싱크탱크를 접촉한 결과, 자민당이 TPP에 부정적이고 적극적이지 않아 빠른 시일 내에 추진은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보수성향의 자민당 집권으로 일본은 과거사 문제, 영토문제 등 현안이 산적한 외교분야에서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돼, 주변국과의 마찰이 더욱 커지면서 올해 중국 등과의 갈등이 재연되거나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
 
주변국과 갈등이 고조될 경우, 경제 분야에도 일정부분 영향이 파급될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 일본은 올해 9월 중국과의 영토분쟁 당시 중국인 관광객 감소와 중국내 일본상품 불매운동으로 인적·물적 교류에서 피해를 경험한 바 있다.
 
반면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자민당 집권이 오히려 긍정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KOTRA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이번 자민당 집권이 "공공투자 확대에 따른 산업 활성화로 한국기업 진출 기회 확대와 금융완화로 일본 경제회복에 따른 소비수요 확대가 국내 산업계에 호재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여기에 엔저로 인한 대일직접투자 코스트 하락도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기업들의 안색은 어둡다. 중소기업계의 한 관계자는 "양적완화가 시행돼도 기본적으로 '갈라파고스'라는 별칭을 가진 일본 경제 특유의 성향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국내 전기, 전자, IT 등 국내 주요 업종 기업들이 봤을 때 일본은 그다지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일본 정부의 대대적인 공공 및 설비투자 확대 정책 또한 국내 기업들에게 기회가 되긴 어렵다는 반응이다. 정치적으로 보수적 입장인 자민당이 집권하는 만큼 해외기업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윤철민 대한상공회의소 아주협력 팀장은 "오래전부터 많은 한국 기업들이 일본 공공 조달시장에 도전한 바 있지만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며 "게다가 극우정당이 집권했는데 내수시장 활성화를 위한 보호 장치가 없으리라고 기대하는 건 순진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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