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어디로든 흘러가는 공연, 부산을 담다
'LIG아트홀 부산' 기획공연 <다페르튜토 부산>
반짝이는 아이디어 돋보여..지역과 피상적 관계맺는 데 그친 점은 아쉬워
2012-11-25 17:38:23 2012-11-25 17:46:56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몰두하는 연극이 있는가 하면, 관객의 사고가 깨어 있도록 무대와 관객 사이의 거리를 일부러 벌려 놓는 연극이 있다. 전자는 전통적 의미의 연극이고, 후자는 소위 말하는 서사극의 방식을 활용하는 연극이다. 극단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의 연극 <다페르튜토 부산>은 후자에 가깝다.
 
꽉 짜여진 극, 만듦새가 단단한 극을 기대했다면 아쉬움이 물밀듯 몰려 올 수 있다. 그러나 실망하기엔 이르다.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의 극은 각자의 취향에는 맞지 않을 수 있으나 적어도 관객의 뇌세포를 간질이는 정도는 된다. 그렇다고 해서 어려운 얘기를 꺼내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공연은 아니다. 극은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되, 관객이 극장적 환영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고 주위를 환기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다페르튜토 부산>은 'LIG아트홀 부산'의 기획 공연이다. 지난 여름, 극장 측은 '연극이 관객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방법'을 두 단체에 물었다. 그에 대한 답으로 부산을 기반으로 하는 극단 '팻브릿지'는 <생존의 법칙>을, 서울을 기반으로 하는 단체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는 <다페르튜토 부산>을 내놨다. 두 작품은 올 하반기에 차례로 'LIG아트홀 부산'에서 관객을 만났다.
 
이중 지난 22~24일까지 공연한 연극 <다페르튜토 부산>을 관람했다. 기존 작품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의 부산 버전인 <다페르튜토 부산>은 일종의 지역연극적 성격을 띄고 있다. 비록 거리에서 공연을 하지는 않았지만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 관객과 소통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앞서 '소통을 위해 관객과 같은 고민을 품어야 한다'는 답을 내놓은 부산 극단 '팻브리지'의 경우와도 약간의 노선 차이가 있다. 공연을 하는 지역과 모종의 관계를 맺는 것, 이것이 관객과 효과적으로 만나는 방법에 대해 '다페르튜토'가 내놓은 답인 셈이다.
 
이번 작품에서 극단은 '유령의 집', '암세포 삼형제', 'QR극장', '내일 자살해야지' 등 총 4가지 소품들을 옴니버스식으로 선보였다. 첫번째로 선보인 '유령의 집'의 경우 공연팀이 부산지역 관객과 처음 관계를 맺기 위해 만든, 인트로 성격을 띄는 공연이다.
 
핑크색 천이 넓게 깔린 바닥에 가면을 쓴 배우 한 명이 등을 돌리고 앉아 금속 사발에 막대를 굴리며 소리를 낸다. 기묘한 풍경 속에 이윽고 안내인의 손에 이끌려 관객이 한 명씩 극장으로 들어온다. 영문도 모른 채 이끌려 들어온 관객 6명은 백남준 가면을 쓴 배우 앞에 앉아 술을 한 잔씩 나눠 마시고 미션이 적힌 종이쪽지와 함께 오드리 햅번, 찰리 채플린, 노무현, 알버트 아인슈타인,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 등의 가면을 받는다. 그리고서 가면을 쓴 채 (당황스럽게도) 아이엠그라운드 게임을 한다.
 
진지한 눈초리로 이들을 지켜보던 나머지 관객들은 게임이 진행되면서 '죽지 않으려 애를 써 보지만 결국엔 한 명씩 죽어나가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공연은 대체로 희극적인 분위기로 흘러가지만 부산과 인연이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장 대목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극장 안에 씁쓸한 기운이 감돈다.
  
이어지는 공연 중 '암세포 삼형제'와 'QR극장'은 부산이라는 대도시와 공연팀의 관계맺기에 영상이라는 매개체를 적극 활용해 눈길을 끌었다. 무대 뒤편 큰 스크린에 투사되는 영상에는 부산의 거리와 사람들이 빚어낸 풍경, 그리고 공연의 지시문과도 같은 텍스트가 담긴다. 
 
'암세포 삼형제'에서는 관객 중 한 여자와 사랑에 빠져 그녀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는 막내 동생을 찾아 바다를 건너오는 형제들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배우 중 두 명이 아예 극장 바깥에서부터 등장한다. 이 모습은 비디오 카메라를 통해 스크린에 실시간 중계된다. 얼굴에 흰색 칠을 하고 무사 복장을 한 배우들이 거리에서 방황하면서 시민들과 실시간으로 관계를 맺는 모습이 무척 흥미롭다. 연출이 스크린에 적어내려가는 텍스트를 보며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의 모습도 극의 현장감을 살리는데 일조한다.
 
'QR극장'은 여러 작품 중 가장 지역을 의식하고 만든 공연이었다. 극장 곳곳의 QR코드 속에는 추억의 장소에 관한 부산 시민들의 인터뷰 모습, 그리고 그곳에 직접 찾아가는 배우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관객들은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고 극장에서 영상을 감상한다. 동래고 앞 태화반점, 암남공원 첫 키스 장소, 자갈치 시장 부둣가 등 약 80개의 공간과 배우들의 퍼포먼스가 관객의 손 안에서 펼쳐진다.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영상과 연극의 경계를 아슬하게 지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공연팀이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 중에는 그저 단순한 방문에 그친 장면이 많았다.
 
마지막 공연인 '내일 자살해야지'에서는 거울을 보며 면도를 하다가 문득 '내일 자살해야지'라고 말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희극적으로 그려진다. 배우들은 관객석 쪽을 거울로 삼아 연기를 하다가 급기야 마주보며 서로의 모습을 복제한다. 마지막에 어린이 한 명까지 합세해 서로의 모습을 무한 복제하다가 공연은 막을 내린다. 공연 자체는 흥미로웠지만 극단이 예전에 만든 작품에다 부산 출신 어린이를 등장시켰다는 이유로 '다페르튜토 부산'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다소 민망했다.
  
부산지역과의 첫 대면인만큼 공연팀이 억지로 꾸민 거짓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지역에 대해 아는 만큼, 본 만큼 담백하게 풀어낸 점은 칭찬 받을만 하다. 극단의 이름이자 공연제목인 '다페르튜토(Dappertutto)'처럼 극단의 정체성을 해하지 않고 '어디로나 흐르는' 공간맞춤형 공연을 선보인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러나 특정 지역의 고민과 문제점, 주장을 담기 보다는 지역민들의 기억을 공유하는 데 머물렀다는 점이 아쉬운 대목으로 남는다. 지리적, 시간적 장벽 탓에 프로덕션을 충실히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저 여기저기 흘러갈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보다는 때로는 잠시 머물렀다 흐를 수 있는 여유가 공연팀에 필요하다. 그래야 관객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연출 적극, 출연 김정화, 박한결, 박형범, 양정윤, 오륭, 드라마터그 변인숙, 아트디렉터 구세주, 무대감독 전진모, 무대 및 영상 디자인 한주원, 이지혜, 조명디자인 강신규, 그래픽디자인 신동혁.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