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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스스로 자초한 ‘부실수사’ 여론 뭇매
"중수부 있어야 거악 척결", 부메랑으로 돌아와
2011-06-23 18:05:29 2011-06-24 09:23:07

[뉴스토마토 권순욱, 김미애기자] 대검찰청 중수부(김홍일 검사장) 부산저축은행그룹 비리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 여론의 비판이 거세다. 하지만 이같은 비판은 검찰 스스로 자초했다는 평가다. 

검찰이 애시당초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매개로 대검 중수부 존치를 위해 '거악'을 운운하며 여론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 걸맞는 수사결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순간 여론의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는 점은 이미 오래전에 경고하기도 했다.(▶관련기사 6월 7일자 호랑이 등에 올라탄 청와대 ) 

◇ 여야 국회의원들의 '거악 폭로'와 여론의 의심을 이용한 검찰  

지난 3월 15일 대검 중수부가 저축은행 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면서 세간에서는 7조원대의 경제범죄를 눈감아준 ‘거악(巨惡)’의 실체를 폭로하는 의혹들이 제기됐다. 

참여정부가 등장하고,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인사들이 거론되기도 했다. 국회에서도 여야가 폭로전을 펼쳤고, 언론에서도 연일 '친분관계'를 파헤치면서 '거악'의 존재를 암시하기도 했다. 

대검 중수부는 부산저축은행 수사과정에서 이같은 내용을 언급한 적은 없다. 그러나 여론의 기대치를 이용하는 언론플레이를 펼쳤다. 

지난 6일 김준규 검찰총장은 성명을 통해 중수부 폐지 논의와 관련, “상륙작전을 시도하는 해병대를 해체하는 꼴이다. 작은 부패는 처벌하고 커다란 부패는 지나쳐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며 부산저축은행그룹 비리 사건 수사가 ‘거악의 종착지’에 다다랐음을 암시했다. 

이후 ‘저축은행 수사를 중단시켜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청와대가 여야 합의에 반대의사를 표명, 중수부 폐지 논의는 국민의 반대에 밀려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 21일 저축은행 특혜인출 로비에 금융기관 수뇌부와 전·현직 의원,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개입했다는 연루설에 대해 ‘실체가 없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검찰이 정치권의 중수부 폐지 합의에 반발하며 저축은행 비리의 거악을 척결하기 위해선 중수부의 존재가 불가피하다고 여론에 호소하던 기존 입장과는 대비된다.  

◇ "거악은 없었다"는 검찰, "거악은 있을 것"이라는 상식

그동안 검찰 수사 결과, 대검 중수부의 존재 이유를 말해주는 '거물급 정관계 인사'는 사실 미미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의혹이 제기됐던 인사들 가운데 사법처리 수순을 밟고 있는 숫자도 사실상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과 김해수 전 청와대 비서관,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 원장 정도에 불과하다.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 관련 의혹이 제기된 정관계 인사와 의혹 내용> 
부산저축은행그룹 금융브로커 윤여성(56·구속)
2007년 부산저축은행의 SPC인 (주)효성도시개발이 추진 중이던 인천 계양구 효성동의 도시개발 사업과 관련해 150억원에 사업권 양수계약을 성사시키며 시행사인 T사 대표 김모씨로부터 15억원을 받은 혐의, 정·관계에 부산저축은행 퇴출저지 로비를 벌인 의혹 등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50·구속기소)
금융브로커 윤여성씨로부터 ‘김종창 금감원장에게 부탁해 검사 강도와 제재수준을 완화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총 1억7000만원을 받은 혐의
박형선 해동건설 회장(59·구속기소)

박연호(61·구속기소) 부산저축은행그룹 회장 등과 공모해 경기도 시흥시 영각사 납골당 사업 명목으로 1280억여원의 불법 대출에 관여한 혐의, 부산저축은행이 뛰어든 대전 서구 관저4지구 개발사업 추진 과정에서 법인 자금 9억여원을 빼돌린 혐의 등

김해수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53·한국건설관리공사 사장·사전구속영장청구)

정무비서관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부산저축은행그룹이 추진하던 인천 효성지구 개발사업과 관련, 인허가 청탁과 함께 금융브로커 윤씨에게서 2000만원을 수수한 혐의, 2008년 18대 총선에 한나라당 후보(인천 계양갑)로 출마하면서 부산저축은행그룹 측에서 6000여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63·참고인)
평소 친분이 있는 은 전 감사위원을 통해 부산저축은행그룹에 대한 검사 강도와 제재 수준을 완화해달라는 청탁을 받았다는 의혹, 금감원장에 취임하기 직전 모두 매각했다던 부인 명의의 아시아신탁 주식이 실제로는 서울대 동문인 사업가 박모씨에게 명의신탁해 차명 보유한 정황도 드러남
서갑원 전 민주당 의원(49·의혹만 제기)
김양(59·구속기소) 부산저축은행그룹 부회장으로부터 2008년 10월 전남 순천시의 박형선(59·구속) 해동건설 회장 별장 앞에서 3000만원이 든 쇼핑백을 전달받았다는 의혹
정선태 법제처장(55·의혹만 제기) 금융브로커 윤여성씨로부터 2007년 서울고검 검사로 재직하던 시절 사건청탁 명목으로 1000만원을 전달받았다는 의혹
 
결국 검찰은 "거악이 있을 것"이라는 세간의 상식과 국회 여야 의원들의 검증되지 않은 무차별적인 폭로에 힘입어 대검 중수부 존치라는 결과물만 획득한 채 초라한 수사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특혜인출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고위공직자 연루설에 대해 검찰이 “못 밝혀낸 게 아니라 ‘없다’고 밝혀낸 것”이라며 “없는 사실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출신의 모 변호사는 "검찰 발표가 진실에 부합할 가능성이 크다"며 "문제는 일반인의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국회의원들과 언론의 갖가지 의혹 제기에 편승해 마치 거악이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못 밝혀낸 게 아니라 ‘없다’고 밝혀낸 것"는 검찰 발표가 진실에 부합할 수는 있겠지만, 그동안 기대치를 부풀린 책임은 피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 중수부 체면 위해 정·관계 로비 밝혀내나?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에 대한 대검 중수부의 수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 ▲특수목적법인(SPC)과 연관된 ‘불법 대출’ ▲특혜인출 의혹  ▲퇴출저지를 위한 정관계 로비 등 3대 의혹 가운데 이제 두 개를 마무리지었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정관계 로비 의혹은 향후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대어'가 걸려나올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국회의 국정조사가 시작된다. 한나라당 이명규 원내수석부대표와 민주당 노영민 원내수석부대표는 23일 '저축은행 비리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국정조사 대상은 ▲부실 저축은행 예금자 및 후순위채 투자자 피해 ▲정부의 부실 저축은행 예금자 및 후순위채 투자자 피해대책 ▲부실 저축은행 대주주 및 임직원 등의 은닉재산 및 범죄수익 환수 추진계획 ▲부산 저축은행 등 7개 저축은행 영업정지 전 사전 정보유출 및 인출 경위와 조치상황 ▲저축은행 감독 부실을 초래한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및 금융감독원 등의 정책결정 경위 및 조치상황 ▲감사원과 금융감독원의 제2금융권 감독실태 감사경위와 조치상황 ▲저축은행 관련 금융정책, 금융감독정책 및 감사 관련 당사자의 책임소재 규명 등 감독 당국의 문제점 등이다.
 
국회의 국정조사와 맞물려 가는 대검 중수부의 정관계 로비 수사가 어떤 결과를 낼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뉴스토마토 권순욱 기자 kwonsw87@etomato.com
김미애 기자 jiir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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