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경영을 찾아서)빌파리지 부인의 살롱: 그린워싱과 ESG 카르텔의 해체[윤리]
14 / 관계의 총체성으로 쓰는 프루스트의 비즈니스 서사
2026-05-15 14:11:25 2026-05-15 14:11:25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제3권 '게르망트 쪽'의 중심무대 중 하나는 빌파리지 부인의 살롱이다. 이곳은 몰락해가는 귀족 계급과 부상하는 부르주아, 그리고 지식인이 뒤섞여 고도의 정치적·사회적 수싸움을 벌이는 공간이다. 세련된 교양과 예술적 취향으로 무장한 빌파리지 부인은 소설에서 '무장'과 상반되게 가문의 위신을 지키기 위한 위선과 타자에 대한 배척으로 일관한다. 살롱의 화려한 대화 속에서 진정한 지적 탐구보다는 '누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와 같은 사회적 위계를 확인하려는 욕망이 꿈틀댄다.
 
"빌파리지 부인의 살롱에서 오가는 대화들은 겉보기에 매우 고상하고 도덕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들이 쏟아내는 미사여구는 사실 그들만의 폐쇄적인 집단을 공고히 하고, 자신들이 여전히 세상의 중심임을 확인받기 위한 방어기제에 불과했다. 그들은 예술과 정의를 논했지만, 그것은 실천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우아한 권위를 장식해 줄 화려한 소품일 뿐이었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재구성)
 
소설 속 살롱의 모습은 오늘날 현대 기업이 앞다투어 내세우는 ESG 경영의 풍경과 묘하게 겹친다. 세련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와 화려한 에코 로고 이면에, 실질적인 변화보다는 이미지 세탁을 위한 그린워싱과 그들만의 평가 지표를 주고받는 'ESG 카르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문장 뒤에 숨은 실체의 실종
 
경영학에서 그린워싱은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의 환경적 속성을 실제보다 과장하거나 왜곡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프루스트가 살롱의 대화를 '실행 없는 문체'라고 비판했듯, 현대의 그린워싱은 진정성 자산을 탕진하는 치명적인 독이 되어 결국 기업을 파멸로 이끈다.
 
2015년 발생한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는 그 전형이다. 폭스바겐은 '클린 디젤'이라는 역설적인 문구로 전 세계 소비자를 기만했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약 1100만대의 차량에 배출가스 저감 장치를 조작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사실이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조사로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폭스바겐은 약 300억~350억달러 이상의 천문학적인 벌금과 배상금을 지불했을 뿐 아니라, 독일 자동차 산업 전체의 신뢰를 실추시켰다. 이후 경영진이 대폭 교체되고 '전기차 전용 플랫폼(MEB)' 개발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체질 개선에 나섰지만, 실추된 도덕적 권위는 여전히 상흔으로 남아 있다.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당시인 2015년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에 있는 환경보호국(EPA) 저온테스트 실험실에서 폭스바겐 SUV 투아렉 디젤자동차의 배출가스 저감장치에 대한 검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패션계의 거물 H&M 역시 비슷한 논란에 직면했다. 2022년 미국 뉴욕 남부지방법원에 제기된 집단 소송에 따르면 H&M의 '컨셔스(Conscious) 컬렉션' 제품 중 상당수가 일반 제품보다 물을 더 많이 소비하거나 환경에 더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데이터 오용은 지탄을 받았다. 소비자 주권이 이제 기업의 말이 아닌 실증적 데이터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가장 충격적인 파국은 독일의 자산운용사 DWS에서 발생했다. 도이체방크의 자회사인 DWS는 2021년 "운용 자산의 절반 이상에 ESG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고 홍보하며 막대한 투자금을 유치했다. 그러나 전(前) ESG 책임자 데지레 픽슬러의 내부 고발로, 실제로는 일반 투자 프로세스와 다를 바 없는 결정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22년 5월, 독일 검찰과 경찰이 DWS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CEO 아소카 뵈르만은 즉각 사퇴했다. 그린워싱이 과장된 홍보로 관용 받는 시대를 넘어 자본시장의 사기로 처벌받는 시대가 왔음을 입증한 사건이었다.
 
수소 트럭 업계의 테슬라로 불렸던 니콜라(Nikola) 사태는 그린워싱이 아니라 명확한 사기였다. 수소 기술의 실체가 없었음에도 언덕에서 트럭을 굴려 마치 스스로 주행하는 것처럼 연출한 영상은 '친환경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투자자를 현혹한 거대한 사기극이었다. 창업자 트레버 밀턴은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기업 가치는 공중분해되었다.
 
콜린 메이어의 통찰: 이익과 책임 사이의 실존적 질문
 
옥스퍼드 대학의 콜린 메이어 교수는 저서 『Prosperity』(한국어판 제목: 『왜 우리는 기업에 실망하는가 - 이익과 책임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고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법』)를 통해 이러한 위선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메이어 교수는 기업의 목적이 단순히 주주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사람과 지구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빌파리지 살롱의 허위 의식처럼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장식물로 취급하는 것을 경계한다. 메이어 교수의 핵심 통찰은 책임의 실체화에 있다. 그는 이익의 일부를 사후에 기부하는 시혜적 CSR이 아니라, 기업 정관에 사회적 목적을 명시하고 달성하지 못하면 경영진이 법적 책임을 지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책임은 이익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이익을 만드는 방식 그 자체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ESG 카르텔'과 정보의 비대칭성
 
빌파리지 부인의 살롱이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해 외부인을 평가하듯, 현대 자본시장에서도 'ESG 카르텔'이 존재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집계의 혼란(Aggregate Confusion)' 프로젝트는 이 비판을 수치로 증명한다.
 
통계학에서 상관관계 '1'은 두 지표가 완전히 일치함을 뜻한다. 신용평가기관(S&P 무디스 등) 간의 상관관계는 0.99에 달한다. '부도 위험'이라는 측정 대상이 명확하기 때문에 누가 측정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ESG 평가 기관 간의 상관관계는 평균 0.61에 불과하다. 기관마다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를 측정하는 항목과 가중치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점수가 잘 나오는 평가사를 입맛대로 선택하거나, 복잡한 산식 뒤에 숨어 실질적인 혁신 없이도 높은 등급을 받는 등급 세탁이 가능함을 시사한다. 이러한 모순은 2022년 테슬라(Tesla)가 S&P 500 ESG 지수에서 제외되고, 정유사 엑손모빌(ExxonMobil)이 살아남은 사건에서 부각되었다.
 
탄소 배출의 주범인 엑손모빌이 살아남은 이유는 지수 포함 기업 선정 원칙의 하나인 '베스트 인 클래스(Best-in-class)' 전략 때문이다. 이 전략은 정유업 등 특정 산업군에서 상대적으로 우수한 기업을 선정하여 섹터별 비중을 시장 지수와 맞추는 방식이다. 정유업 자체가 환경에 해롭더라도, 그 업종 내에서 탄소 관리 규정을 조금 더 잘 지키면 ESG 지수에 포함될 수 있다는 논리다. 테슬라의 환경(E) 점수는 높았으나, 프리몬트 공장의 인종차별 이슈(S)와 엘론 머스크의 독단적인 의사결정 구조(G)가 지수 편입의 발목을 잡았다. ESG를 고루 반영해야 하는 건 맞지만, 대중의 감각에 그렇다 하더라도 전기차가 빠지고 정유사가 들어가는 게 이상하게 보였다.
 
결국 ESG 지표가 기업의 실질적인 환경 임팩트를 보여주기보다, 시스템 내의 규정 준수 여부만을 따지는 '지배구조의 방패'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게 된다.
 
중대성(Materiality)의 진화
 
그린워싱의 살롱을 빠져나오기 위한 가장 강력한 법적·학술적 도구는 '이중 중대성(Double Materiality)'이다. 이것은 단순히 정보를 더 많이 공개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기업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전복하는 혁명적 개념이다.
 
본래 경영학에서 '중대성(Materiality)'은 투자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재무적 중대(Financial Materiality)를 뜻했다. 기후변화를 예를 들면 그 자체보다 '기후변화가 기업의 이익에 얼마나 해로운가(Outside-in)'를 따지는 단일 중대성만이 존재했다. 하지만 2019년 유럽연합(EU)이 '비재무정보 공시지침(NFRD)' 해설 가이드라인을 통해 이중 중대성 개념을 본격화하고, 이후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CSRD)'에서 제도화하면서 경영의 현실이 된다.
 
이중 중대성은 두 개의 화살표를 동시에 본다. 하나는 외부 환경이 기업 가치에 미치는 재무적 영향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의 경영 활동이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실제적 영향(Impact Materiality, Inside-out)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돈을 버는 데 지장이 없다면 환경 파괴를 숨겨도 된다"는 논리가 원천 봉쇄된다. 기업이 아무리 재무적으로 건실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생태계를 파괴하거나 인권을 침해한다면 그것은 '중대한 정보'로서 반드시 공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를 이끄는 주체는 시민사회에 그치지 않는다. EU 집행위원회와 같은 규제 당국, 기후변화를 시스템 리스크로 인식하기 시작한 글로벌 연기금, 블랙록 같은 대형 자산운용사 등 자본시장의 주류 플레이어가 목소리를 낸다. 그들은 기업의 '민폐'가 결국 지구라는 자산의 가치를 떨어뜨려 장기적인 수익률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이중 중대성은 경영 철학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단일 중대성이 위기 관리의 철학이라면, 이중 중대성은 시스템 책임의 철학이다. 전자가 살롱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흠결을 감추는 전략이라면, 후자는 살롱의 환경을 적절하게 유지하기 위해 밖에서 땔감을 구하고 공기를 정화하는 노동에 가담하는 전략이다.
 
그린워싱은 기업의 신뢰 자산을 스스로 깎아내림으로써 결국 기업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 (이미지=챗GPT)
 
래디컬 투명성: 이중 중대성의 실천적 완성
 
그린워싱에 대한 답으로 제시되는 '급진적 투명성(Radical Transparency)'은 사실 이중 중대성이 실천의 영역으로 진화한 형태라 볼 수 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는 '도트 컬렉터(Dot Collector)'라는 시스템을 통해 모든 회의를 녹음하고 임직원들이 실시간으로 서로의 의견을 평가하게 함으로써 정보의 독점을 타파했다. 파타고니아 역시 공급망 전체의 환경 부하를 가감 없이 공개하며 "우리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고 외친다.
 
급진적 투명성은 필연적으로 이중 중대성에 도달한다. 기업이 내부의 모든 맥락을 투명하게 공개하기 시작하면, 그 정보는 자연스럽게 기업의 재무 상태뿐 아니라 그 활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Double Materiality)까지 드러내게 되기 때문이다. 즉, 급진적 투명성은 이중 중대성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 양식이며, 이중 중대성은 그 투명성이 도달해야 할 목적지인 셈이다.
 
이제 기업은 자발적이든 제도적이든 '살롱의 가면'을 벗어야 한다. 유럽의 CSRD와 공급망 실사법(CSDDD)은 이제 투명성을 법적 의무로 강제하고 있다. 기업은 숨기고 싶은 그림자까지 공시해야 하며, 이것을 어기면 막대한 벌금과 시장 퇴출이라는 실존적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그녀의 말투는 비단처럼 부드웠으나, 그 속에 담긴 것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우아함을 돋보이게 하는 장신구로 삼는 잔인한 무관심이었다. 살롱의 촛불이 환할수록 그늘진 구석의 진실은 더욱 깊이 은폐되었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재구성)
 
[안치용의 Critique: 위선은 진실의 값을 치르지 않는다]
 
빌파리지 부인의 살롱은 세련된 매너가 어떻게 실체 없는 공허함을 가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만일 오늘날 기업들이 내세우는 ESG 슬로건이 이 살롱의 대화와 다를 바 없다면, 그것은 시장의 신뢰라는 가장 기초적인 자본을 탕진하는 행위다.
 
위선은 단기적으로 비용을 절감해주고 이미지를 제고해주지만,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치러야 할 대가는 파멸이라는 마침표로 돌아온다. 프루스트는 인물들의 위선이 시간의 흐름 속에 어떻게 낡아가고 무너지는지를 집요하게 관찰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린워싱이라는 분칠은 시간이 흐르면 갈라지고, 카르텔이라는 성벽은 투명성이라는 빛 앞에서 무너진다. 진정한 지속가능성은 기업의 존재 이유가 세상의 아픔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증명하는 서사에서 탄생한다.
 
안치용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겸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충범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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