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유해물질 직접 안 다뤄도 산재"…페인트공장 '폐암' 산재 인정
35년간 페인트 만든 60대 노동자 '폐암'
페인트 제조 과정서 '1급 발암물질' 노출
근로공단 "하루 1갑씩 30년 흡연이 문제"
법원, '누적 노출량' 주목해 처분 뒤집어
2026-01-19 16:03:27 2026-01-19 16:03:27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35년간 페인트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했던 60대 정모씨는 퇴직 후 폐암에 걸렸습니다. 정씨는 공장에서 일하는 과정에서 1급 발암물질에 노출됐다며 산업재해를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정씨가 유해물질을 직접 취급하지 않았고, 장기간 흡연력이 있단 이유를 들어 산재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반면 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법원은 정씨가 여러 유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점에 주목,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산재 판결을 내렸습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사진=뉴시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 박은지 판사는 최근 페인트공장 생산직이었던 정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정씨는 1986년 4월부터 2021년 5월까지 35년간 페인트공장에서 일하며 생산 공정에 참여했고, 퇴사 직후인 2021년 6월 폐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는 페인트를 제조하는 과정에서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됐었다며 산재를 신청했습니다. 페인트 주원료 중 하나인 안료는 '6가 크롬' 화합물로 구성되고, 이를 가열·용해하는 과정에선 결정형 유리규산 등이 다량 발생합니다. 두 물질 모두 호흡기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1군 발암 물질입니다.
 
그럼에도 근로복지공단은 정씨의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정씨가 장기간 발암 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그가 유해물질을 직접 다루는 공정을 담당하지 않아 노출 수준이 낮았을 것이라고 판단한 겁니다. 근로복지공단은 "페인트 제조의 폐암 유발 요인은 주로 탈크 등의 충전제에서의 결정형 유리규산과 안료에서의 6가 크롬인데, 정씨는 해당 물질을 다루는 공정이 아닌 수지와 용제에 관한 업무를 했다"며 "정씨의 업무에서는 유해물질 노출수준이 낮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습니다.
 
정씨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정씨 손을 들어줬습니다. 박 판사는 "이 사건 상병은 정씨가 6가 크롬 및 결정형 유리규산 등에 노출된 환경에서 업무를 수행해 발병했거나 자연경과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약화됐다고 추단함이 상당하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박 판사는 유해 물질을 직접 취급하지 않았더라도 유해한 환경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박 판사는 "정씨가 유해물질이 상존하는 환경에서 근무한 이상 6가 크롬, 유리규산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정씨가 수행한 수지와 용제 등 업무 과정에서도 여러 유기화합물이나 분진 등에 직접 노출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박 판사는 이어 근로복지공단이 산출한 유해물질 노출량은 불확실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박 판사는 "정씨는 페인트공장에서 일한 35년 중 33년 동안 지역의 한 공장에서 일했는데, 당시 노후화된 시설로 인해 배기장치 등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환기, 집진 장치의 성능 또한 저하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근로복지공단의 작업환경 측정은 정씨가 과거 33년 동안 근무한 군포공장의 환경보다 개선된 것으로 보이는 2019~2020년도 평택공장의 작업환경측결과를 기준으로 이뤄졌으므로 정씨가 과거 근무한 작업환경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박 판사는 “나아가 설령 근로복지공단이 추정한 노출값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그러한 노출 수준이 이 사건 상병의 발병에 전혀 기여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35년 동안의 누적 노출량이나 다수의 유해물질의 복합적 영향이 이 사건 상병의 발병 내지 악화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정씨가 1일 1갑씩 30년 동안 담배를 피웠다는 점도 문제 삼았습니다. 노동환경이 아닌 개인적 사유로 폐암에 걸렸단 겁니다. 
 
그러나 박 판사는 "정씨의 작업환경에서의 여러 유해물질의 노출이 흡연력과 함께 폐암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 누적적으로 작용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적어도 업무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어 "정씨에게 흡연력 등 이 사건 상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킨 다른 요인이 존재했다고 보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업무와 폐암 간의 인과관계를 부정할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씨를 대리한 임채후 변호사는 "노동자는 발암물질이 노출되는 환경에서 근무해 질병이 발생했다고 해도 분쟁절차에서 이에 대한 의학적 상당한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며 "본 사건으로 인해 작업환경이 개선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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