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기술 패권의 경쟁 시대를 맞은 가운데 기업 경쟁력이 기술력 자체에만 머물지 않는 '특허 권리'가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특허출원이 연간 24만건을 넘어서면서 산업 환경의 특허 침해 리스크 관리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특허 리스크를 사전에 점검하는 대표 수단인 '특허 침해 분석(FTO)' 지원 관련 예산은 오히려 줄어드는 등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 마련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19일 지식재산처의 집계를 보면, 특허분쟁 대응전략 지원사업 관련 예산은 2023년 112억5000만원에서 2025년 70억원으로 38% 감소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분쟁 위험도 '상존'…리스크 관리 '핵심'
19일 지식재산처의 통계를 보면, 지식재산의 핵심인 '특허(patent)' 출원 건수는 2024년 기준으로 지난 2018년 20만9992건과 비교해 17.3% 급증했습니다. 지식재산의 핵심인 특허출원을 연도별로 보면, 2020년 22만6759건, 2022년 23만7633건, 2024년에는 24만6245건을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연간 통계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2025년 상반기에만 전년 같은 분기보다 1.6% 증가한 10만9322건에 달합니다. 하지만 양적 성장의 이면에는 '특허침해 분쟁' 위험도 상존합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분석을 보면, 특허침해에 따른 생산 중단·손해배상 리스크는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기업이 상당한 자본을 투입해 개발한 기술, 제품 또는 공정이 타인의 특허권을 침해하게 될 경우 제품의 생산·판매 중단, 막대한 손해배상, 기업 이미지 추락 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대기업보다 중소·중견기업은 법무·지식재산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사후 대응이 어렵고 단 한 번의 분쟁이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혁신 추구 기업이 사업 추진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기술거래, 비즈니스 협력 과정에서 대외적 신뢰도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선제적인 FTO(Freedom to Operate) 분석을 통한 특허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다고 지목합니다.
FTO 분석은 특정 기술이나 제품, 공정을 상업적으로 실시하기 전 제3자의 특허권을 침해하지 않는지를 검토하는 절차를 말합니다. 단순한 특허 검색을 넘어 실제 사업화 기술·특허 청구를 정밀하게 비교·분석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FTO 분석 결과 침해 가능성이 발견되면 기업은 회피 설계, 라이선스 계약 체결, 특허 무효화 검토 등 다양한 전략적 선택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즉, FTO 분석은 '분쟁을 피하기 위한 비용'이 아니라 '사업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투자'에 가까운 셈입니다.
예컨대 바이오산업에서 발생한 기술 계약 분쟁 사례를 보면, 한 코스닥 상장사가 항체 기술 고도화를 위해 해외 기업의 플랫폼 기술을 도입했지만 이후 해당 기술이 제3국 기업의 특허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인지했습니다. 결국 특허 불확실성을 사유로 계약은 해지했고 기술 제공 기업은 신뢰도 하락과 주가 급락이라는 이중의 타격을 입었습니다.
반면 동일 기술을 검토하던 다른 기업은 사전 특허 리스크를 점검하고 우회 전략을 마련해 사업을 이어갔습니다. 이 사례는 기술이전, 인수·합병(M&A) 실사, 공동연구 등 주요 의사결정 단계에서 FTO 분석이 얼마나 중요한 사전 검증 수단인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지난 6일(현지시간) 지식재산처가 중국 베이징 포시즌스호텔에서 '중국 진출기업 지식재산 간담회'를 열고 애로 사항을 청취하고 있다. (사진=지식재산처)
문턱 높은 '분쟁 지원', 제도도 개선해야
정부도 중소·중견기업의 특허분쟁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해 FTO, 무효화 전략, 회피 설계, 소송 대응 등의 맞춤형인 '특허분쟁 대응전략 지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수요 증가와 달리 예산이 오히려 줄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관련 예산은 2023년 112억5000만원에서 2025년 70억원으로 38% 감소했습니다. 같은 기간 신청 건수는 늘었지만 선정률은 40%대에서 20%대로 급락한 겁니다. 특허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지원의 문턱은 높아진 격입니다.
제도적 허점도 있습니다. 현 특허법상 특허출원은 출원 후 1년6개월 동안 비공개가 원칙입니다. 미공개 상태의 특허는 FTO 분석 사각지대로 정확한 리스크 파악에 한계가 발생합니다.
박재영 입법조사관은 "특허우선심사는 심사 기간 단축을 통해 출원인의 빠른 권리 확보를 지원하는 제도이다. 여기에 출원 조기 공개를 반영하는 것을 고려해볼 수 있다"며 "조기 공개는 출원인이 원할 경우 비공개 기간(1년6개월) 이전에도 해당 발명을 즉시 일반에 공개하는 제도"라고 언급했습니다.
지원사업 예산 정상화와 분석 대상국 확대도 제언했습니다. 박 조사관은 "FTO 분석은 단순한 법적·기술적 검토를 넘어 중소·중견기업의 R&D 방향성을 정립하고 수출 리스크를 사전에 제거하는 핵심 전략이 된다"며 "지원사업의 예산 정상화를 통해 수혜 기업을 확대하는 것은 우리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돕는 실효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를 발전시켜 특허 DB 분석 대상국을 확대하고 기존 FTO 분석에 분쟁 대응을 더해 맞춤형으로 중소·중견기업을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FTO 분석 체계 정립에 대해서는 "AI가 모든 특허 문헌을 완벽히 학습해 전문가(변리사, 전문 조사기관 등) 수준의 정밀한 FTO 분석을 수행하기에는 현재로서 한계가 있다"며 "특정 산업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 범용기술(GPT)이나 적용처가 확정되지 않은 특허들을 AI가 완벽히 가려내 검색 결과에 포함시키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라고 강조했습니다.
AI가 모든 산업 분야에 적용돼 무한히 확장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는 AI를 통해 FTO 분석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게 박 조사관의 설명입니다. 실행 방안으로는 AI 기반의 고속 데이터 처리와 인간 전문가의 정밀한 판단력을 융합한 하이브리드형 FTO 분석 체계 정립을 제안했습니다.
지난해 12월18일 김용선 지식재산처장이 K-패션 수출 선도기업을 찾아 수출지원 및 지식재산권 보호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지식재산처)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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