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혜현·이수정 기자] 쿠팡은 스타트업에서 출발해 유통 공룡으로 몸집을 키우며 성장 가도를 달리는 동안 다수의 노동자 사망사고를 비롯해 사상 최대 규모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고까지 굵직한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창업자이자 실소유주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은 단 한 번도 전면에 나서서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2010년 국내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쿠팡은 2021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면서 미국 기업으로서 외형을 갖췄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법인과는 거리두기를 시작했습니다. 김 의장은 지주사인 쿠팡Inc.가 미국 증시에 상장된 2021년 쿠팡 한국 법인 이사회 의장직과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며 한국 사업과의 법적 연결 고리를 최소화했죠.
김 의장은 그동안 줄곧 국내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미국 국적 보유와 한국 법인 등기이사 부재를 이유로 들며 빠져나갔는데요. 이번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사실상 전 국민이 개인정보 유출 피해에 노출돼 여론이 들끓고 있고, 정부와 국회에서도 반복되는 쿠팡의 무책임 경영에 강력한 제동을 걸기 위해 조 단위에 달하는 과징금, 징벌절 손해배상, 집단소송 제도화를 검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유는 하되 책임은 없다"…'그림자 지배' 안 통한다
쿠팡 매출의 90% 이상이 국내에서 발생하고 있고 김 의장은 모회사인 미국 쿠팡Inc.에서 전체 의결권의 74.4%를 행사하며 회사의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실질적인 책임자인 만큼 이번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이전처럼 그림자 지배로 책임을 회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이종우 아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김 의장이 나서야 하는 법적인 이유는 없지만 쿠팡은 우리나라에서 연간 40조원 이상을 벌어간다"며 "쿠팡 내 과로 사망 등의 문제는 내부 문제였지만, 이건 소비자와 한국 국민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 사건이기 때문에 법적인 차원을 넘어 한국 여론이 이렇게 계속 나빠진다면 국내에서 장기적으로 사업을 하는 데 문제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번에는 정부와 국회까지 나선 상황이라 김 의장 역시 피해 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우선 쿠팡의 모회사 쿠팡Inc.가 쿠팡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고 김 의장은 쿠팡Inc.에서 클래스B 보통주 1억5780만주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김 의장의 지분율 8.8%로, 주당 29배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죠.
김 의장이 지금까지 보여온 '소유는 하되 책임은 지지 않는다' 식의 쿠팡 경영활동에 제동을 걸기 위해 정부와 국회에서도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솜방망이 과태료 처분을 지적하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현실화할 수 있는 실효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했습니다. 또한 이 대통령은 공정거래위원회에 강제 조사권을 주는 방안도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정부는 현행 형법상 강제 수사권은 사회적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경제 제재를 통한 처벌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강제 조사권이 발동돼야 한다는 점을 파악하고 공정위에 강제 조사권 부여가 가능한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정부의 조치는 경제적 불법행위를 근절하려면 형법에 따른 처벌보다 거액의 과태료가 효과적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고, 사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쿠팡에게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로 풀이됩니다.
김범석 쿠팡 Inc. 이사회 의장. (사진=뉴시스)
청문회 앞두고 박대준 대표 사임 '꼬리 자르기'
국회에서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나섰습니다. 과방위는 오는 17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청문회를 열고, 그동안 각종 사유를 대며 국회 출석에 응하지 않았던 김 의장을 증인으로 부르기로 했는데요. 지금까지 김 의장이 국회의 부름에 한 번도 응하지 않았던 만큼 이번에도 해외 체류를 이유로 불출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쿠팡 측은 "17일 청문회에는 해롤드 로저스 신임 쿠팡 대표가 나설 예정"이라며 김 의장의 불출석을 시사했습니다.
과방위는 김 의장이 이번에도 불출석할 경우 국회증언감정법에 따른 고발 조치와 동행명령 발부 등 법이 허용하는 강제 수단을 검토할 방침입니다. 다만 동행명령장을 발부해 강제구인을 시도하더라도 김 의장의 소재지 파악과 국회 사무처 직원이 직접 해외로 구인하러 나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여기에 청문회를 1주일가량 앞둔 시점에서 박대준 쿠팡 대표이사가 돌연 사임했습니다. 박 대표의 사임을 두고 김 의장을 보호하기 위한 꼬리 자르기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책임을 물어 국내 법인 대표를 사실상 경질하고, 김 의장의 최측근인 해럴드 로저스 쿠팡Inc. 최고관리책임자를 임시 대표로 전면에 세웠다고 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집단소송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법무법인 대륜의 미국 현지법인인 SJKP가 쿠팡 Inc.를 상대로 뉴욕 연방법원에 소비자 집단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죠. 국내에서는 거액의 과태료 부과를, 미국에서는 상장사 지배구조 실패와 공시의무 위반을 근거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법조계는 쿠팡의 '듀얼 클래스'(이중 주식) 상법 구조는 손댈 수 없겠지만, 국내 법률 재개정으로 외국 상장기업도 경영 책임을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정혜 법무법인 서리풀 대표변호사는 "김범석 의장이 막대한 지배력을 가지고도, 도의적 책임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은 쿠팡의 독특한 듀얼클래스 상법 구조 때문"이라며 "쿠팡은 듀얼클래스를 통해 일반주주는 주당 1표, 창업자 등 내부인은 주당 29표의 의결권을 가지게 돼 있고 자연스럽게 일반주주는 경영진의 결정에 토를 달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러다 보니 돈이 안 되는 보안 정책 등에서 실책을 범해도 문제화하기 쉽지 않고, 리스크가 발생하면 온전히 사회, 고객, 일반주주만 피해를 보게 되는 구조"라며 "미국에서는 이 구조가 합법이라 규제할 방법은 없지만, 중대한 사회문제가 발생했을 때 국내에서도 법적 강제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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