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불법 계엄의 밤, 중무장한 군병력이 헬기를 타고 국회로 침입하던 모습을 지켜보며 느꼈던 충격과 분노는 지금도 생생하다. 시민들은 단결된 헌법 수호 의지를 보여주었고, 국회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 강인한 민주적 저항 덕분에 불의한 책동은 새벽을 넘기지 못하고 진압됐다. 이후 탄핵과 대통령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가 이뤄지며 대한민국은 빠르게 정상화의 길에 접어들었다.
현재 내란 특검 수사와 재판 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대한민국에 남은 상흔은 깊고 크다. 한 해의 끝에서, 이 참혹한 사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결국 결론은 민주주의로 귀결된다. 윤 정부 출범 이후 반복된 비민주적 행위와 태도들은 불법 계엄으로 향하는 전조였다. 임기 내내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합리적 대화와 타협을 거부했다. 비판 언론은 옥죄고 국민을 분열시켰다. 모든 대형 사고는 우연이 아니라 수많은 위험 신호의 누적이라는 하인리히 법칙은 정치에도 예외가 없다.
역설적으로 반민주적 폭주와 내란 기도, 그리고 비참한 몰락은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일깨워주었다. 불의한 권력에 의연하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항거한 시민들의 자발적 빛의 혁명은 ‘K-민주주의의 위대함’을 세계에 알렸다. 이제 국민은 이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세계의 표준이 되는 ‘더 좋은 민주주의’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새로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가 꿈꾸는 ‘더 좋은 민주주의’,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과제들을 풀어가야 할까?
첫째는 ‘법치의 민주화’다.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법치는 있을 수 없다. 권력을 위한 법치, 스스로 권력이 되는 법치가 아닌 오로지 주권자를 위한 법치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법조 권력의 민주적 통제는 꼭 필요하다. 동시에 법은 시대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현행 헌법은 87년 군부독재 종식과 직선제 도입이라는 시대적 목표 달성에 큰 역할을 했지만,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정치·사회·경제 환경이 크게 변화하면서 여러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오늘의 현실과 달라질 미래를 포괄하는 새로운 헌법 개정이 조속히 필요한 이유다.
두 번째는 ‘민주적 인치’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역시 사람이다. 똑같은 법과 제도라 해도 누가 운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민주적 가치를 존중하고 국민을 진심으로 섬기는 역량 있는 지도자를 뽑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국가 리더십 교체로 대한민국이 얼마나 새롭게 변화했는지 올해 우리는 직접 눈으로 목격했다. 내년 치러질 지방선거에서도 주권자들의 올바르고 현명한 선택이 더 좋은 대한민국의 첫걸음이다.
세 번째는 ‘관용적 협치’의 중요성이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승자독식이 아니라, ‘승자 책임제’를 지향한다. 대화, 조정, 타협을 통해 운영되어야 한다. 갈등을 조율하지 못하는 국가는 성장도 혁신도 없다. 여당과 야당이, 민과 관이, 중앙과 지방이 숙의·공론·참여로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쳐야 한다. 함께해야 더 강해지고, 함께 갈 때 더 멀리 갈 수 있다.
끝으로 ‘완결형 자치’의 실현이다. 민주주의 본질은 시민이 스스로 주인으로 인식하고, 국가 의사결정의 주체로 참여하는 데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강조했던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은 국가가 시민을 이끄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시민이 민주주의를 이끄는 나라를 의미한다. 자치가 강화될수록 시민은 권력의 객체에서 주체로 전환된다. 스스로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은 참여를 낳고, 참여는 공공적 책임감을 키우며, 책임감은 공동체를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만든다. 이러한 선순환이 사회 전반에 퍼질 때, 국가는 단단해지고 조직은 혁신적으로 변한다. 자치의 실현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궁극적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올 한해는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다시금 절감한 시간이었다. 민주주의가 바로 나라의 근간이자 국가경쟁력의 원천이다. 새로운 이재명정부가 임기 내내 새기고 가야 할 지침이다. 내란 심판의 완결은 성숙한 민주주의로의 이행으로 이뤄진다. 다가올 2026년은 ‘더 좋은 민주주의’로 더 큰 국가적 도약을 이루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장훈 GR KOREA 전문위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