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통주가 만드는 품격 있는 연말
2025-12-08 06:00:00 2025-12-08 06:00:00
2025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한 해를 돌아보며 기억할 순간들을 정리하다 보면, 마무리의 의미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큰 사건이 있었던 해는 개인의 기억을 넘어 모두에게 공통된 기억으로 남곤 한다. 아마 2025년은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건의 연장선에서 사람들 기억 속에 남는 해가 될 것이다. 여러 분야가 타격을 입었고, 그 중에서도 외식산업은 심한 겨울을 맞았다. 작년 연말의 경기침체는 올 한 해 내내 계속되었고, 연말까지도 그 여파는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사실 과거 연말은 외식업의 가장 큰 호황기였다. 지인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며 술 한잔 기울이는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그런 모습을 쉽게 찾아보기 힘들어 보인다.
 
과거 연말 모임은 망년회(忘年會)라 부르며 원래의 의미(그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자는 뜻으로 베푸는 모임)와 상관없이 ‘술을 마시고 망하는 연말 모임’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붙을 정도로 음주 중심의 문화가 강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망년회보다 송년회(送年會)라는 이름으로 연말을 차분히, 뜻있게 보내자는 이들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 1인당 주류 소비량은 높은 수준이다. 국세청의 주류산업 시장조사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성인 1인당 연간 맥주 소비량은 약 83병, 소주는 약 53병이다. 이렇게 많은 술 소비가 연말에 특히 집중되었다. 송년회는 술을 못 마시는 사람에게는 부담 가는 자리였다. 하지만 개인의 취향을 중시하는 흐름이 자리 잡으면서, 최근 송년회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거나 무알코올 맥주, 저도주 제품을 선택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 많은 송년회에서 술이 기본이라는 인식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송년회에서 과음 문화가 유지될 수 있는 배경에는 서민의 술로 자리 잡아온 소주와 맥주의 저렴한 가격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송년회의 과도한 음주 문화를 개선하려면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전통주를 중심으로 음주 문화를 바꿔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본다.
 
많은 사람은 아직도 전통주 하면 오래된 주점에서 파전이나 찌개와 함께 시끌벅적하게 마시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2025년 현재, 전통주는 과거와 완전히 다른 소비 형태를 보인다. 전국에 외국의 다양한 안주나 퓨전 한식처럼 개성 있는 음식에 전통주를 페어링할 수 있는 전통주 전문점이 생기고 있다. 이런 주점들은 기존 소주, 맥주 중심의 회식 문화에서 벗어나 차분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세대를 가리지 않고 전통주 전문점을 낯설어하지 않으면서 전통주 전문점이 새로운 송년회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전통주는 더이상 싸고, 많이 마시는 술이 아니다. 가격과 풍미, 알코올 도수, 브랜드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전통주 전문점까지 생겨나 또 하나의 송년회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지=chatGPT 생성)
 
무엇보다 전통주를 연말 모임에 추천하는 첫 번째 이유는, 과음을 줄이고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과거 전통주는 술맛을 음미하기보다는 맥주나 소주처럼 많이 마시는 제품들이 많았다. 하지만 현재의 전통주는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는 종류가 다양해졌다. 희석식 소주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은 제품이 많아 자연스럽게 음주량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막걸리처럼 부드럽고 낮은 도수의 술은 물론, 풍미가 깊은 과실주, 도수는 높지만 향을 즐기는 증류주 등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온라인에서도 음식과 송년회 테마에 맞춰 분위기에 어울리는 술을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또한, 최근 회사들은 출장 음식(케이터링)을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전통주를 함께 구성하면 기존의 소주와 맥주와 다른 특별한 연말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전통주가 단순한 술을 넘어 '경험과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는 것이다. 전통주는 획일화된 대기업의 술과 다르게 각 지역의 특색과 양조장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송년회나 홈파티에서 지역의 특색이 담긴 전통주를 가져가면 흥미로운 대화 소재가 되고, 낯선 술을 함께 경험하는 즐거움도 생길 것이다. 무엇보다 머리가 아프다든가, 한약재가 많이 들었다는 등 전통주에 대한 편견은 버려도 될 만큼 품질이 좋아졌다. 다양한 재료와 발효 방식을 활용한 창의적인 술이 등장하고, 지역의 농산물과 문화를 담아낸 브랜드도 많아졌다. 전통주는 더 이상 ‘싼 술’이나 ‘술집에서 파는 막걸리’ 이미지가 아니라, 취향과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에게 선택받는 ‘즐기는 술’로 자리 잡았다.
 
이제 송년회는 과거처럼 ‘취하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한 해를 돌아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전통주는 과음을 줄이고, 대화를 중심으로 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연말은 단순한 ‘한 해의 종료’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전환점이다. 올해 송년회는 전통주 한 잔을 곁들여 조용히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연말, 그리고 내년을 향한 희망을 담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지방농업연구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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