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유근윤·차종관 기자] “아들이 있지만 찾아오거나 하지 않는다. 허리 수술을 해서 활동도 힘들고, 추석이라고 평소와 다를 바 없고, 죽지 못해 사는 거지, 뭐.”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쪽방촌의 김모(82)씨는 고양이 복순이와 한 칸 방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 새끼 고양이가 우연히 방에 들어와 6개월째 같이 지내고 있지만, 예방접종이나 밥값이 비싸서 부담되기도 합니다. 김씨는 “방에 창문이 없어 답답하고 에어컨도 고장이 나 이번 여름 고생을 많이 했다”며 “오후 6시 이후에는 골목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무서워 문도 잠그고 살았다”고 토로했습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된 16일 오후, 연일 폭염특보가 이어지면서 무더운 날씨는 계속됐습니다. 영등포역 앞 북적이는 인파를 뒤로 하고 10분 거리에 있는 쪽방촌은 적막한 분위기였습니다. 쪽방촌 거주자들은 추석 명절 기간 고향을 찾거나 친지가 방문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추모(71)씨도 “추석이라고 별다를 건 없다. 가끔 교회나 상담소에서 추석 선물을 전해주고 방문하곤 한다”며 “자식이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쪽방촌에 방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주자 열에 아홉은 환자들이라 멀리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인근 놀이터에서 ‘동자동 주민 한가위 어울림 한마당’ 행사를 열리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번화한 종로거리에서 사잇길로 들어서면 나오는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도 한산한 분위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곳에서 8년가량 살고 있다는 온모(70)씨는 “내 가족은 없고 형이랑 형수가 전주에 사는데 추석에 내려가지 않는다. 안 만난 지 오래됐다”며 “사람들이랑 마주치기 싫어서 자주 나가지고 않는다”고 했습니다.
서울 5대 쪽방촌 중 가장 규모가 큰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선 추석을 앞두고는 매년 동네잔치를 열고 있습니다. 올해는 추석을 앞둔 지난 14일 쪽방촌 인근 놀이터에서 ‘동자동 주민 한가위 어울림 한마당’ 행사가 열렸습니다. 동자동사랑방과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주최로 13년째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쪽방 거주자들, 적적한 분위기 함께 달래”
이날 오전 쪽방 거주자들은 현수막이 걸려 있는 차례상 앞에서 올해 세상을 떠난 이웃들을 위한 추모차례를 지내고, 삼삼오오 모여 점심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음식도 사랑방 활동가와 쪽방 거주자들이 함께 준비했습니다. 놀이터 한쪽 편에선 활동가들이 거동이 불편한 이웃에게 전달할 도시락을 싸고 있었습니다.
윤용구 동자동사랑방 주민대표는 “매년 어버이날과 추석 때는 주민들이 주축이 돼서 동네잔치를 개최한다”며 “전체 쪽방 주민들이 800명이 넘는데 400여명 가까이 모여서 음식을 나누고 교류도 하면서 같이 적적한 분위기를 달랜다. 오늘 하루만은 주민들이 시름을 놓고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드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추모차례도 함께 지내는데 올해 35분이 돌아가셨다”며 “사망자들이 40~60대로 꼭 고령층은 아니다. 폭염 영향도 있을 거고, 그만큼 주민들의 건강과 주거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일 거라도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안창현·유근윤·차종관 기자 chah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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