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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정부의 경제안보, 경제와 안보에 도움 됐나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한국, 중국 수입시장 1위→3위로, 대만과 미국이 1, 2위 차지
2024-03-08 06:00:00 2024-03-08 06:00:00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APEC 세션 I 초청국과의 비공식 대화 및 업무 오찬에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가히 '경제안보'(Economic Security)의 시대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에 경제안보를 전담하는 국가안보실 3차장 직제를 신설하고 왕윤종 대통령실 경제안보비서관을 임명했습니다. 노무현정부 때 청와대에 장관급 (국가)안보실을 신설한 이래 처음으로 3차장 자리를 만든 겁니다.
 
먹고사는 문제(경제)가 곧 죽고 사는 문제(안보)라는 건, 국가라는 조직에는 너무나 당연한 개념입니다. '함포 외교'를 불사한 중상주의나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던 제국주의 시기는, 용어는 없었겠지만 경제안보의 절정기였다고 할만합니다. 2차 세계대전에 이은 냉전 종식 이후 세계화 시대는 쇠퇴기였습니다. 세계화 시대는, 국제분업 시스템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트럼프 집권기인 2017년 12월 미국 국방부가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경제안보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제시했습니다. "경제적 번영과 성장이 국가안보와 직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뒤를 이어 2018년 2월 미국 무역대표부(USTR)도 경제안보 개념을 도입합니다.
 
문재인정부에서 대통령 경제보좌관을 지낸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에 대해 "경제가 안보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주장은 상무성이나 무역대표부가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왜 국방부가 먼저 이런 이야기를 꺼냈을까"라며 (지난해 9월 출간한 <일본이 온다>)이라고 진단합니다. "한마디로 중국의 무역공세 때문에 미국인들은 불만이 커졌고 이국은 또한 국가의 안위까지 위협하기 때문에 중국과의 무역을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라는 겁니다.
 
미 국방부가 먼저 경제안보를 제시한 까닭은 …"국가안보를 위해 경제를 수단화하겠다는 선언"
 
미국의 '경제안보' 대상은 확고하게 중국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로 확산됐는데, 이를 수습하는 데는 중국 역할이 컸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고맙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중국의 급부상을 확인했고, 경제안보의 중요성을 각성한 겁니다. 이후 2015년에 중국이 반도체를 포함한 정보통신기술(ICT) 등 미래 산업에서 글로벌 밸류체인을 장악하겠다며 '중국제조 2025' 전략을 발표하면서, 미국은 경제안보를 전면에 등장시킵니다. 경제안보를 경제 부처가 아닌 국방부가 제시하고,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회의를 경제보좌관이 아닌 안보보좌관이 주관하는 장면이 나오게 된 겁니다. 이는 결국 트럼프 정부의 대중국 무역전쟁으로 귀결됩니다.
 
일본은 역시 빠릅니다. 2020년 4월에 내각관방국가안전보장국(한국의 NSC) 에 경제안보를 담당하는 경제반을 만들고 2021년 10월에는 경제안보담당대신(장관)과 각료회의인 경제안전보장추진회의을 신설했습니다. 2022년 5월에는 ‘경제안보보장추진법’이 참의원(상원)을 통과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이렇게  몰두하고 있는데, 한국이 빠질 리 없습니다. 지난 2022년 3월 대선 과정에서 윤석열, 이재명 후보 모두 경제안보론을 수용하고 선거대책위원회 안에 관련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대통령실에 처음으로 경제안보비서관 직제를 만들고, 이번에 안보실 3차장으로 임명한 왕윤종 교수를 앉혔습니다.
 
이어서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경제안보론에 철저하게 발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6월 취임 후 첫 해외 일정이자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스페인 마드리드에 열린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합니다. 당시 나토 정상회의가 처음으로 중국을 '안보에 대한 도전자'로 규정한다고 예고됐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때 마드리드에서 최상목 경제수석이 '탈중국'을 공식화했습니다. 공급망 다변화와 시장의 다양화는 꼭 필요한 대목이지만, 이렇게 요란하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제는 이렇게 해서 성과를 냈느냐는 겁니다. 약 1년 뒤인 2023년 5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은 이미 장기 저성장 구조로 와 있다"고 인정합니다. 2023년 경제성장률은 1.4%였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같은 대형 사건이 없었음에도 이 정도 성장률이 나온 것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이었고, 일본(1.9%)에 경제성장률이 뒤진 것도 외환위기 때였던 1998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2022년 6월 28일(현지시간) 당시 최상목 경제수석이 마드리드 프레스센터에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나토 정상회의에서 '탈중국' 공식화…대중 무역적자, 윤 대통령 취임 때부터 시작
 
잠재성장능력의 구조적 문제는 그 이전부터 제기됐지만, 이렇게 급격하게 하락한 것에는 중국 요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난해 대중 무역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처음으로 적자였습니다. 적자 규모도 180억달러에 달해, 한국 전제 무역적자(100억달러)의 1.8배 규모입니다. 공교로운 것일까요? 대중 무역적자는 윤 대통령이 취임한 2002년 5월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나마 지난 2월에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면서 오랜만에 흑자를 기록했지만,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다른 나라들도 다 경제 상황이 나쁜 것도 아닙니다. 지난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2.6%로 우리보다 1.2%나 높았고, 올해 2024년 전망치도 2.4%로 2% 안팎으로 예상되는 우리를 상회합니다. 미국과 유럽 증시는 뜨겁고,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에서 탈출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2월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대(對)중국 무역수지 적자 원인 진단과 평가' 보고서에서 중국의 2023년 총 GDP(명목)는 약 17.7조 달러(IMF, 추정)로, 올해도 4% 성장을 한다면 7080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가치를 창출(동기간 한국 GDP 1.7조 달러의 41.4%에 해당)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우리가 1위였던 중국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반면, 대만과 미국이 중국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는 점도 꼭 새겨야 할 대목입니다. 지난 1월 말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이 중국 전체 수입의 6.3%를 차지해 3위였던 반면, 1위는 대만(7.8%) 2위가 미국(6.5%)이었습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양안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중국 시장에서 실리를 취하고 있는 대만의 내공이 놀랍지 않습니까.
 
'공중그네 곡예' 외교 인도 외무장관 "강력동맹 있다고 글로벌입지 커지는 건 아냐"
 
이런 상황인데도 한중 정상회담은 오리무중입니다. 2022년 11월에 30분 정상회담에 이어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에서 3일간이나 같은 곳에 있었음에도 ‘3분 조우’가 전부입니다. 현재 한중간에 북한 핵문제와 한중 관계 개선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의미 있는 대화'는 없습니다.
 
이 같은 한중관계는 경제는 물론 안보에서도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북한이 군사 능력을 강화하고 있음에도 중국의 반대로 유엔 안보리는 기능정지 상태입니다. 유사시 북한에 대한 지렛대 역할도 기대난망입니다.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지원하고 거기에 편입되는 것만으로, 우리의 경제안보 정책을 좁히고 있는 겁니다. 방한 중인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무장관은 지난 5일 공개강연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자국의 균형 외교를 공중그네 곡예로 비유하면서 "강력한 동맹이 있다고 해서 글로벌 입지가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느슨한 동맹이라고 해서 그 입지가 약해지는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분단 상황에서 한미동맹이 외교의 기본 축일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대목입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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