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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한국 대중음악 경계에 선 빛의 속도, 이승윤 ‘도킹’
2023-07-05 00:00:00 2023-07-05 00: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난 나라는 인류의 기원과 종말이야/…난 나라는 우주의 빅뱅과 블랙홀이야'
 
지난 1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칠흑의 우주 속 각기 다른 섬광을 뿜어내는 행성들처럼 문장들이 번쩍입니다. 이것은 이승윤이 만들어낸 '내면의 우주', 소멸되기도 다시 태어나기도 하는 존재, 조금은 '삐뚜루'(팬덤명)여도 틀리지는 않은 세계.
 
이날 이곳에서 열린 이승윤의 투어 '도킹' 앙코르 공연은 '멀쩡한 나침반이 없어' 표류하는 듯 해도 결국 꿈을 실체로 만들어낸 증명의 현장이었습니다. 가운데 대형 LED가 접히며 시작된 연출을 보며, 이곳이 바로 불안정과 무정형의 세계를 거쳐온 '꿈의 거처'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지난 1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이승윤의 투어 '도킹' 앙코르 공연. 사진=마름모
 
2011 MBC 대학가요제 출신이자 JTBC '싱어게인(2020~2021)' 우승자. 그의 말대로 최소 모두가 아는 히트곡 한 곡 정도 보유한 '원히트 원더'도 아닌데, 이 정도 규모의 콘서트를 여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입니다. 트로트와 아이돌로 양분된 현재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씁쓸한 단면이지만, 스스로가 "선례가 아닌가 싶었다"는 그의 멋쩍은 말에 한편으론 현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독보적인 존재가 아닐까 하는 단상도 들었습니다.
 
무한한 빅뱅과 블랙홀의 순환 속에서 생성된 삶의 우주란 이런 것일까. 이날 무대에서 그가 '야생마'처럼 거침이 없이 풀어놓는 곡들의 서사와 맞물려 천체처럼 돌아가는 연속적인 연출 세계를 따라가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들여지지 않는, 날것의 미학'('야생마')이 춤출 때 공연장 전체가 빨간 조명으로 물들고, 리듬을 타며 뚜벅뚜벅 걸어나오던 '새벽이 빌려준 마음'에선 토성의 고리 같은 영상 미학이 장내를 휘감았습니다. 형형색색으로 바뀌는 응원봉들은 우주의 메시지를 받고 점멸하는 신호들처럼 일렁였습니다.
 
올해 초 발표한 정규 2 '꿈의 거처'과 이어진 전국투어 '도킹'에서 "이미지적으로 우주를 많이 차용했다"는 세계관은 초중고부터 5060대에 이를 정도로 저변이 넓은 팬층과의 이날 교감과 합심으로 이뤄낸 또 다른 '꿈의 거처'였습니다.
 
지난 1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이승윤의 투어 '도킹' 앙코르 공연. 사진=마름모
 
무엇보다 라이브 땐 앨범에 박제돼 있던 소리들이 하나하나 정교하게 튀어올라 가사의 서사를 생동감있게 느껴지게 했습니다. 쓰리 기타(기타리스트 3)과 베이스기타, 드럼, 건반, 코러스 3인의 조화가 우주의 공명 같은 사운드를 한층 풍성하게 들리게 했습니다. 무대 구성 또한 다채롭게 만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다운 말' 등을 부를 때는 멤버들과 T자형 무대로 나와 악기들을 일렬로 배치하고 무대를 꾸몄습니다.
 
본인은 히트곡이 없다며 겸손해 했지만, 앙코르 직전 쏟아낸 2집 수록곡들은 이날의 백미였습니다. 갖가지 마음 상태나 고민이나, 방향성을 퉁쳐서 꿈이라고 하고 꿈을 꿈답게 해주는 것에 관해 노래하는 '꿈의 거처' 때는 중앙 엘이디 안에 나침반 모양이 쉴새 없이 돌아갔습니다. '비싼 숙취' 때 비틀거리면서 무대 좌우를 종횡하다가, T존 앞으로 튀어나오고, 무릎꿇고 지휘하고, 다시 밟아대고, 급기야 눕기까지 하는 퍼포먼스는 ''에 관한 질문들을 마지막까지 펼쳐놓는 한편의 뮤지컬이었습니다2시간 40분, 25곡 이상으로 장대한 공연 시간을 마쳤습니다.
 
어떤 꿈은 비싼 꿈이고 어떤 꿈은 값싼 꿈일까,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할까. '삐뚜루' '마름모(이승윤 소속사 명칭)'는 여전히 경계에 서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대중음악의 양분성을 언젠간 빛의 속도로 주파할, 새 천체가 될 그 날을 기다리며.
 
지난 1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이승윤의 투어 '도킹' 앙코르 공연. 사진=마름모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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