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최근 K팝 신예 걸그룹 피프티피프티가 미국에서 별다른 현지 홍보 활동 없이 빌보드 '핫100'에 2주 연속 이름을 올린 가운데 곡 'Cupid'의 흥행은 틱톡 등 숏폼 기반 콘텐츠 자생적 제작과 성공 전략이 주효했던 것으로 풀이됩니다. 손바닥 크기만한 스마트폰의 표준비(20:9)에 맞춰 제작된 영상, 내 귀에 확확 감길만한 멜로디와 중독성 있는 안무…. '초-분 단위 전쟁'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K팝에서는 지코와 셀러브리티티들을 중심으로 "왜들 그리 다운돼있어?"(곡 '아무 노래') 하며 전국민을 들썩인 '댄스 챌리지(핵심 안무를 따라하는 영상을 해시테그를 붙여 이어달리기처럼 올리는 현상)' 문화가 범람했으나, 최근에는 조금 다른 기류가 포착됩니다.
대중들이 '별다른 의도 없이, 자발적으로' 만든 숏폼 영상이 음악 시장에 거꾸로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겁니다. 중소기획사 소속 그룹인 피프티피프티가 곡 'Cupid'로 2주 연속 빌보드 '핫100' 오른 이례적 현상도 마찬가지.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는 "성공에는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었겠지만, 그 중 숏폼 영상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다만, 기존까지 기획사가 의도적으로 만들던 K팝의 '15~60초 안무영상 챌린지'와는 분명 다른 차별점이 있다"고 짚습니다.
13일 서울 강남 일지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룹 피프티피프티 멤버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어트랙트
'많게는 수백만, 적게는 몇만 단위의 틱톡 크리에이터들이 노래를 가지고 놀고 있다'는 게 핵심. 김도헌 평론가는 "세계인들이 가공하기 쉬웠다는 점, 즉 '가지고 놀기 좋은 노래'가 대중들의 일상생활과 맞붙을 때의 힘을 보여준 것"이라며 "이전까진 틱톡으로 경력을 시작해 슈퍼스타가 되거나 차트 역주행을 하는 것은 사실 영미권의 일이었지만, 피프티피프티는 한국에서도 그 현상이 가능함을 보여준 사례"라고 설명합니다.
피프티피프티는 화려하고 역동적인 칼군무와 파워풀한 사운드로 대표되던 이른바 'K팝 사운드의 표준'도 벗어던졌습니다. 스웨덴 작곡가인 애덤 본 멘저를 필두로 해외 작곡진들을 대거 기용해 K팝 버전의 도자캣('Say So'나 'Kiss me more'), 디스코 팝을 만들어 낸 셈. 세련되며 몽글거리는 멜로디, 작위적인 악곡보다는 물 흐르듯 편히 흐르는 프리코러스 같은 요소들이 단순 K팝이 아닌, 대중적인 글로벌 팝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소속사 어트랙트 프로듀서 SIAHN(안성일) 씨에 따르면, 'Cupid'의 본격적인 작업기간은 대략 총 3개월 정도가 걸렸습니다. 한국어와 영어 버전의 곡 작업 방식도 달랐는데, 특히 영어 버전에서는 프로듀서가 만든 원곡의 무드와 의도를 가장 잘 살리기 위해 랩과 조성(Key) 변화를 없앴다고 합니다.
SIAHN(안성일) 씨는 "원하는 송폼과 멜로디가 나올때까지 해외 프로듀서들과 계속해서 수정에 수정을 가하고, 원하는 사운드가 나올 때까지 재녹음과 믹싱에 시간을 많이 쏟았다. (청자) 타겟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피프티피프티만의 색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에 많은 고민을 해온 것 같다"고 합니다. 어트랙트 A&R 담당자 이준영 씨는 "인위적인 사랑노래가 되지 않도록, 콘셉트 구상 단계에서 피프티피프티 멤버 나이 대의 20대 청중들이 직접 공감할수 있는 요소를 고민을 한 것도 특이점"이라고 했습니다.
빌보드 '핫100'에 2주 연속 이름을 올린 피프티피프티 곡 'Cupid'. 사진=어트랙트
13일 서울 강남 일지아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멤버 새나는 "보컬적으로 랩적으로 곡과 우리의 컬러를 어떻게 하면 함께 잘 조화시킬지 고민했다"며 "오리지널 사운드(리얼 밴드 사운드)가 우리의 보컬 색깔과 잘 어우러지도록 편곡함으로써 진정성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했습니다.
아란은 "흔히 도움의 손길이라 불리는 '큐피드'에 의존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사랑을 얻고자 하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뚜렷한 곡"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피프티피프티의 이번 성공사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후 잘못된 모방의 숏폼 마케팅에 대한 경각심도 나옵니다. K팝의 정형화된 틀을 벗고 성공한 이번 사례가 한국 대중 음악의 글로벌화 흐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때야 할까.
피프티피프티처럼 우선적으로 음악의 완성도에 심혈을 기울이고, 이후 자생적으로 숏폼 문화에 올라탈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김도헌 평론가는 "튀는 부분 없이 듣기 편한 이지 리스닝 계열의 음악인 원곡이 데모 단계에서부터 심혈을 기울여 제작됐다고 한다면, 틱톡에서 유행하는 '스패드업 버전'(곡의 속도를 빠르게 편곡한 버전)은 비트가 통통 튀어대서 더 생동감 넘치는 느낌을 준다"며 "특히 기존 대형기획사에서 시행하던 '아이돌 홍보 영상'이 아닌 점이 주효했다. 피프티피프티와 기획사가 어떤 대단한 전략을 활용하지 않았음에도 아티스트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음악 제작에 공들인 부분, '대중들 스스로 좋아서 창작한 숏폼 문화'가 복합적으로 새로운 결과를 가져다준 것"이라고 봤습니다.
미국에서 별다른 현지 홍보 활동 없이 빌보드 '핫100'에 2주 연속 이름을 올린 가운데 곡 'Cupid' 흥행을 일으킨 그룹 피프티피프티. 사진=어트랙트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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