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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속 '장애' 읽기)휠체어에서 내린 몸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2023-03-17 06:00:00 2023-03-17 06:00:00
“우린 이미 늦었어. 먼저 가”라고 외치고 싶은 순간이 종종 있습니다. 장애인식 관련, 어른들의 높은 편견을 마주할 때입니다. 그럴 때면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희망을 걸어봅니다. 어쩌면 우린 늦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너희만이라도 우리와 다르길…. 
 
그 바람이 통했을까요? 즐거운 변화가 눈에 보입니다. 바로 어린이 프로그램 EBS ‘딩동댕 유치원’에서 지체장애인 하늘이(인형입니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겁니다. 드디어 변화의 바람이 분다고 생각하니 욕심이 생깁니다. 너무 설레고, 너무 좋아서 살짝 욕심을 부려볼까 합니다. ‘딩동댕 유치원’에 바라는 점을 아주 조금만 얘기해 볼께요. 
 
며칠 전 ‘딩동댕 유치원’을 보는데 ‘세계의 시장’을 다룬 편이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네덜란드 치즈 시장, 신기하더군요. 치즈를 싣는 가마에 어린이들을 태우기도 하고요. 딩동댕 유치원 친구들도 가마에 탔어요. 그런데 하늘이만 쏙 빠지고 나머지 세 친구만 가마를 탔더라고요. 간단히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하늘이 인형이 휠체어와 한 몸으로 제작돼 있어서 그런 거라고. 
 
얼마 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합동 강연이었는데요. 척수장애가 있는 A씨 차례가 됐을 때 그는 말 대신 행동을 했습니다.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강연장엔 긴장감이 감돌았죠. 그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한 번 듣고 잊어버릴 강연보다 척수장애가 있는 사람을 직접 휠체어에 타도록 돕는 올바른 방법을 알고 있는 게 현실에선 더 중요하다 했어요. 학생들은 A씨 신체 어느 부위에 손을 대고 어떻게 힘을 줘 휠체어에 타도록 돕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 실생활에서 필요한 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휠체어와 한 몸인 장애인이 아니라 휠체어와 분리된, 장애가 있는 몸을 온전히 바라보고 그 몸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요.  
 
지금 제 남동생은 미국에 있습니다. 얼마 전 남동생이 사진을 보냈습니다. 조카들이 미국 놀이터에서 그네 타는 사진이요. 특이한 그네가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네는 총 4개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는데 조카들이 탄 3, 4번 그네는 한국과 똑같았어요. 그런데 옆에 있는 1, 2번 그네는 의자 형태의 그네입니다. 1번 그네는 머리까지 등받이가 있는 큰 의자, 2번 그네는 엉덩이까지 받칠 수 있게 된 좀 더 작은 의자 형태였습니다.
 
우리나라 놀이터에도 저런 그네가 있다면 어떨까요? 지체장애가 있는 어린이도 휠체어에서 벗어나 마음껏 그네를 탈 수 있겠지요. 그 과정에서 놀이터의 친구들은 휠체어와 분리된, 장애가 있는 친구의 몸을 온전히 보고 그 몸에 익숙해질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그런 게 진짜 장애인식 전환이고 장애이해 교육 아닐까요? 장애가 특별한 무언가가 아닌 일상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하나의 당연한 풍경이 되는 것 말입니다.
 
‘딩동댕 유치원’ 하늘이의 등장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그래서 욕심 한 번 내봅니다. 올해는 휠체어에서 벗어난 하늘이의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휠체어에서 내린 하늘이 모습에 친구들이 당황하고 놀라는 게 아니라 친구들이 하늘이에게 눈을 맞춰 함께 바닥에 앉아 놀아도 좋겠고 하늘이가 휠체어에 올라탈 수 있도록 친구들이 도와줘도 좋겠습니다. 옳은 방향성을 설정해 잘 가고 있으니 이왕 가는 거 한 발만 더 나가보자는 마음에 주절주절 써봤습니다. 언젠가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 동환이의 등장도 기대해 봅니다. 찡긋.
 
류승연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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