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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46)먼지도 안 일어나네
2023-02-23 06:00:00 2023-02-23 06:00:00
먼지도 안 일어나네 
 
힌두스탄 평원에 태양이 솟아오르면 
전설의 강물 밑바닥을 흐르듯 
역사의 뒷골목을 헤매듯
몽롱한 꿈에 취해서 몸을 뒤척이듯 
수많은 전설과 찬란한 역사를 품었던 알라하바드
그곳으로 안개처럼 내 발걸음은 스며드네
 
부지런한 여인은 마당을 쓸어 먼지를 일으키고  
목동은 소와 염소를 몰고 먼지를 일으키고 
대형 화물차는 먼지 핵 버섯구름이 일으키는데
내 발걸음은 먼지도 안 일어나네!
 
나도 힌두스탄 대평야를 달리며 반얀 나무를 닮아간다. 
다리가 뇌경색 후유증으로 절룩거리면 
내 가슴 갚은 곳에서 다른 수많은 다리를 내리뻗어 
그렇게 달리고 있노라. 
불멸의 정신으로 서원한 일
달리는 말은 말총을 휘날릴 뿐 뒤돌아보지 않는다.
 
어제 오늘은 허리가 무척 아픕니다. 앉았다 일어날 수조차 없습니다. 그래도 달리는 동안은 괜찮다. 이리 고생하면서 달리는데 먼지조차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 지난번 아시럽대륙을 달릴 때는 정말 큰 호응에 힘들어도 힘든지 모르고 달렸는데 이번엔 시선이 영 냉랭합니다. 허리 아픈 건 참고 이기겠는데 마음이 무거운 건 힘듭니다. 많은 사람이 같이 먼지를 일으켜줘야 로마 교황님이 노구를 이끌고라도 판문점에 와서 감동의 평화의 미사를 집전하실 것 아니겠나요?
 
한 성자가 힌두교 신인 나라야나에게 신의 권능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나라야나 신은 온 세상을 물로 범람시켰습니다. 다른 모든 생물은 물에 휩쓸려 내려갔거나 죽었지만 반얀 나무는 꼭대기만 나온 채 살아있었습니다. 이때부터 반얀 나무는 인도인들에 불멸의 나무로 여겨집니다. 뿌리가 시원치 않으니 가지를 축 늘어뜨려 그것이 땅에 닿으면 뿌리를 박고 다시 줄기가 되고 뿌리가 되어 바람이 심하게 불어도 홍수가 나도 제자리에 살아남는 것입니다.
 
나도 힌두스탄 대평야를 달리며 반얀 나무를 닮아갑니다. 다리가 뇌경색 후유증으로 절룩거리면 내 가슴 갚은 곳에서 다른 수많은 다리를 내리뻗어 그렇게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냉랭한 반응에 기죽지 않고 불멸의 정신으로 서원한 일을 실천할 것이라고 다짐에 다짐을 더합니다. 나는 강 건너에서 타는 불길을 보고 아직 이 여정을 평가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달리는 말은 말총을 휘날릴 뿐 뒤돌아보지 않습니다.
 
알라하바드는 힌두스탄 대평야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갠지스 강과 야무나 강의 합류점에 있는 도시입니다. 본래 바라나시와 함께 힌두교의 대표 도시였지만 16세기에 악바르 대제가 성벽을 짓고 “알라하바드”라는 이슬람식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힌두교에서도 의미가 깊은 장소다 보니 이슬람 통치의 흔적을 지우려 2018년에 프라야그라지로 변경되었습니다. 알라하바드 성은 아쇼카 대왕 때 지어졌다고 하는데 현재의 성은 악바르 황제가 재건한 것입니다.
 
인도인들은 이곳에서 세 개의 강이 만난다고 합니다. 갠지스 강과 여무나 강 그리고 사라스와티 강입니다. 사라스와티 강은 지하로 흐르는 강이라고 하는데 상상 속의 강입니다. 그러니까 인도인들의 마음속에 흐르는 강인 셈입니다. 강을 신성하게 여기는 힌두교도들에게 세계의 강이 만나는 곳이니 더없이 신성한 곳이겠지요.
 
신성한 강이 흐르는 인도의 성지 네 곳에서 쿰브 멜라(성스러운 항아리 축제)라는 축제가 열리는데 알라하바드에서 열리는 쿰브 멜라가 가장 성대하다고 합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규모이면서 평화로운 순례자들의 축제입니다. 사람들은 성스러운 강물에 몸을 씻거나 적시기 위해 이곳을 찾습습니다. 죄를 씻고 삶과 죽음의 윤회로부터 벗어나길 소원합니다. 신화에 의하면 불사의 영약이 담긴 항아리를 신과 악귀가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다가 항아리 속 영약이 갠지스 강에 몇 바울 떨어졌다고 합니다.
 
한 사두가 배움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발길이 닿는 곳을 따라 정처 없이 길을 가다 한 항아리 공방에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한 노인이 흙을 반죽해서 아주 찰진 반죽을 만들고 있었다. 노인을 눈길도 돌리지 않고 사두에게 물었습니다. “여보게, 항아리가 뭔 줄 아는가?” 사두가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습니다. “그야, 물이나 음식을 담는…….” 노인은 말했다. “항아리는 오대(五代)의 결정체이지. 흙과 물, 불과 바람 그리고 도공의 의도가 항아리의 운명을 결정한다네.”
 
이어서 노인은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항아리의 겉모습만 본다네. 그리고 거기에 무엇을 담을지를 생각하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항아리의 공간이라네. 이 공간이야말로 항아리의 영혼이지! 사람도 마찬가지지. 몸이라는 항아리에 어떤 마음의 내용물을 채우는가가 중요하지.” 사두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중요한 건 말이지, 내용물을 더 담거나 바꾸려 하지 말고 공간을 보아야 한다네! 단지 자네가 성자로 칭송받기를 원한다면 내용물을 더 좋은 것으로 채우고 바꾸어야하겠지만, 신을 알고 참된 나를 알기를 원헌다면 내용물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야 한다네. 지금까지 자네를 괴롭혔던 것이 내용물이 아닌가?”
 
나는 갠지스 강이 흐르는 옆길을 달리며 ‘마음속에서 그 무엇이 오고 가더라도 내버려 두라!’는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봅니다. 먼지가 일든지 말든지는 먼지의 일이요,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해서 가슴속에 든 깃발을 날리며 달릴 뿐입니다.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평화달리기 134일째인 지난 11일 인도의 주민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강명구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주 사회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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