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최수인, '어둠 속 빛' 보는 모든 '나'에게
10년 만에 첫 정규 음반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자연 동경' 담은 사운드…"음악, 어린 아이 같은 순수 필요"
2023-01-24 16:00:00 2023-01-24 16: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빡빡한 현실로부터의 도피, 그곳은 흡사 비행 중 구름들을 헤치고 만난 천공의 성.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한 빌딩의 2층에 자리잡은 공간에는 '라퓨타'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화사한 봄꽃 무늬가 수놓아진 커튼 사이, 빼꼼 반겨주는 녹색 식물들과 파스텔톤 장식들을 둘러보며, 토토로와 고양이버스가 문득 튀어나올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달까요.
 
"어릴 적부터 관심이 있었거든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섬'이란 거. 동화 같은 공간을 좋아하곤 했어요."
 
이 아기자기한 공간은 싱어송라이터 최수인이 직접 운영하는 사진 스튜디오. 뮤지션들의 사진 찍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이 동화 같은 정경에서, 어쩐지 그의 온화하게 몽글거리는 음악 세계가 겹쳐져 보였습니다.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한 빌딩의 2층에 자리 잡은 스튜디오 공간에서 만난 싱어송라이터 최수인.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최수인은 한국 옛 포크를 뼈대 삼고 소리를 건축적으로 쌓아올리는 음악가입니다. 내면의 우물에서 길어올린 이야기들은 점점 커져가는 소리 스케일을 타고 잔잔한 파고처럼 와 닿습니다.
 
지난달 말 음악을 시작한지 10년 만에 첫 정규 음반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을 발표했습니다. 왜 '파란마음 하얀마음'의 동요적 색감이 떠오르는 제목을 달았을까.
 
"어릴 때는 제가 무척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20대 때 연약하고 물렁했던 제 마음에 생채기가 많이 났거든요. 그러다보니 제 안에 사라지는 순수성이 꼭 어둠 속의 빛 같았어요. 지금처럼 조금 더 배려하고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그때도 곁에 있었다면, 제가 동굴 속에서 조금 더 일찍 나오지 않았을까 싶고요. 물론 30대인 지금의 단단한 저 역시 그때의 제가 만든 것이라 후회는 없지만... 음악을 위해서는, 조금 어린 아이의 마음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까 했어요. 그래서 (앨범 제목의) 빛은 순수, 그리고 사랑이에요." 
 
지난달 말 데뷔 10년 만에 첫 정규 음반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을 낸 싱어송라이터 최수인. 사진=최수인
 
어렵지만 자신의 길을 지켜온 사람들을 대신해 음반은 말합니다. 의심과 불안, 분노, 상실의 그림자들을 지나, 결국 작은 빛 줄기를 따라 끝내 여기까지 와 봤다고. 10년 간 음악가로, 공연 기획자(전 홍대 언플러그드 매니저), 사진 스튜디오 운영자로 세 개의 삶을 병행하며.
 
타이틀곡 '내일의 너와'는 앨범의 주제의식을 직관적으로 잘 표현해주는 음악입니다. 너라는 존재는 단순 2인칭을 넘어, 3자 혹은 어두운 과거와 일별하고 새로운 빛을 맞으려는 모든 ''들을 위한 노래입니다.
 
12현 기타까지 대동해 여러 녹음 버전을 겹쳐 소리를 풍성하게 만드는가 하면, 가상 악기들(프로그래밍·음악가 영영 참여)을 충분히 활용해 사운드 스케일을 웅장하게 키워가는 점도 이색적입니다. 자연 속 새소리 같은 고음역대의 플룻 연주와 풍성한 현악, 아프리카 전통 리듬을 생성하는 셰이커들...
 
"힘차게 외치는 '' 같은 의성어들도 많은데요. '초원에 대한 동경을 담아보자' 생각하며 사운드 디자인을 했어요. 가사적으로는 어두웠던 과거의 나에서, 희망의 빛을 가진 나로 변화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랄까요. '손을 잡고 춤을 추네'라는 가사 대목은 오늘과 내일의 나가 결국 합일하는 장면을 연상했어요. 최근 취미인 '스윙댄스'와 비슷한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하핫."
 
지난달 말 데뷔 10년 만에 첫 정규 음반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을 낸 싱어송라이터 최수인. 사진=최수인
 
점층적으로 커지는 사운드 스케일은 김민아 현대 무용수의 안무, 광활한 뮤직비디오 영상미와도 화학작용을 이룹니다.
 
"(뮤직비디오는) 대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한 무용수의 몸짓이면 어떨까 생각했는데요. 김민아 님의 안무는 너무 여성스럽지는 않으면서도, 에너지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곡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포크의 핵심이 관조적 정서이고, 그것을 내면화하는 작업이라면, 최수인의 음악 세계는 그것에 충실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건반 타건이 감정의 강가에서 잔물결을 일으키는듯 하는 '가을노래'는 피아노 선율과 가사만으로도 누군가를 쓸쓸하고 아릿한 시간으로 데려갑니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어릴 적 늘 혼자였던 시간에 대해 쓴 '품'은 나일론 기타줄의 진동과 함께 담백한 목소리가 20대 청춘의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면을 그려냅니다. 
 
앨범 전체적으로 전통적인 포크 문법에만 얽매이지 않고, 현대적으로 세련된 감각의 소리들을 유기적으로 엮고 조화시킨 점들도 눈에 띕니다. '바다로 가자'에는 기타 이펙터로 돌고래 울음을 연상시키는 소리 효과를 넣었습니다. 건반의 패드의 '샤'한 사운드는 앨범 전체에 몽환적인 미학으로 꾸며줍니다.
 
그 스스로는 음반을 "10년 치 다큐멘터리 같은 앨범"이라 얘기합니다. "제 스스로의 음악적인 세계라든지, 철학을 갖고 앨범을 냈던 것은 아니거든요. 10년 간 꾸준히 길을 걸어오면서 오랫동안 곡이 쌓였고, 그걸 정리해서 낸 앨범이에요. 궁극적으로는 제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어떠한 이야기를 품은 사람이었는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지난달 말 데뷔 10년 만에 첫 정규 음반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을 낸 싱어송라이터 최수인. 사진=최수인
 
코로나 기간 3년 간 공연기획자로 일한 그는 국가 차원의 재난재해 관련 지원제도가 열악한 최전선이 대중음악 분야란 점도 체감했다고 했습니다. "지원사업이 없이는 서로가 배부를 수 없는 구조에서, 뮤지션과 기획자를 비롯해 다양한 방식으로 토론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벨로주 홍대에서 쇼케이스 무대를 가진 싱어송라이터 최수인. 사진=최수인
마지막으로 이 동화 같은 장소에서 피아노와 기타에 손을 지그시 올려놓은, 그는 "아이슬란드처럼 넓은 풍광을 생각하며 들어주면 좋을 앨범"이라 했습니다. 
 
"'어제와 내일의 내가 서로를 관통하는 장면을 생각하다보면 그런 그림이 생각나요. 드넓은 초원이 있고, 대자연이 펼쳐져 있는..." 
 
"저, 거기 가봤어요.(익도)" 
 
그의 두 눈이 오로라 빛처럼 반짝이더군요. 
 
"정말요? 어떻던가요.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거기도 가봤어요? OST 중에 그거 좋아하거든요. 'Of Monsters And Men'... 정말 꼭 가보고 싶어요."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벨로주 홍대에서 쇼케이스 무대를 가진 싱어송라이터 최수인. 사진=최수인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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