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비슷한 느낌의 그런 배역을 연이어 해도 그때마다 각각의 카리스마를 발산시킨다면 이건 ‘동어반복’이란 개념보단 배우의 온전한 능력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그리고 그걸 배우 스스로가 인지하고 있다면 정말 무서운 능력이 된다. 박성웅은 그런 의미에서 사실 굉장히 뻔뜩이게 날이 선 칼날을 숨기고 있는 섬뜩한 능력의 소유자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일단 본인이 한 장르 안에선 국내에서 대적할 경쟁자가 없단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다. 액션 또는 범죄 장르에서 박성웅이 만들어 내는 악역은 ‘설득’의 개념이 아니다. 정말 그럴 것 같고, 어느 순간부터는 ‘박성웅’이 아니라 ‘범죄자 ООО’으로 보일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일단 그의 전작 ‘신세계’ 속 ‘이중구’ 캐릭터가 여전히 강렬하다. 그리고 키 187cm 몸무게 78kg의 압도적 피지컬이 상대를 짓누른다. 그의 앞에서면 어느 누구라도 몸을 움츠리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아주 약간(?)은 험상궂은 표정까지. 오죽하면 그의 아내 배우 신은정이 “왜 오빠는 항상 인상을 쓰고 있냐”며 핀잔을 줬을 정도라고. 참고로 그 순간 박성웅의 기분은 그 어느때보다 행복한 감정이었단다. 그래서 주지훈이 영화 ‘젠틀맨’에 출연 제안을 받은 뒤 이 영화의 빌런 캐릭터 ‘권도훈’을 떠올리는 데 박성웅 외에는 달리 답이 없단 결론을 냈었다고. 물론 감독과 스태프들도 모두가 이견이 없었단다. 그럼 선택은 박성웅의 몫이다. 박성웅은 처음 이 제안을 거절했단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고.
배우 박성웅. 사진=콘텐츠웨이브
일단 박성웅과 주지훈의 관계, 박성웅이 당연히 형이다. 박성웅은 주지훈에게 ‘쌍시옷’이 섞인 단어를 부담 없이 날리고, 주지훈은 그 단어에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을 관계다. 물론 그 단어에 나쁜 감정은 전혀 없단 전제로 말이다. 둘은 정말 그 정도로 친하다. 박성웅은 ‘젠틀맨’ 제안이 왔을 때 거절했지만 ‘지훈이 저XX에게 내가 설득 당했다’고 웃었다. 박성웅은 자신이 표현했던 기존 악역 느낌과 너무 비슷할 듯 해서 거절 했었단다.
“내가 너무 소모되는 느낌이 들 것 같았어요. 그것만 아니면 충분히 하고도 남았죠. 지훈이하고는 제대로 작품을 함께 한 적이 없었어요. ‘공작’에선 내가 특별 출연이었고, ‘헌트’에선 우리 둘다 대사도 없는 단역이었고(웃음). ‘헌트’ 촬영 때 지훈이가 나한테 처음 ‘젠틀맨’ 얘기를 했죠. 둘이 부산 시내를 한 2시간 걸었나? 그때 설득됐죠 뭐(웃음). 저 놈이 날 너무 잘 알아서 하하하. 그때부터 ‘젠틀맨’ 대본을 파고 들기 시작했죠.”
악역을 구축하는 것에 있어선 정말 대한민국 영화계 배우 가운데 첫 손에 꼽히는 박성웅이다. 그가 배역에 파고 들기 시작했으니 일단 범상치 않은 ‘악역’이 나오게 될 것이란 건 기대해도 좋다. 박성웅이 맡은 극중 ‘권도훈’. 그는 권력형 비리의 최정점에 선 인물이다.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었다. 제목인 ‘젠틀맨’과는 가장 안 어울리는 인물이면서 또한 반대로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외모적으론 빈틈 하나 없을 만큼 깔끔하면서도 내면적으론 가장 추악하고 더러운 인물이다.
배우 박성웅. 사진=콘텐츠웨이브
“시작부터 끝까지 욕망 하나로만 똘똘 뭉친 인물이 바로 ‘권도훈’이라고 해석했죠.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는,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내면과 달리 외면은 허세와 허영 그리고 위선으로 가득하죠. 그 둘 사이에의 간극을 어떻게 조율하고 조종하는가에 따라서 ‘권도훈’이 잘 살아 날 것이라고 봤어요. 그리고 최대한 감정을 배제한 채 조용하고 건조하게 표현하려고 했죠. 그래야 권도훈의 악랄함이 더 강하게 느껴질 듯하니.”
권도훈의 악랄함은 그의 내면과 외연 그리고 그의 주변 환경을 통해서도 그려졌다. 직접적인 표현이라기 보단 극중 ‘권도훈’이란 인물을 느낄 수 있게 도와주는 여러 장치 들이었다. 작게는 디테일, 박성웅이 연기한 권도훈은 결벽증 같은 것을 갖고 있는 듯 작은 것에 집착하는 모습도 강하게 나온다. 그의 괴팍한 듯한 성격은 그가 살고 있는 집안 인테리어에서도 드러난다. 한 마디로 이상한 인물이긴 하다.
“뻔한 느낌으로 악을 표현하면 뻔한 결과가 나올 듯 했어요. 악역에 대해서 만큼은 그래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뻔하지 않게 그려야 한다는 게 제 지론이에요. 일단 권도훈은 정말 얄미울 정도로 침착해요. 목소리를 크게 내는 법이 없어요.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주변에서 다 날 무서워하는 데 뭐 때문에 에너지를 빼겠어요(웃음). 그럼 관객들이 이 사람이 무서운 인물이란 걸 알아야 하잖아요. 어떤 어두운 내면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 그게 집안 인테리어 같은 걸로 드러나죠. 그 인테리어, 이상 하잖아요(웃음).”
영화 '젠틀맨' 스틸. 사진=콘텐츠웨이브
근데 정말 희한할 정도다. 사실 ‘박성웅’이란 이름 석자를 언급하면 ‘악역’이 먼저 떠오른다. 당연히 ‘신세계’의 ‘이중구’ 캐릭터 때문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박성웅, ‘이중구’를 제외하면 그 정도의 악역은 ‘살인의뢰’의 연쇄살인마 ‘강천’역을 제외하면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오히려 코미디 장르를 더 많이 소화해 왔다. 그런데도 ‘박성웅=악역’이란 등식이 여전히 정답처럼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다. 배우 입장에선 반드시 깨야 할 공식이다.
“저도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이중구’란 캐릭터를 어떻게 깨고 나가야 할 지. 그게 제 인생의 숙제처럼 남아 있어요. 얼마 뒤면 ‘신세계’ 개봉 10주년이라더라고요. 지금도 여전히 절 보면 고등학생 정도 되는 친구들이 ‘중구형!’ 이래요. 그런 친구들조차 절 알아보는 게 너무 감사하죠. 근데 배우로선 참 고민이기도 해요. 그걸 깨 보려 ‘메소드’ 같은 작품에선 남자랑 키스도 했잖아요(웃음). 인생의 롤 모델로 로버트 드니로를 꼽는데, 뭘 해도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그 분처럼 되고 싶긴 하죠. 그래서 여전히 노력 중입니다.”
1997년 영화 ‘넘버3’에서 단 몇 초 얼굴이 등장하는 단역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25년 뒤 박성웅은 현재 대한민국 영화계 최고 배우 중 한 명이 됐다. 그는 ‘사람일 모르는 거다’며 웃었다. 단적인 예로 최근 박성웅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바밤바 삼행시’가 등장한다. 박성웅이 웬만한 개그맨보다 웃기는 개그 감각을 소유한 배우란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는 ‘그래서 내가 예능을 안 나가는 거다”고 웃는다.
배우 박성웅. 사진=콘텐츠웨이브
“내가 나가면 너무 잘 할 걸 알고 있어서 안 나가요(웃음) 진짜에요. 내가 뭘 하면 자꾸만 터져요. 하하하. 바밤바 삼행시만 해도 그래요. 내가 무슨 ‘바밤바 CF’ 노렸겠어요. 그게 ‘아는 형님’ 본방에는 나오지도 않았어요. 통편집이 된 건데, 본방 나오고 몇 달 뒤에 인터넷에 풀린 게 난리가 난거죠. 저 대학 졸업식 사진이 뒤 늦게 난리가 난 것도 그래요. 사실 그때 그 사진이 제가 대학로에서 연극 준비를 하면서 배역 때문에 머리를 그렇게 탈색을 한 거에요. 근데 그게 그렇게 나중에 화제가 될 줄 알았겠어요. 아무래도 제가 뭘 좀 몰고 다니나 봐요. 하하하. ‘젠틀맨’도 느낌이 좋아요. 좀 터지겠죠? 하하하.”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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