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복수다. 어린 시절 당했던 상처에 대한 응징이다. 복수와 응징, 반드시 뜨겁거나 차가워야 한다. 뜨겁다면 내가 당한 상처와 고통 그리고 아픔에 대한 감정적 이입이다. ‘당한 만큼 너도 당해야 한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다가서는 폭발이 수반된다. 반대로 차가울 수도 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분리시킨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바라보며, 과거의 내가 겪은 고통과 아픔과 그로 인한 상처를 대신 갚아주는 것. 이 과정 속에서 차가움은 반드시 필요한 감정적 결여다. 이 과정에서 감정이 투입돼야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반대급부로 그만큼 더 강렬하고 잔인하고 또 철저하게 파괴시킬 수 있을 듯하다. 행위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노를 동반한 뜨거운 복수가 아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철저히 분리시켜 객관화 한 뒤 전체를 바라본다. 그래서 복수와 응징은 ‘뜨겁게’가 아닌 ‘차가운’ 감정의 칼날이라 부르는 게 더 적절할 듯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가 이런 흐름을 너무도 직설적으로 적절하게 그리고 과장과 비유도 투여하지 않은 채 온전히 완벽하게 그려냈다. 실질적으로 ‘더 글로리’의 복수와 응징은 그 이상으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는다. 이건 상대를 가장 온전하게 파괴하겠다는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참회록이다. 그 시절을 견디고 버텨온 나에 대한 가장 슬픈 고백. 복수와 응징의 파괴를 통해 한 여성이 느끼는 가장 온전한 슬픔을 김은숙 작가가 꿰뚫어 버렸다. ‘송혜교’란 날 선 송곳으로 말이다.

복수와 응징 그리고 파괴의 흐름 속에 구구절절함은 필요 없을 듯하다. 김은숙 작가는 ‘사적 복수’에 대한 코드를 풀어가는 과정 속에 이유를 배제했다. 이른바 찍어 누르는 ‘가해’의 목적도, 찍힘을 당하는 ‘피해’의 이유도 없다. 그들은 그저 보이기에 상처를 줬다. 그리고 그 보임의 시선 속에 들어가 버렸기에 상처 입는 것에 길들여졌다. 이 과정은 끔찍할 정도로 직설적이고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잔인했다. 그 과정이 끝나지 않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면서 결과적으로 이유는 형체도 없이 ‘증발’됐다. 돌고 도는 가해와 피해의 꼬리. 여기서 피해는 ‘문동은’(정지소, 송혜교) 그리고 가해는 박연진(임지연)을 중심으로 한 5인방. 문동은에겐 빛이 없는 ‘극야’가 세상의 전부다. 해가 뜨지 않고 밤만 있는 삶. 동은은 그렇게 어느 순간 연진 패거리의 폭력에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도움 주지 않는다. 접대부 출신 미혼모 엄마는 자신을 버린 지 오래다. ‘보호’는 그에게 사치일 뿐이고, 어울리지 않는 낭비다. 동은은 세상에 버려진 ‘나머지’ 같은 존재다. 그런 ‘나머지’는 연진 패거리에게 좋은 노리개일뿐이다.
'더 글로리' 스틸. 사진=넷플릭스
연진과 그 패거리. 그들에겐 세상은 ‘백야’다. 낮에도 밤에도 그들 세상에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첫 시작부터 거침이 없다.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한 빛의 어둠 속에서 연진과 그 패거리는 어둠을 노리개 삼아 파괴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이유도 목적도 없다. 그들은 모든 것을 가진 빛이고, 그 반대의 어둠은 그들이 파괴해도 정당하고 합당하고 또 그래도 되는 이유를 물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그렇게 누군가를 파괴한 뒤 또 다른 파괴의 대상으로 동은을 선택했을 뿐이다. 동은은 하루하루 조금씩 조금씩 철저하게 가루가 되도록 파괴를 당해간다.
'더 글로리' 스틸. 사진=넷플릭스
‘극야’의 세상이 ‘백야’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끝’을 내는 것뿐. 육체를 넘어 영혼까지 파괴 당해 자기 존재 부정의 단계까지 넘어간 ‘극야’의 문동은. 그는 문득 느끼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억울함’이다. 여기서 끝을 낸다면 모든 것은 사라진다. 백야의 손아귀를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끝’일까. 문득 동은은 궁금해졌다. 이유가 궁금해졌고, 급기야 가르쳐 주고 싶었다. 이유도 없이, 아니 처음부터 이유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극야’의 세상에서 어둠 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동은. 그는 ‘백야’의 세상에 버티고 선 연진과 그 패거리에게 ‘극야’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다. 사실 동은은 잊고 있었고, 외면하고 있었다. ‘극야’가 됐던 ‘백야’가 됐던 그 중심은 사실 ‘어둠’이란 것을. 동은의 어둠을 일깨워 버린 연진과 그 패거리. 그들은 이제 ‘백야’의 세상에서 ‘극야’의 어둠에 집어 먹힐 위기와 직면한다. 그들은 결코 몰랐을 것이다. ‘백야’와 ‘극야’ 두 세상이 결국 하나의 결로 이어져 있단 것을.
'더 글로리' 스틸. 사진=넷플릭스
‘더 글로리’, 복수에 대한 얘기다. 복수는 지극히 사적 영역이다. 사적 복수란 단어도 사실 그래서 어울리지 않는다. 복수를 ‘뜨거움’으로 해석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공감’이란 단어가 투여된다. 그래서 ‘더 글로리’의 복수는 오히려 온 몸이 데이다 못해 타 들어 갈 정도로 차가운 냉점을 유지한다. 동은의 복수가 극단적으로 차갑게 느껴진다면 그건 지극히 사적 영역에서 들끓어 폭발하는 감정이 결과적으로 가장 처절한 방식을 찾아냈단 시그널이라 해석해야 될 것이다.
'더 글로리' 스틸. 사진=넷플릭스
이 같은 시그널은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 그리고 이 작품 제목 과도 맞닿아 있다. ‘더 글로리’, 영광이다. 폭력은 그 자체로 한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과정이다. 피해자들은 그래서 말한다. 돈을 원하는 것도 다른 보상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가해의 진심 어린 사과를 원한다. 이 말은 ‘더 글로리’란 제목 안에 단단하게 응축돼 있다. 피해자로서의 보상이 아닌 그 이전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고 픈 바람. 잃었던 존엄성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나 자신의 찬란했던 삶을 다시 시작하고 픈 바람. ‘더 글로리’는 그런 의미다.
'더 글로리' 스틸. 사진=넷플릭스
그래서 동은은 질문하고 답을 기다린다. 그는 극중 가해자 연진 그리고 그의 패거리와 마주한다. “신이 널 도우면 형벌, 신이 날 도우면 천벌”이라고. 스스로의 존엄성과 영광을 되 찾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그들 방식을 택한 동은, 그리고 자신들 방식으로 같은 상처를 입게 될 시간을 기다리게 되는 연진과 그의 패거리들. 과연 신이 존재한다면 가해와 피해, 가학과 피학 그 사이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 인가. 어느 쪽이든 신의 너그러움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동은의 복수와 응징 그리고 파괴의 선택도, 연진과 그 패거리의 이유 없는 과거 악행도 결코 용서 받기는 힘들다.
'더 글로리' 스틸. 사진=넷플릭스
‘더 글로리’, 작가 김은숙이 만들어 낸 실체가 온전히 그리고 완벽하게 존재하는 지옥이다. 그 지옥은 영혼까지 파괴된 동은에게도, 동은을 철저하게 파괴한 연진과 그 패거리들에게도. 결국 마찬가지일 듯하다. 넷플릭스가 전무후무한 현실의 지옥도를 완성시켰다. 그 중심에 로맨틱·멜로 대가 김은숙 작가와 송혜교가 존재한다. 그것 역시 ‘더 글로리’의 아이러니를 완성하는 조각일 듯하다. 반드시 주목하고 대면해야 할 현실이자 지옥 그 자체가 ‘더 글로리’다. 12월 30일 파트1(8부작)이 공개되고 2023년 3월 파트2(8부작)가 공개된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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